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고운글] 먹을거리는 생명의 원형이고, 세상살이의 근본이다
[결고운글] 먹을거리는 생명의 원형이고, 세상살이의 근본이다
  • 편집부
  • 승인 2019.10.10 10:29
  • 호수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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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진

세상이 시끄럽다. 주말마다 대규모 집회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청와대 앞에 가봐도 그 앞은 온갖 바램과 요구들로 혼잡하다. 지방도시 곳곳에서도 시위와 집회 천지이다. 기계와 저임금 외국인노동자에게 내몰린 지역 노동자는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노동환경에 버겁게 싸우고 있고, 삶의 질과 국토의 영속성을 떨어뜨리는 파괴적 개발행위들도 도를 넘고 있다. 우리의 주변은 점점 비정규직과 하도급, 파견 등으로 구조화 되어간다. 노동자뿐 아니라 농민의 상황도 희망을 찾기 어렵다. 농업과 노동은 국가의 기본이고 국민의 인권을 담는 그릇인데도 이처럼 천시받고 무시당하니 앞으로 국민의 삶이 더욱 위태로워질까 걱정이다. 죽창만 안들었지 조선말 민란시대 같다.
보은도 요란하다. 군수를 비롯한 기득권의 각종 폐단이 누적되다가 친일망언을 계기로 군수퇴진운동까지 이르렀다. 군수는 과반수미만의 득표로 당선된 사람이다. 퇴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아도 마음으로는 더 이상 보은군수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망신은 군수자리를 지킨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군수의 자화자찬 연설을 참고 듣거나 억지로 박수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기개있고 당당한 보은군민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믿는다.
자신만 잘하면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어려워도 상관없는 시대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놔도 사람들이 사주지 않으면 속절없이 망한다. 도시 노동자의 임금이 바닥에 떨어지고 가게가 망하면 어디서 우리 농산물을 구매해 주겠는가? 최근엔 정부와 함께 업계와 단체도 적극적으로 수입농산물을 구매하는 추세다. 갈수록 국내 농산물은 설 자리를 잃고 국내 가공품도 축소될 것이다. 유통의 흐름이 소비자 주문에 맞춰 수입대행하거나 OEM 방식으로 수수료를 챙기는 식으로 흘러간다. 경제적 순환이 막히고 생산기반이 무너지는데도 획일적인 대자본 경제에만 의존한다면 조만간 대부분의 국민은 경제에 종속된 노예처럼 전락될 것이다.
이런 전망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상황들이 저마다 모두 답답하고 우울하다보니 마치 전 국민이 모두 집단우울증이라도 걸린 것 같다. 그러나 누가 대신 목소리 내줄 곳도 없다. 피폐해진 감정을 추스르고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절실한 사람들이 서로 모이고 공부하고 생각해야 할 때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끝에 한달 전 추석차례를 하면서 '제사'라는 것에 대해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제사는 왜 이 시대에 애물단지처럼 되어있고 재미없으며 불합리하고 사라져갈 과거의 전유물이 되어있을까? 제사를 기피하게 되는 폐단은 사실 남성중심적인 권위주의와 부조리에서 기인한 것이 많다. 제사는 죄가 없다. 정성과 존중이 부족한 남성들이 각성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첫걸음으로써 제사를 다시 새롭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제사는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킨다. 다같이 절하는 행위를 통해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운을 동일하게 맞춘다. 엄숙보다는 원래 공경과 모심과 존중이 제사의 본질인 것이다.
제사는 농업이다. 제사에는 우리 식문화가 깃들어 있다. 조상의 식문화를 재현함으로써 우리의 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것이다.
제사에는 감사함이 있다. 우리 농산물과 우리 먹거리 문화로 상차림을 하고 그곳에 감사를 올린다. 정신은 조상에게 올리는 헌향이지만 물질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농산물로 차려진다.
먹을거리는 바로 생명의 원형이고 세상살이의 근본이다. 이를 예의로써 일깨워주는 제사는 살아있는 인생학교이다. 지금 시대에 새롭게 다시 세워가면 좋겠다.
개인의 정체성과 원형을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사회를 정상화시키는 제사의 사회화까지도 제안하고 싶다. 사회적 제사에서 우리는 내가 먹는 작은 음식하나로도 이 땅과 이 하늘에게 공경과 섬김을 의례하는 것을 일상화했으면 한다. 먹는 것은 내 안에 하늘과 땅을 모시는 행위이다. 공공의 목적을 갖는 집회와 시위도 천지에 고하는 제례행위로 시작한다면 천명을 갖는 사회운동이 될 것이다.
보은군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의로운 행동도 보은을 지켜주시는 땅님과 조상을 위해 작은 의례를 펴면서 시작하면 어떨까? 소박하고 작아도 천지신명과 함께 한다면 온 우주가 참여하는 것이다.
나는 아침에 홀로 피켓을 들고 퇴진운동을 하는 보은사람을 보면서 진정한 '토박이 보은사람'을 발견한다. 보은의 미래를 위해 나도 기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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