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우리는 호떡 동업자'
엄마와 딸 '우리는 호떡 동업자'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9.06.13 10:13
  • 호수 4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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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리 보은농협 앞 호호호떡
호떡을 굽는 엄마 최정미씨와 딸 이혜인씨이다.
호떡을 굽는 엄마 최정미씨와 딸 이혜인씨이다.

뜨거운 초여름이다. 6월말도 아닌데 7월같은 날씨가 벌써부터 시작됐다. 운전자들은 벌써 에어컨을 켤 정도다. 여름 무더위를 식혀줄 것이 무엇이 있을까? 먹을 것으로 따지면 보양식 말고 아이스크림, 빙수, 시원한 아이스음료 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반전이 있을까? 겨울철 즐겨먹는 간식인 호떡 파는 포장마차가 국도 25…37호선이 겹으로 지나는 보은읍 성주리 보은농협 맞은편에 떡하니 서있다.
포장을 들추고 들어가보니 51세의 고운 엄마와 활력 넘치는 26세의 딸이 동업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만드는 호떡이 얼마나 맛있길래 이 뜨거운 초여름에도 손님이 이어질까

#호호 웃고, 호호불어 먹는 호호호떡
결혼 후 직장생활이라고는 꿈에서도 해보지 않았던 평범한 가정주부로만 있던 51세 엄마.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잡기 힘들어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있던 26살 딸. 선뜻 자영업을 하기가 쉽지 않은 조합이다. 하지만 이들의 유의미한 도전은 지난 2월 시작됐다. 호떡포차로 직접 돈을 버는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수많은 업종 중에서 호떡을 선택한 것은 추억의 음식, 감성적이기 때문이었다. 호떡에 꽂힌 후에는 두 모녀가 의기투합해 반죽 만들기 연습을 했다. 물 조절, 밀가루 양 조절, 숙성 등 아무 것도 몰랐던 두 모녀가 반죽만들기 도전을 한지 한 달 만에 합격적인 반죽이 나왔고 그녀들은 하하호호 의기양양 밖으로 나왔다.
포차 이름도 호호 그녀들의 웃음소리를 따고 또 옛날 호떡 먹을 때 뜨거워서 호호 불었던 추억을 떠올려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호호호떡이라는 이름을 정했다.
호떡 포차를 처음 시작했던 지난 2월 바람막이 하나 없는 들판에 홀로 서있는 것처럼 호호호떡 포차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4차선 도로변에 세웠다.

#잘됐다 일부러 손님이 왔다
곧게 길이 뻗고 놀러가거나 집에 가거나 아니면 직장에 가는 사람들이 통행하기 때문에 만약 호떡을 구입한다면 한두 개가 아닌 대량으로 구입할 것이라 예상하고 4차선 도로변을 잡은 것인데. 예상은 적중했다. 손님이 꾸준했고 일부러 와서 사가는 손님도 많았다.
오전 10시30분에서 11시에 문을 열고 오후에는 5시에서 5시 30분까지 운영하면서 반죽이 일찍 떨어져 빨리 문을 닫는 날도 많았다.
이러저러 사정상 문을 열지 못할 때면 다음에 꼭 와서 문을 닫은 줄 알았다, 이제 안하는 줄 알았다고 말을 하는 고객이 있을 정도로 단골도 늘었다.
딸은 엄마가 만든 호떡을 노릇노릇하게 잘 익히도록 판으로 눌러 호떡을 만든다. 근무일도 주5일. 일요일은 쉬고, 금·토요일엔 모녀가 같이 하고 화·목요일은 엄마가, 월·수요일은 딸이 맡는다.
요즘 한 여름같은 날씨에 호떡을 만드는 엄마는 하루 종일 얇은 고무장갑을 끼고 있다. 고무장갑 속은 물을 넣은 것처럼 땀이 흥건했다. 손님이 없을 때 가끔 고무장갑을 벗어서 손에게 바람을 쏘이는데 이렇게 열심히 호떡을 굽는 이유는 은퇴 후 갈 곳이 없는 가난한 선교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여름에는 호떡과 함께 음료수, 옥수수도 팔 예정이다. 열심히 해서 최대한 빨리 이들의 쉼터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꿈 때문에 엄마는 고생을 감수한다.

#부천에서 귀농, 마을 부녀회장도 맡아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들 모녀는 사실 보은사람이 아니다. 2016년 6월 부천시에서 장안면 장안1로 이사한 귀촌인들이다. 무조건 시골로 가겠다고 선언한 엄마는 시골로 내려가는 것을 싫어하는 아빠를 졸라 서울과 가까운 보은으로 이사했다.
날마다 새 소리를 듣고 깨끗한 공기 마시며 지금은 사는 것처럼 산다는 엄마는 부천에서는 가족들에게 아침밥을 해주지 못할 정도로 몸이 쇠약했었다. 그러나 장안으로 이사 와서는 가족들에게 아침밥을 지어줄 정도로 몸이 무척 건강해졌다. 파리가 들어오든 말든 창문을 활짝 열어 산뜻한 공기를 실내로 끌어들이는 귀촌생활에 만족해하고 있다.
동네에서는 부녀회장도 맡아 어르신들에게는 살가운 딸 노릇을 하고 있다. 마을에서 단체여행 한 번 가지 않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인천 월미도 관광 시도했는데 어르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부녀회장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 우리 내년에도 가자"며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애틋해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처음 시골로 내려오는 걸 싫어했던 남편도 이젠 시골생활 완전 100% 적응이다. 처음엔 5일 중 4일은 서울에 있다가 하루 정도 보은에 있더니 지금은 거의 올라가지 않고 장안 집에서 사업을 할 정도로 귀촌에 만족하고 있다. 컴퓨터 관련 사업으로 머리를 쓰는 일이 많았던 남편은 정원을 가꾸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다가 지금은 직접 농사에 도전했다.
대추대학도 나오고 동네 또래 분을 따라다니며 가지치기 등 대추농사 짓는 것을 배우고 1천200평에 대추과수원도 조성해 본격적으로 대추농사를 짓고 있다. 앞으로 일본에 대추를 수출하는 유통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이들의 귀촌은 자신들의 생활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지역에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있다. 젊은 인구증가 유입으로 초고령사회인 보은의 평균 연령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역할을 했다. 남편과 51살 동갑인 최정미씨는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뒀다. 엄마와 호떡을 굽는 딸 이혜인씨는 26살, 아래 남동생이 있고 늦둥이인 10살인 막내가 속리초등학교 3학년이다.
길거리 음식이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국도변을 선점해 호떡을 판매하고 옛날 친정 부모님이 사용했던 요강을 금고로 사용하고 주전자를 식용유통으로 사용하는 이들의 발상의 전환도 재밌다. 목표가 뚜렷한 만큼 좋을 결과를 얻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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