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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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부
  • 승인 2019.09.19 12:04
  • 호수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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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환욱

대안학교는 공교육만을 받아왔던 저에게 매우 낯선 영역이었습니다. 단어 자체가 주는 이미지는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공교육의 적응에 낙오한 이들을 위한 곳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 실제의 현장을 여러 번 가본 뒤, 이러한 생각들은 착각이었고 오만에 가까웠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리어 그곳의 시스템과 철학은 공교육의 그것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교사와 학생 모두 본연의 일을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교육에서 낙오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떠난 것이었습니다. 매달 내야하는 꽤 비싼 학비를 감수하면서 말이죠. 본질을 찾기 위한 비용은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작부터가 달랐습니다. 명령으로 지어진 학교와 자발적으로 세운 학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건학이념의 존재가 그 첫째입니다.
학교를 세우기 위해 이해관계자들이 오랜 기간 학교의 상을 세우는 작업이 공교육에는 대부분 생략되어있습니다. 그저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지어졌으니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새 학교를 지을 뿐이죠. 그 과정에서 힘없는 작은 학교가 희생을 당하기도 합니다.
건학이념이 없어서 그런지 교육철학도 매우 허약합니다. 두리뭉실하여 뜬구름 잡는 문구, 그냥 좋은 것을 다 가져다 놓은 것 같은 문구, 유행 따라가는 문구들이 허다합니다. 더군다나 그에 대한 배경은 달랑 몇 줄입니다.
관리자가 바뀌면 교육철학도 바뀌면서 학교의 방향이 틀어지는 곳도 상당히 많습니다. 학교는 한 개인의 철학이 실현되는 곳이 아님에도 말이죠. 그런 곳에서 근무하지 않음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중심이 없는 곳도 있을 것입니다. 중심이 없으니 교육과 상관없는 잡무는 늘어나고 개인에게 충성하며 신뢰는 낮아지기에 본질과 점점 멀어질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구성원들의 에너지가 엉뚱한 곳으로 낭비되는 것이죠.
학력신장이라는 명목 하에 점심시간에도 억지로 공부를 시키고 온갖 대회의 수상실적을 위해 정작 수업은 뒷전시하며, 아이를 혹사시켜 딴 메달로 승진한 것이 능력으로 비춰졌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수단이었을까요 목적이었을까요. 이런 학교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아이들일까요 누군가의 승진일까요 아니면 안정된 직장일까요. 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교사가 되려고 할까요. 이러한 것들을 자문하면 참으로 뜨끔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에만 멈춰 있지만 이미 이러한 반성을 거쳐 새로운 시도를 하는 움직임은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건학이념이라는 단단한 토지에 교육철학이라는 견고한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작업들은 최근 공립형 대안학교라는 이름으로 싹을 피우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그 싹이 초등으로까지 내려왔습니다. 멀리 강원도에 공립형 대안초등학교가 생긴 것이죠.
대안학교냐 아니냐의 차이는 상당합니다. 일반학교는 국가에서 제시하는 틀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는 반면 '대안'이라는 단어가 붙은 곳은 그 틀이 과감히 사라집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구성원들이 치열하게 고민해서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부럽습니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건물을 세우고 교육과정을 세우며 기존의 것에서 벗어나는 경험은 얼마나 짜릿할까요. 그 어떤 예술가의 작업보다도 창조적일 것입니다. 그런 행위는 놀이에 가깝기도 합니다. 반면 국가에서 요구하고 제공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재미'가 없습니다. 자발적이지도 않고 동의하지도 않은 일들이니까요.
우리 지역에도 틀을 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학교가 생겨나길 기대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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