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보은을 다시 조직해 사회균형 좀 찾아보자
농민이 보은을 다시 조직해 사회균형 좀 찾아보자
  • 편집부
  • 승인 2019.06.27 00:00
  • 호수 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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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전 경 진
마로 한중/한살림

농사일을 하다보면 조용히 일하면서 여러 생각들이 일어난다. 아이들 생각에서 웃고, 부모님 생각에서 짠해진다. 그러다 내 생각에 이르면 같은 물음이 떠오른다. '내가 농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 주변에서 한결같이 묻는다. '농업에 희망이 있는가?'
농업에 비해 세상의 흐름은 너무 빨리 돌아간다는 느낌이다. 특히 기술의 발전은 갈수록 빨라져서 이 기술이 꼭 필요한지 생각할 시간도 없이 다음 단계의 기술이 벌써 나와 있다.
그런데 왜 갈수록 살기는 어렵다고 할까? 편리한 것과 먹고사는 것이 분리되어 있다. 기술과 기계가 사람의 노동을 대체해주면 사람들은 그만큼 노동에서 자유로워진다. 노동에서 해방된 사람이라면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편하게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에서만 풀어주었지 기계에서 나오는 모든 혜택은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그냥 일자리만 없어지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무노동자가 되어있다. 기술의 혜택이 누군가에게 집중되며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빼앗긴 사람들이 바로 농민일 것이다.
옛날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했던 일들도 지금은 기계가 대체해가고 있다. 기계이전에는 농산물 가치가 어떤 물자보다 귀하게 취급받았을 것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니 그렇다.
그런데 지금은 농산물가격이 갈수록 떨어져간다. 한편에서는 드론이니 스마트팜이니 하면서 산업재벌만  좋아할 이야기가 들리는데 농산물은 갈수록 판로걱정에서부터 적체, 폐기, 똥값이다. 농민이 기계를 타고 앉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농민들 머리위로 올라가 농민을 부린다.
그래서 풍년이 몹시 불안하다. 작년에 이은 올 봄의 양파대란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도대체 그 많은 도시 사람들은 다 뭘 먹고 사는 것일까? 가락시장에서 어마어마한 물량이 하루사이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 사람의 입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결국 아무리 많은 물량이 쏟아져도 사람이 먹어주면 뭐든 해결되는 거다. 여기서 안되면 물을 건너든(수출) 철조망너머서(북한원조)라도 필요한곳에 가주면 된다. 그런데 웬걸, 가격만 깎아서 해결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 수확하지 않아 농산물이 들어있는 멀쩡한 밭을 갈아버리면서 산지조절이라는 정책이라고 내놓고 있다. 생으로 멀쩡한 밭을 갈아엎는 것이 천벌 받을 짓이고 나라를 망치는 일인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은가보다. 이는 살아있는 '소, 돼지, 닭'을 살처분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트랙터 하나가 50명의 몫을 하게 되었다고 하면 농부는 옛날보다 10배는 잘 살아야 한다.
경기가 어려워서 사람들이 잘 안 사먹는다고는 하지만, 경기불황이라는 것이 마치 두려움을 먹고 자라는 구렁텅이 같은 것이어서 소비는 위축되면 될수록 흐르지 못한 체 고인물이 된다. 물이 고이면 무거운 것은 무거운 대로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가벼운 대로 날아가 버려서 상하계층은 결국 모두 망하게 된다.
그래서 건강한 소비가 경제를 움직이는 시작이고 건강한 소비의 기본은 먹는 경제이다. 농부는 내 땅에서 내 먹을거리를 만들어온 경제의 원형이다. 그래서 잘사는 나라들은 농업을 모든 경제시스템의 기초로 꼭 잡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내년예산에서 농업예산을 종전대비 4%나 삭감한다고 한다. 농업예산이 아직도 많이 부족한 상황에서 오히려 4%를 감축시킨다면 소규모 농민들부터 이를 현실적으로 체감할 것이다.
농업인이 진정 어려운 상황이라고 인식한다면 적어도 그렇게 느낀 사람들만이라도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을 보면 농업의 미래는 어떤 정치 지도자도 챙겨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밑에는 농업현실을 정말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농민을 그저 관리만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보은에서도 농민은 새로 뭉쳐야 한다. 스포츠 경기장은 많이 들어서는데 내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밤낮 관람에 동원되다보면 농업으로 가야하는 내 예산이 엉뚱한 데로 흘러가는 데도 박수만 치고 앉아있는 꼴이다.
마디마디가 새로 모여 제대로 된 제안을 해야 우리를 함부로 하지못한다. 관리받지 않아야 자유로워지고, 자유로운 사람만이 자기 권리를 제대로 요구할 수 있다.
따라서 웬만하면 지난 과오나 서운한 감정은 내려놓고 공동의 목적이 맞는다면 받아들이고 화해하고 마음도 좀 넉넉하게 갖자.
이야기하다보면 지난 소소한 일들 때문에 도무지 사람들이 모여지지가 않는다. 도무지 맘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고 온전한 사람이 없다. 그게 당연한 것 아닌가?
보은은 원형문화가 깃든 곳이다. 미륵신앙, 동학운동, 도깨비서민문화가 숨쉰다. 그게 다 앞날보고 움직이고 질박하게 어울린 현장이지 자잘하게 시비 가려가며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고 분별하는 양반문화 파괴살이 아니다. 이제는 대동물결을 타고 물꼬를 트는 농민이 다시 조직되어 사회균형 좀 찾아보자. 다시 조용히 농사일하며 드는 움직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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