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부 매화 띠실 출신 정판수 제과 기능장
탄부 매화 띠실 출신 정판수 제과 기능장
  • 송진선
  • 승인 2019.10.02 15:37
  • 호수 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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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가는 아이들에게 좌표 되주는 도우미

모든 게 팍팍한 시절이다. 꿈을 꾸는 것조차 무의미한 것은 아닌지, 청년들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한 단계, 한 단계 밟다가 포기하고 좌절하고 마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충북생명산업고의 제과제빵동아리인 네이처 브레드에서 같은 꿈을 키워가는 청소년들은 아름다운 도전에 좌절할 틈이 없다.
참 대견하다. 이들 청소년들이 꿈을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선배 롤모델을 만날 때면 청소년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고 발걸음은 경쾌하다.
청소년들의 꿈을 지원하는 이는 바로 매주 금요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꽉 찬 시간을 충북생명고등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탄부면 매화리 띠실마을 출신인 정판수(68, 인천) 제과 기능장이다.

매주 금요일 충북생명고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청소년들의 꿈을 지원하고 있다.

찐 감자를 섞은 밀가루를 반죽하고 발효되는 시간을 견디며 오븐에서 구워진 맛있는 빵의 반을 갈라 팥 앙금과 버터로 적당하게 속을 넣은 감자치아바타를 만들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제빵실 한쪽에서 기다리며 드디어 만들어진 빵을 먹는 순간 "그래 이 맛이야". 엄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찌개도 아닌데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학생들이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도록 이끈 정판수 기능장의 제과업계 입문은 배고팠던 60년대, 70년대 가난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그대로 담겨있다. 가난을 극복하고 기능장에 오른 정판수 제빵사의 여정 속으로 들어가 본다.

#먹고 살기 위해 제과점 입사


탄부 사직초등학교 8회인 정판수 기능장은 지지리 가난한 집 아들이었다. 육성회비를 못내 초등학교 재학 중에도 수시로 교무실에 불려가 독촉을 받았다. 중학교는 갈 생각도 못한 그는 14살 때 집을 나와 대전역 앞의 작은집식당에서 일했다. 띠실 본가 아버지가 책임져야 하는 식솔의 입을 덜어주는 착한 아들이었다.
작은 아버지 식당에 들른 한 손님이 주변에 취직할 애들이 없냐고 물었고 정판수 기능장은 자신이 가겠다고 자청해 갔는데 그 집이 제과점이었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으로 월급을 대신했다. 기술을 배울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제빵기술을 배우는 대신 허드렛일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니 집주인이 월급으로 500원을 줬다. 새벽 4시반에 일어나고 밤 12시~1시에 잠을 자고 덩어리로 된 무연탄을 부숴 흙과 물을 넣고 이겨서 불을 때 빵을 굽던 시절에 받은 월급 500원이 고생한 것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금액이었다. 묵묵히 6년을 견디는 동안 어깨너머로 배운 제빵의 기술은 날로 발전, 기술자가 되어 다른 제과점의 공장장으로 스카우트될 정도였다.
수년동안 지방에만 머문 그는 그 후 자신의 발전을 위해 서울로 입성했는데 제과점마다 자리잡고 있는 공장장들이 모두 자신이 데리고 있었던 후배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뉴욕제과, 고려당 등 대한민국의 제과업계를 주름잡았던 이들 제과점의 책임자로 자리를 굳혀있었던 것. 뒤늦게 서울 한복판에 뛰어든 정판수 기능장은 설자리 찾기가 힘들었다. 그 친구들이 만들어낸 제과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다. 정판수 기능장은 다시 기술을 배우는 교육생이 될 수밖에 없어 그 친구들에게 다시 제빵기술을 배웠는데 원래 손재주가 좋은 그는 한 달도 안돼 청출어람의 성적을 보였다.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고려당 공장장을 하기도 했고, 재인브랜드를 내건 베이커리를 운영하기도 했고, 제빵 체험도 가능한 공방을 운영했다. 수도서울로 진출한 정판수 기능장의 기술이 녹아있는 제빵은 서울 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초등졸업장 갖고 농수산대학 겸임교수 되다
제방분야 1인자에 버금가는 정판수 기능장은 재산적으로는 부침이 있었다. 빚보증으로 거리에 나앉아야할 정도로 탈탈 털리기도 했고 그런 자신을 무한 신뢰한 사람 덕분에 다시 식구들이 찬기를 피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하는 소득도 얻었다. 그런 부침은 심신의 고통을 가져오긴 했지만 가난해서 먹고살기 위해 빵을 만들기 시작한 정판수 기능장은 지금은 먹고사는데 더 이상 걱정이 없다. 이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정판수 기능장은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이지만 그것마저도 자랑스럽다. 제과제빵 기술 하나로 지식의 전당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겸임교수까지 오른 그이다.
이같이 입지전적인 인물인 정판수 기능장은 지난 2017년 노동부가 운영하는 산업 현장교수제도에서 현장교수로 산업인력관리공단에 등록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제빵 기술을 배우고 있는 학생은 농수산대학을 비롯해 천안 제일고등학교, 충북생명산업고등학교 학생들이다. 한때는 홍성 혜전대학교에도 출강했다. 학교 외에 기업체 및 문화회관 등에도 나가 제과제빵 강의를 하고 있다.
처음 학생들 앞에 서면 그가 말하는 자신소개가 있다. 그것은 자신은 대단한 학력의 소유자가 아닌 초등학교 졸업이 끝이고, 여러분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강의를 할 수 없다고 단언을 한다. 학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실력을 갖춘 그를 환영한다. 기능이 중시되는 산업현장에서 학력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 학생들의 평가인 것이다. 그는 학생들의 선호에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기술과 기능을 다 쏟아낸다.
현재 지방기능경기 및 전국 기능경기대회 문제 출제 및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대한민국 제과제빵계에 이름 석자를 남기고 있는 정판수 기능장은 케이크 데커레이션 분야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이다.
지금은 케이크의 데커레이션이 거의 사라지고 과일을 얹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의 손을 거친 케이크 위에는 초콜릿으로 만든 장미꽃이 올려지기도 하고, 얼음을 뚫고 피는 노란 복수초 꽃이 환하게 웃고, 어느 때는 매화가 빨간향기를 내뿜기도 한다. 정판수 기능장의 케이크를 받은 사람은 "아까워서 이걸 어떻게 먹느냐"며 작품 감상하듯 먹는 것도 잊을 정도다.

#보은생대추통조림, 생대추 쌀빵 특허
한 번 꽂히면 해결 될 때까지 집중하는 그가 요즘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농산물에 첨가할 방법을 찾는 것. 인공적 물감이 아닌 천연 농산물을 이용해서 만든 색소를 쌀가루와 혼합, 컬러 쌀빵을 만들고 있는데 모두 성공했다.
보은생대추를 활용한 먹거리로 만들었는데 보은생대추 통조림과 생대추쌀빵은 특허까지 출원했다. 이외에 대추를 유탕처리해 냉동시키고, 대추 초콜릿, 대추가 첨가된 빵과자인 마들렌 등 다양한 먹거리도 만들었다.
정판수 기능장은 "건대추 보다는 생대추를 활용한 먹거리가 더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건대추는 과육이 씹히고 껍질이 고춧가루가 낀 것처럼 불편한데 씨를 뺀 생대추를 활용한 요리는 냉동시키면 오히려 바삭바삭하고 식감이 좋다"는 것.
지난 2014년 6월 제과 기능장을 따고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 자격을 득한 정판수 기능장은 그동안 95년 서울 국제빵과자경진대회 최우수상, 2000년 서울 국제과자경진대회 최우수상, IKA세계대회 독일베를린 한국 최초 금메달 수상, 강화순무요리경연대회 장려상, 중소기업표창장 등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또 인천시장표창장, 국제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 표창장 등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출강하고 있는 충북생명산업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정판수 기능장의 지도를 받은 생명고 학생들은 제과제빵 기능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 지난 5월 서울국제푸드그랑프리경연대회 전시분야에서 2학년 정필민 학생이 대상을 수상하고 이하은 학생은 베이커리 분야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또 지난해 나인밸리 포레스트가 주최한 코리아페스티벌에서 충북생명산업고 네이처 브레드팀이 보은대추 분말과 사과칩을 이용해서 만든 케이크 및 마카롱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둬 학생들의 대학 진학에도 도움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가난했던 시절 초근목피 (草根木皮)한 고향 마을인 띠실에 형제는 아무도 없지만 사직초등학교에서 우정을 키운 친구들과 추억을 향유하는 정판수 기능장은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고향 보은에 있는 충북생명산업고등학교를 찾는 금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형수님의 동생인 우병기 신협 이사장과도 교우하고 있는 정 기능장은 초기 제빵사 시절 만난 부인과의 사이에 둔 2명의 아들 중 자신의 재능을 쏙 빼닮은 작은아들과 함께 자신의 역작이 될 베이커리카페를 빠른 시일안에 개설할 계획이다. 베이커리라는 한우물만 판 정판수 기능장의 끝판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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