[결고운글] 공간의 힘
[결고운글] 공간의 힘
  • 편집부
  • 승인 2019.10.24 09:08
  • 호수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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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환욱 보은교육협동조합햇살마루 이사

우리는 모두 공간에 속해 있습니다. 어른들은 직장과 집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학교와 집이라는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기에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다면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일을 하려고 노트북을 챙겨서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는 것이나 풍경이 좋은 곳을 찾아 휴가를 가는 것 모두 공간에 대한 갈증에서 기인합니다. 곧 공간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죠.
아파트에 살다보니 왠지 모르게 답답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쉼은 되지만 힐링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방이 막혀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아이들의 재롱이 위안이 되지만 동시에 마당에서 마음껏 놀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늘 있습니다.
아이들은 공간에서 더 많이, 더 쉽게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공간의 구조, 색감, 크기, 용도 등이 그들의 사고와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여러 곳에서 학교 공간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놀이터를 개선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용적이면서도 재미가 있는, 창의력이 샘솟는 공간을 꿈꾸겠죠.
유난히 올해 공간과 관련된 사업들을 많이 벌이면서 공간이 주는 효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선 1층에 위치한 교실이 학교매점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계산을 해주려고 판매대에 앉아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 모두 하나같이 상기된 표정입니다. 어떤 것을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품고 들어오는 것이죠. 더욱이 친환경간식이니 부모님들도 안심하고 용돈을 넉넉히 주십니다. 이것은 분명 예전에는 없던 즐거움입니다. 교실에서 나와 몇 걸음만 가면 매점이 있으니 학교에 가는 즐거움이 하나 늘은 셈입니다.
그리고 방방장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발길이 거의 닿지 않던 곳에 방방장이 생기면서 발자국이 끊이질 않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태워달라고 졸라대는 것을 보니 이 또한 큰 즐거움이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 공간은 아이들의 놀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어느 정도 놀 공간을 갖춰주면 정말 잘 놉니다. 나무와 나무사이에 줄 2개를 묶어서 흔들거리는 외줄다리를 만들어 놓으니 때론 대기 손님이 길게 줄을 서기도 하고, 두터운 나뭇가지에 줄을 걸고 원반을 달아놓으니 그 위에 앉아 사방으로 움직이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반면 바로 앞에 있는 미끄럼틀은 항상 외면을 받습니다. 몇 만원 밖에 하지 않는 밧줄 몇 개가 수백만원의 미끄럼틀보다 나은 것입니다. 변화가 없는 공간은 지루함으로 다가옵니다. 변하는 밧줄이 이긴 것이죠. 물론 더 스릴이 있고 짜릿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토요일에는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공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중 여름방학 프로젝트였던 놀이터를 만드는 작업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잔디위에 자신들이 만들고 싶던 놀이터를 망치질하며 구현하는 학생들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간식을 먹고 좀 더 쉬라고 하는데도 쉬지 않고 뚝딱거렸습니다. 아이들 또한 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풀어내줄 기회가 없었던 것이죠.
최근에는 교실이 너무 딱딱하고 심심해보여서 아이들과 다소 큰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물로 된 2층 다락방을 만들어보자고 한 것이죠. 이제 기본 뼈대만 되었는데 아이들은 작업에 적극적으로 달려듭니다. 공부할 때와 참 다릅니다.
공간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아주 단적인 예가 괴산에도 있습니다. 한 학교가 군과 교육청의 지원으로 집 6채를 지으니 전국에서 전학과 이사를 위해 몰려온 것이죠. 이번에 추가로 짓는 6채에는 100가구가 넘게 지원을 했다고 하더군요. 정주여건 또한 공간이고 이는 학교를 살리면서 학교가 마을이 될 수 있게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순차적으로 학교에 지원을 하겠다는 괴산군수의 포부가 참으로 부럽습니다. 지역을 살리는 방편으로 교육을 선택한 것은 그의 혜안입니다. 언젠간 우리 지역도 그러한 혜안을 가진 리더가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좋은 공간은 좋은 리더를 통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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