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가 왜 힘든가? 경제 관점에서 보기 때문 아닐까
농사가 왜 힘든가? 경제 관점에서 보기 때문 아닐까
  • 편집부
  • 승인 2019.08.29 01:12
  • 호수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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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진

지난 7월 31일 새벽에 제주도에서 친환경농업을 하던 농민부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감자, 마늘, 양파, 단호박, 대파 등의 소득작물 위주로 많은 농지를 임차해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왔지만, 결국 판로는 막히고 빚은 늘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셨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여름이 습하고 겨울은 초저온이 되기도 하고, 봄은 가물고 가을은 태풍이 휩쓴다. 안정적인 농사기후는 아니다. 더구나 기후위기라 하여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니 설상가상이라 하겠다. 농자재, 종자대, 인건비는 올라 농업수지는 악화되는데 수입개방은 가속화되고 소비자의 식생활은 원물농산물을 외면하니 시장가격은 갈수록 가혹하게 떨어진다. 그러다 취급도 안해주어 적체가 되면 밭을 갈아엎고 농사를 포기한다.
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이후 그 지역에서 30년간 유기농으로 쌀과 채소를 재배하던 한 농민이 '이제 농업은 없다'고 하며 자살했던 사건이 기억난다. 그리고 8년 전, 2003년에 멕시코에서 열린 WTO각료회의에 대한 반대시위 중 자결하신 이경해 농민도 떠올랐다. 그리고 후쿠시마원전사고 8년 후인 올해, 다시 제주도 농민이 자살했다.
이 사건들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다. 이 분들이 돌아가신 것은 이분들이 모두 농업을 자신의 삶의 전부로 보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농업이 죽었기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다. 농사짓는 사람과 농산물을 먹는 사람들 모두 이 사건을 먹거리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서 들었으면 한다.
밥먹는 것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시대가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적응의 고통은 감당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요즘 나오는 국가푸드플랜도 어쩌면 좋은 먹거리를 국민에게 주는 정도가 아니라 식량위기에 대한 국가적 전략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국가차원 이상의 정보체계에서는 이미 식량위기를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놀란 것은 이런 일들에 대해 농민들조차 냉담하거나 무관심한 것이다. 아마도 모두 비슷하게 절박한 처지라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이해한다고 해도 정작 우리들의 현실은 상황을 유지하기는커녕 갈수록 출구는 좁아져만 가는 것 같다.
농사가 경제성을 갖기 위한 출구는 뭘까? 흔히 생각하면 이런 것들일까?
특용재배나 소득작물 재배를 꿈꾸지만... 묘목장사와 농자재상들만 거둬들이는 단기성 이벤트이다. 정작 농민이 판매할 만큼 키워놓으면, 시장에는 그 물건을 찾던 그 많았던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지금은 5년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느 세월에 묘목사서 심고 있는가?
시설재배와 대규모 단작은 어떤가? 지금은 소농이나 중농이나 대농이 각기 다 따로따로 힘들다. 시설재배와 대규모 임차농지는 농가자본이 많이 들어가는데 앞서 말했듯이 수익성이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신축시 정부지원금을 기대하는데 흔히 놓치는 것이 본인의 기회비용이 상실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은 계산에 넣지 않는다. 더구나 지원정책도 몹시 차별적인 선도농가지원으로 제한한다. 집중화라는 이름에 속아서 집중받지 못한 다수속의 자신은 보지 못한다. 지금은 밭떼기로 계약하는 유통업자가 없다. 이미 단작 대량 농산물 소비의 시대가 끝난 것이다. 노동력도 문제이다. 인력관리에 항상 신경쓰다가 결국 처음의 농사가 아닌 경영의 농사라는 늪으로 빠져든다.
농산물가공과 유통도 마찬가지다. 흔히 생각하는 것이 소규모 가공을 해서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잉여농산물도 활용하는 일석이조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문가공의 시대이다. 설비가 몇 억이 들어가면 갈수록 그만큼 품질과 소비자요구에 부합되는 제품이 나온다. 가장 치열한 자본과 기술과 인력의 전쟁터이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소규모 단순 산지가공은 모두가 달려들은 피바다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농산물가공의 세계로 들어가면 우리가 여지껏 만나지 않았던 식약처를 만난다. 농림축산식품부와는 아예 결을 달리한다. 이곳은 위생이라는 잣대와 규정을 가지고 그야말로 말 한마디로도 생사여탈이 결정된다.
우여곡절 끝에 시설과 위생을 갖춘 다음엔 엄청나게 쏟아지는 생산물을 팔지못해 진짜 고민이 시작된다. 원료와 판매처를 찾느라 쉬지 못한다. 농사를 주로 하면서 조금 필요한 것만 조금 만들려고 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값싼 원료를 찾아 유통을 만나고 값비싼 시장을 찾아 마케팅을 내밀 것이다. 지원사업을 받은 생산지를 보면 10년 후의 생존률이 백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다시 묻고 싶다. 농사가 왜 힘든가? 경제라는 관점으로 농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차라리 특용작물이나 시설재배, 대규모 단작재배가 아니라 토종작물을 심고 채종하는 농사로 돌아가고, 저마다 심은 다양한 작물을 하나로 모아서 도시와 농촌이 나누고, 제 땅에 맞는 농산물을 제 철에 맞게 가꾸려는 마음을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기계와 노동을 사서 가공하기보다는 자신의 농산물로 직접 집 밥을 짓고 요리를 해서 내 몸과 마음의 여유를 돌아보면 어떨까? 어쩌면 농사라는 것의 큰 해법은 출구가 아니라 일상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든다. 삼가 고인이 되신 제주의 유기농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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