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체험..한국자연생태계보전협회 유해조수자율구제단
현장체험..한국자연생태계보전협회 유해조수자율구제단
  • 박상범
  • 승인 2009.09.10 14:20
  • 호수 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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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의 농작물 습격을 막는다

 봄부터 시작해 가을까지 땀 흘려 가꾼 농작물들이 하루아침에 못쓰게 망가져 있고, 경작지까지 파헤쳐지고, 심지어 조상의 묘까지 훼손되어 있다면... 그 범인을 잡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천적이 사라지면서 산야의 맹수가 되어버린 멧돼지, 과수피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까치 등 야생조수들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점점 늘고 있다. 심지어는 밭을 매던 농부가 멧돼지에 물려 부상·사망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할 정도까지 이르렀다. 이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보은군은 2001년부터 수렵보험료·유류대·실탄비 등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한국자연생태계보전협회에 위탁해 유해조수자율구제단(이하 구제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9년째 유해조수 퇴치를 하고 있는 한국자연생태계보전협회 보은군지회(회장 박대호) 회원들과 그 현장을 함께 했다.

 

▲ 유해조수로 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유해조수 자율 구제단원들이다.(사진 오른쪽부터 박대호 회장, 정한윤 씨,강연창 회원).

 

#긴장속에 멧돼지의 흔적을 찾다
지난 3일 아침8시. 박대호 회장의 전화를 받고 찾아간 곳은 속리산면 백현리.
지프차 뒤에 실려 있는 사냥개 7마리가 사납게 짖고 있고, 박 회장과 강연창(내북면 하궁리 이장)회원은 이미 출발준비를 끝냈다.

오늘 유해조수를 찾아 떠날 코스는 백현리에서 출발해 3개의 능선을 넘어 북암리(부수골)로 내려올 예정으로 약 4시간동안 7~8㎞정도를 수색할 계획이다.

사냥개들을 차에서 내려놓자 쏜살같이 산을 타고 올라가고, 두 사람의 눈빛도 달라진다.
짐승들의 흔적을 이리저리 찾는 것이다. 배설물은 없는지, 진흙목욕을 한 흔적은 없는지.

한참을 올라가자, 한눈에 보아도 멧돼지 배설물로 보이는 것이 있다. 배설물에는 털이 함께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잡식성인 멧돼지가 작은 동물을 잡아먹은 듯하다. 약간 말랑말랑한 것이 멧돼지 배설물인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미 3~4일 전 것이란다.

"낮에 주로 잠을 잤던 멧돼지들이 요즘은 낮에도 먹이를 찾아 이동을 한다. 멧돼지는 하루에도 100리(40㎞)를 움직이며 먹이활동을 하기 때문에 인근에서 찾기는 힘들 것 같다"고 박회장이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능선을 넘어가면 상황이 달라질 것을 기대하며, 다시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아 길을 재촉한다.
농촌진흥청의 통계에 의하면 농작물 피해의 76%가 멧돼지에 의하고 두 번째를 차지하는 것이 과수에 피해를 주는 까치로 약 12%의 피해를 주고 있다. 두 조수에 의한 피해가 전체 피해의 90%를 차지하는 것이다. 많은 피해를 내고 있는 멧돼지는 옥수수, 고구마, 벼, 과수 등에 피해를 주고 심지어 겨울에는 묘를 파헤쳐 놓기도 한다.

여름이라 그런지 개들의 활동범위가 넓지 못한 것 같다. 연신 물이 고여 있는 곳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
강연창 회원은 "여름에는 사람도 힘들지만, 개들도 힘들어 한다. 그래서 구제활동을 겨울까지 연장할 필요가 있다. 눈이 내려 추적하기가 쉽고, 배설물 등 야생동물이 남긴 흔적의 시간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한다.

수렵철인 겨울 약 3개월간 4~50마리의 멧돼지를 잡아, 6월부터 10월까지 이루어지는 구제활동기간에 포획하는 멧돼지의 수의 2배가 넘고 있다.

하지만 보은군은 자연환경보전과 무분별한 남획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입장으로 3년에 1회씩 겨울철 순환수렵장만 허가하고 있다.

 

▲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유해조수 구제를 위해 구제단이 사냥개와 함께 유해조수 출몰이 잦은 산야를 누비고 있다.

 

#사냥개가 없으면 야생동물 찾기는 어려워

#사냥개가 없으면 야생동물 찾기는 어려워

 

 

#사냥개가 없으면 야생동물 찾기는 어려워7마리의 사냥개들이 박 회장을 중심으로 반경 50m이내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멧돼지의 흔적을 찾아다니느라 바쁘다.

 

사냥개 없이 멧돼지를 비롯한 고라니 등 야생동물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현재 박 회장은 사냥이 가능한 개를 16마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24명의 회원이 모두 70여마리의 사냥개를 가지고 구제활동과 겨울철 수렵에 이용하고 있다.

"후각과 청각으로 야생동물을 찾는다.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찾는다. 다만 불러 모을 때만 휘파람을 불어 모이게 한다."

유난히 검은색 개 2마리가 앞장서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개를 설개(사냥잘하는 개)라고 한단다. 보통의 설개는 4~500만원정도하고 최대 1천만원까지도 한다는 박 회장의 말에 개를 다시 쳐다보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비싼 개를 허무하게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야생동물을 잡기위해 사냥꾼이나 주민들이 놓은 차우(덫의 충북 사투리)에 희생되는 경우로 주인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차우에 걸린 개는 십중팔구 잃어버리게 된다.

지금까지 이렇게 3마리를 잃어버렸다는 박 회장은 “정이 든 개를 찾기 위해 일주일씩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개만 찾아다니기도 했다. 결국 찾지 못하고 말았다. 개에 들어간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덫에 걸려 서서히 죽어갈 개를 생각하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뿐만 아니라 간혹 멧돼지와 싸우다 희생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2월 괴산 신월리에서 박 회장의 설개 1마리를 멧돼지에게 희생되기도 했다. “수퇘지의 이빨은 크고 날카로워 한 대 맞으면 개의 옆구리가 터져 그대로 죽을 정도로 강력하다. 똑똑한 설개 한 마리가 500근 수퇘지와 싸우다 죽었다"면서 당시를 설명한다.

#깊은 산이 많은 보은은 피해가 커
멧돼지의 흔적을 찾아 정신없이 걷다보니 어느덧 두 번째 능선 정상에 서게 됐다. 저 아래 어렴풋이 속리산면 부수골이 내려 다 보인다.

보은은 속리산을 비롯한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과 인접한 밭들이 많아 멧돼지 등 야생동물로부터의 피해가 클 수 밖에 없다.

지난해 보은에서는 농작물 피해보상으로 2천만원이 지급됐고, 피해예방사업(보조 60%, 자부담 40%)가 1천800만원, 올해는 2배가 증액되어 3천600만원의 예산이 편성될 정도로 유해조수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7월 장안면 구인리 이모(49)씨 사과밭에 고라니가 출몰해 나무 순과 열매를 따먹어 피해를 입혔으며, 산외면 백석리 박모(65)씨 콩밭도 멧비둘기 피해를 봐 수확을 감소되기도 했다.

산을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박 회장은 “산이 많은 보은군답게 보은읍을 제외한 각 면에 고루 멧돼지가 서식하고 있으며, 마로 소여?오천, 내북 두평, 회인 쌍암 등에서 많은 포획을 하고 있다"고 구제활동 범위를 설명한다.

올해 보은군에 접수된 구제단 출동요청이 60건, 총기소지허가를 가진 농민들이 스스로 해결을 원하는 포획허가요청이 20건으로 현재까지 총 80건의 유해조수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접수되었다.

만일 유해조수로 인한 피해를 본 농민들은 군청 환경산림과(☎540-3253)와 각 읍·면사무소에 농작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설치·운영하는 야생동물 피해신고·접수창구에 접수하면 된다.

환경산림과 김영림 주사는 “최대한 신속히 자율구제단을 파견해 농가피해를 막는 데 힘쓰고 있다. 안전사고 방지를 위하여 유해조수 구제를 하기 전에 방송을 통해 사전에 충분히 알리고 인가나 축사 부근에서는 활동은 금지하고 있다"면서 군의 피해대책을 설명했다.

 

 

 

#힘든 봉사활동으로 농작물 보호에 많은 기여

#힘든 봉사활동으로 농작물 보호에 많은 기여

 

 

#힘든 봉사활동으로 농작물 보호에 많은 기여2001년 7월부터 구제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자연생태계보전협회 보은군지부는 24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으며, 올해는 각 읍면 16명의 회원으로 유해조수자율구제단을 구성했다.
이들은 1개조 3명씩으로 편성되어 한 달에 10~15일 정도 구제활동에 나서고 있다.

 

이들 구제단원들은 산악이동에 편리한 4륜구동 지프차, 엽총(12게이지), 사냥개, 개추적기 등 사냥장비를 갖추고, 낮에는 3~4시간정도 활동을 하고 '야사'라고 줄여 부르고 야간사냥은 밤9시부터 새벽 2시경까지 이루어진다. 물론 야간에는 서치라이트 등 야간에 필요한 장비들이 추가된다.

지난 6월초부터 9월초까지 3개월동안 멧돼지 12마리, 고라니 70여마리를 포획하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5개월간 구제활동으로 멧돼지 30여마리, 고라니 100여마리를 퇴치했다.

길이 없는 산속을 야생동물을 찾아 이리저리 다니면서 벼랑과 마주치기도 하고 비탈길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특히 머리털을 바짝 서게 만드는 커다란 수퇘지와 마주 하기도 하지만, 농작물과 주민보호에 일조한다는 봉사정신으로 구제활동에 나서고 있다.

6월초부터 10월말까지 5개월간의 활동비가 350만원. 실탄 한발의 값이 5천원에서 1만원 가량 하는 것을 감안하면 소위 총알값도 안 되는 돈이다.
하지만 박회장을 비롯한 16명의 구제단원들은 봉사라는 생각으로 구제활동을 벌이고 있다.

강연창 회원은 “시간 뺏기고 돈 뺏기고, 이것저것 바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저 사냥장비와 사냥기술을 갖고 있어 농민들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구제단을 이끄는 입장에 박회장이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군의 많은 지원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기름값과 실탄비만 조금 더 지원되기를 바란다. 회원들에게 자비를 들여가면서 활동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살기위해 산을 내려와 농작물을 먹어 치우는 야생동물, 그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하는 사람들.

산을 내려오면서 야생동물과 사람이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지만,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서로 살아야 하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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