꿔다 놓은 보릿자루
꿔다 놓은 보릿자루
  • 보은사람들
  • 승인 2019.06.05 10:41
  • 호수 49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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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오 황 균
청주충북환경연합 상임대표
내북면 법주리

조선시대 일이다. 연산군을 쫓아내기 위해서 반정세력들이 숭정대부 박원종의 집에 연일 모여 거사를 준비하게 된다. 좁은 골방에 여럿이 모여앉아 두런두런하는 참에 호롱불이 흔들리는 저 뒤 어둑어둑한 구석에 염탐꾼인 듯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 대경실색하여 소란을 피운 끝에 알고 보니 그것은 사람이 아니고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위에 도포와 갓을 올려둔 것이었단다. 그 후 사람들은 있는 둥 없는 둥 자리만 지키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라고 일컫게 되었다 한다.
이번 5월 22일부터 29일까지 열린 제329회 보은군의회 임시회를 보면서 깊은 탄식과 분노 섞인 부끄러움이 교차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무엇보다 27일 군정질의에서 답변자로 나선 군수의 태도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마치 질의하는 군 의원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오만상을 찌푸린 표정으로 상대의 존재는 아랑곳없이 분풀이하듯 퍼붓는 답변은 차라리 아랫사람을 향한 질책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작년 9월에 열린 제321차 보은군의회정례회에서 '군수님은 답변석으로 가달라'는 의장의 요구를 묵살하다가 마지못해 답변석으로 가서는 군의원들을 향해 가르치듯 호통을 치던 군수의 모습이 다시 떠올라 참으로 장탄식을 멈추기가 어려웠음을 고백한다. 이 두 장면을 지켜본 보은군민들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필자 혼자만 느끼는 실망이라면 차라리 마음은 편할 텐데, 참으로 마음이 불편한 분들이 더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
작년에는 보은군의정모니터단도 활동을 시작해서 여러 분이 방청석에 앉아 있었고, 더더구나 코앞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많은 보은군의 공무원들과 비서 혹은 참모들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군수에게 쓴 소리 한 번이 없었을까. 아니면 군수 자신이 '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라는 주변의 조언을 묵살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군민을 대표하는 군 의원들에 대한 군수의 태도가 어째서 일 년이 지나도록 그대로란 말인가.
나는 오래 산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는 이제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아니 상상할 수조차 없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답변석으로 불려나온 총리며 장관들이 질의하는 국회의원들로부터 별 소리를 다 들어도 고개 숙이며 자기할 답변만을 애써 토로하는 모습은 수도 없이 보았다. 국회가 이럴 진데, 동학의 정기가 흐르고, 항일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보은군에서 어찌 이런 일이 거듭된단 말인가. 국민의 공복이라면 우리는 최소한 꿔다 놓은 보릿자루나 꿀 먹은 벙어리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발언석에 나가 질의에 임하는 동료의원에 앞에서 답변이라기보다는 폭언에 가까운 군수의 말 폭탄에도 묵묵히 자리에서 참고 또 참으며 침묵하던 군 의원들도 몇 분을 빼 놓고는 모두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의장이 나서서 제지할 때까지 누구 하나 의석에서 군수의 답변 태도에 항의의 말 한마디 표출한 의원은 없었다. 위의 지적이 듣기 매우 거북할지는 모르나 군수는 군민들의 상머슴이고, 군의원들은 그 주인인 군민들을 대표하는 존재라는 바른 인식을 가졌다면, 어찌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까. 신성한 민의의 전당인 의회에서 도대체 이런 일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묻고 싶다. 지금이라도 의원들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혈세 먹는 하마' 격인 속리산 숲체험휴양마을 사업 등 걱정되는 군정 전반에 대해 철저한 추궁이 있어야 하고, 특히 특혜시공 시비가 일어나 회의 도중 의원들이 직접 현장을 방문한 성족리107-7번지 식생블록 설치 건에 대한 충북도 감사청구라도 결의하는 것이 그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본다. 
백 보를 양보해서 설혹 의원들의 질문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어찌 군수로서  책상을 치고 그것도 모자라 의원들의 말을 무지르고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 고운 글을 쓰는 본 칼럼에서 당시의 발언들을 일일이 열거해서 고운 결을 퇴색시키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결 고운 글이란 부드러움에 얽매여 줏대 없이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곱게만 늘어놓는 것이라는 의견에 나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하여 군민들의 대변자로 존중받아 마땅한 군 의원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발언들을 쏟아내고도 성찰은커녕 사과 한 번 없는 군수에게 나는 나직이 고운 말로 고언을 들려드리고 싶다. “군수님!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이제라도 꼭 군민들께 진심어린 사과를 하셔야 합니다!"라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대숲에 들어가 외치던 신라 경문왕 때 복두쟁이의 심정으로. 혹은 뭇 사람들의 속없는 칭송 속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던 임금님을 향해 '임금님은 벌거숭이다'라고 외친 동화 속 아이의 순수함으로 쓴 소리를 드린다. 왜? 아무리 보잘 것 없다 해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나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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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오네 2019-06-08 12:18:05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