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인두의 길이 그림으로 탄생하다
뜨거운 인두의 길이 그림으로 탄생하다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9.07.25 10:38
  • 호수 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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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낙화장 김영조 선생 공개행사

신기하다. 뜨거운 인두가 얇은 종이 위를 지나가는데 구멍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이 상황이 가능한가?
인두를 다루는 무형문화재의 손놀림으로 얇은 종이위에는 인두가 지나갈 때마다 산수화가 탄생한다.

국가무형문화재 22호인 낙화장 김영조 선생이 공개행사에서 시연을 통해 낙화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22호인 낙화장 김영조 선생이 공개행사에서 시연을 통해 낙화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 능력을 가진 국가무형문화재 136호인 낙화장 김영조 선생이 지난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낙화 공개행사를 보은전통공예체험학교에서 가졌다.
이날 지역기관단체장과 충북대 명예교수인 차용걸 한국성곽협회장, 권기윤 충청북도 학예연구관을 비롯해 충북도 무형문화재인 하명석 목불조각장, 소목장 김광한 선생, 유동렬 야장 전수조교 및 김영조 선생의 지인 등이 다수 참석해 김영조 선생의 시연을 감상하고 전시작품도 감상했다.
김영조 선생은 시연을 하면서 영국에서 전통을 고수했던 에피소드를 설명하기도했다. 화재위험을 이유로 숯불대신 전기인두로 시연토록 했던 것을 선생이 전통의 숯불이 아니면 못하겠다고 고수해 결국 주최측이 숯불로 할 수 있도록 한 적이 있다며 낙화는 아무리 뜨겁더라도 숯불로 해야 한다는 사연을 들려줬다. 괜히 무형문화재가 아님을 느끼게 했다.
낙화장은 종이, 나무, 가죽 등 바탕소재를 인두로 지져서 산수화, 화조화, 인물화 등의 그림을 그리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낙화장은 인두와 불을 다루는 숙련된 손놀림과 미묘한 농담을 표현하는데 표현기법은 산수화에서 산이나 바위를 그를 때 도끼자국이 난 듯, 강하게 붓을 찍어서 바위의 날카로운 질감을 표현하는 부벽준, 크기와 농담이 다른 빗방울 같은 점들을 무수히 찍어서 바위나 산 등을 표현하는 우점준, 동양화에서 산, 암석의 굴곡 등 주름을 그리는 준법 등의 기법이 있다.
김영조 선생은 이 기밥을 이용해 국립박물관에 있는 전통 회화들은 최소 한 번 이상을 그려보고 똑같은 것을 백번 이상 더 그리기도 하고 명화나 명작은 만 번도 더 그려봤을 정도로 연습을 했다. 그래서 인두에 달린 동그란 받침은 매일 비벼도 1년은 비벼야 끊어지는데 10개도 더 끊어지도록 인두를 달궜다. 그렇게 선생의 작품은 무수한 연습끝에 자기그림으로 승화시킨 열정이 배어 있다.
낙화는 그림만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수묵화는 기본이고 서예와 회화, 목판 등 모든 그림을 배우고 알아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실제로 이날 산수화 일부를 시연했는데, 얇은 한지 위에 밑바탕, 스케치된 게 없는데도 쓱싹 쓱싹 인두가 지나는 길에는 농담이 조절된 그림으로 탄생됐다. 가느다란 인두는 섬세한 표현에 사용하고, 두터운 인두는 거칠게 표현하거나 넓은 면적을 태울 때 사용하는 등 도구의 사용에 따른 차이도 있지만 인두가 지나가는 속도와 불의 온도, 손의 힘에 따라 그림이 달라진다는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시연 후에는 보은전통공예체험학교내 전시장에서 선생의 작품을 관람했다. 금강산 어느 골짜기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산수화,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 같은 화조도, 호랑이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지는 그림, 염화시중의 미소를 머금은 불상 등 선생의 혼과 기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은 보는 이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2010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22호 낙화장으로 지정된 이후 8년만인 18년 국가 무형문화재로 승격된 선생과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자부심마저 갖게 했다.
한편 김영조 선생은 1977년 대구동아백화점에서 낙화 개인전을 시작으로 그동안 일본 야마나시현, 미야자키현에서 낙화전시를 했으며 2011년~17년까지 청주 공예비엔날레 공예작가 워크숍, 12년 인도 세계공예심포지엄 한국관 전시, 13년 전통낙화 기록화 사업, 14년 중국 상하이 한중일 공예 명인전에 참가했다. 또 이탈리아 아솔로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및 시연, 15년 대전 전통 나래관 무형문화재 교류전, 16년 일산 킨텍스 대한민국 무형문화재 대전, 중국 낭보시 동아시아 문화도시 한중일 무형문화재 대전, 17년 태국 동아시아문화도시 특별전, 19년 동아시아문화도시 베트남 전통공예 페스티벌 등에 참가하는 등 수많은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고 또 현장 시연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선생의 작품은 세계에 전해지고 있다. 16년 교황의 한국방문시 교황의 얼굴을 그린 낙화를 증정했고 18년에는 스타벅스코리아의 주미대한제국 복원사업 후원 낙화텀블러 제작과 한글날 MD 디자인 작업에 참여해 나라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으로서의 긍지도 심어줬다. 18년에는 미동산 수목원 충북 산림박물관에 낙화 유물 및 작품을 기증, 사라지고 있는 전통문화예술의 장르를 일반인들이 향유하도록 했다.
맥이 끊길 위기에 있던 낙화를 살린 김영조 선생과 선생의 딸인 전수조교 김유진씨는 한국 전통회화 분야인 낙화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매일 매일 화로의 숯불을 지피며 인두를 달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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