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선생 석천암 복원 준공
충암선생 석천암 복원 준공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9.09.25 23:07
  • 호수 5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초기 건물 2006년 해체 후 13년 만에 복원

보은군은 조선 초기 충암(沖菴) 김정(金淨)선생이 학문을 연마했던 석천암(石泉庵) 복원 준공식이 지난 9월 20일 김정 선생의 탄생고을인 성족리에서 개최했다.
준공식에는 정상혁 군수를 비롯해 경주김씨 충암공파 종중의 김응일 회장과 경주김씨 충청북도 종친회 김치구 회장, 대전시립박물관 류용환 관장과 마을주민 군내 경주김씨 세족 등이 참여해 선생의 업적을 기리며 석천암 복원을 한마음으로 축하했다
조선초기에 지어졌던 석천암은 2006년 8월에 해체된 후 마을 주민들이 대들보 기둥, 기와 등 자재를 마을회관 옆에 보관하고 왔으나 오랫동안 복원되지 않아 나무가 썩는 등 멸실 위기에 처했다.
그러다 지난 2017년 주민들이 보은군에 복원을 건의해 2018년 10월 군비 3억 7천만원의 예산으로 착공에 들어가 이날 준공하게 됐다.
석천암은 충북 보은출신인 충암 김정이 학문을 배웠던 곳으로 한말 개화기에는 사립 광명학교로 운영되다 광복 후에는 종곡초등학교 임시교사로 이용되고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종곡초등학교의 모태가 된 교육시설이다.
홍영의 문화재팀장은 "자칫 사라질 뻔한 소중한 문화유산이 주민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복원돼 문화재팀장으로서 뿌듯하다"며, "이러한 시설이 우리 후손들에게 오래도록 온전하게 전승될 수 있도록 유지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충암 김정 선생은 보은 출신으로 조선중기 여러 가지 개혁정치를 시도한 대표적인 유학자로 18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21세에 문과에 장원급제했다. 이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헌과 형조판서를 지냈다.
이후 기묘사화와 신사무옥 등에 연루돼 유배되고 결국 사사됐다. 그러나 김정 선생은 충청지역 여러 향교와 서원 등에 배향돼 있다. 귀향을 갔던 제주에서는 5현 중의 한명으로 추앙받고 있다.
저서로는 '충암집'과 제주 유배 중에 저술한 '제주풍토록' 등이 전해지고 있다.
시문은 물론 그림 특히 화조화에도 뛰어나 조선 중기에 유행한 소경수묵사의(小景水墨寫意) 화풍의 전통을 형성했다는 평가도 받는 시대의 대학자였다.
석천암이 위치한 곳이 동학공원 내여서 동학을 연구하고 동학사상을 공부하는 시민운동가 등은 동학과는 이질감이 있는 동학공원에 국궁장에 이어 이번에는 석천암이 들어섰다며 문제제기를 했다. 이들은 보은군이 동학공원의 부지가 넓다고 이것저것 공원 취지에 맞지 않는 성격의 시설물을 세우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보은군이 동학의 고장이라고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보은군에서 동학이 갖는 위치를 알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편 석천암 준공식날 우리함께 참여연대에서는 친일발언을 한 군수가 참석해 준공식을 갖는 것에 반발하며 1인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