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라!'
'선택과 집중!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라!'
  • 편집부
  • 승인 2019.05.23 10:12
  • 호수 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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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동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보은'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당연하게 속리산과 법주사일 것이다.
꽤 오래 전. 그러니까 호랑이가 곰방대 물고 담배 피우던 시절. ㅎㅎ 그러나 나는 아직 담배도 피우지 않던 어린 시절. 집에 굴러다니던 형들 스케이트를 동대문운동장 옆 중고운동용품점에 몰래 팔아 거금 3천원을 마련했다. 그 돈으로 빡빡머리 친구 두 놈과 태어나 처음으로 무전여행을 떠나 처음 간 곳이 속리산이었다. 그 시절 우리 형님들과 누님들 신혼여행지도 속리산, 대다수의 중학생들 수학여행지도 속리산이었다, 속리산은 박정희 대통령이 처갓집을 방문하기 위해 옥천을 가다 1년에 한 두 번은 꼭 들렀다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 보은하면 대개 다 속리산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시절에는 법주사 앞 상점들이 성수기 한 철만 벌면 충분히 먹고 살고, 자식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킬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보은이 전라도와 경상도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였고 강원도나 남해안을 가려면 꼬박 하루가 걸리던 시절이었으니 속리산은 관광의 명소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파리, 세부, 파타야, 피지는 잘 알아도 보은이 충북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내가 사는 보은이 지리산 자락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보은과 속리산 경제가 침체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보은을 다시 찾게 할 수 있을까?
최근 보은대추는 보은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한 것 같다. 그 성공의 요인은 관과 민이 합심하여 대추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대추축제에 많은 투자와 적극적인 홍보를 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보은을 알릴 수 있는 브랜드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동학혁명과 관련된 보은취회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학하면 녹두장군 전봉준과 고부군수 조병갑을 떠올리지만 사실 동학의 시작과 끝은 보은이었다. 1893년 3월 11일부터 20여 일 동안 보은 장내리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3만여 명의 농민들이 신분 차별을 없애고 유무상자(가진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돕는다)와 평등, 척왜양을 주장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민중집회를 열었다. 또한 그 다음 해 겨울, 일본군과 관군의 기습적인 토벌에 북실마을 전투에서 2,600여명의 농민군이 마지막으로 항전하다 참혹하게 학살당한 곳도 보은이다. 동학혁명에 있어 보은은 시작과 끝인 것이다.
보은군은 북실마을 근처에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을 이미 잘 조성해 놓았다. 공원 안에 동학농민군위령탑과 산을 배경으로 멋진 야외 공연장도 만들어 놓았고 보은취회와 북실전투 등에 대한 자세한 역사 해설판도 잘 설치해 놓았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동학혁명에서 보은이 차지하는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볼 때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로의 역사적 의미를 더 깊이 연구 홍보하거나 이를 축제로 승화, 발전시키는 노력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현재 동학 보은취회와 관련된 행사가 관과 민간단체 등 3곳에서 개최되고 있으나, 미미한 규모, 부족한 홍보 그리고 다발적인 행사로 인해 보은군민들마저 행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이 현실인 게 안타깝다.
차제에 민간 주도의 동학 보은취회 관련 단체들은 뜻과 힘을 합치고 관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동학 보은취회를 학술가들과 공연예술가들이 1893년 3월 그날처럼 삼삼오오 전국에서 모여 함께하는 역사문화예술축제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양함도 좋겠지만 좁은 보은에서 여러 단체가 분산해서 행사를 추진한다는 것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힘의 낭비라고 할 것이다. 
한 가지 새겨봐야 할 사실은 국내외적으로 성공한 축제들의 공통점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시작하여 자리를 잡아나가면 관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라!'
김대중 대통령이 문화정책자들에게 했다는 유명한 문장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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