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여름 단상
초 여름 단상
  • 편집부
  • 승인 2019.05.23 10:11
  • 호수 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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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인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천지에 가득합니다. 어린 모가 심겨진 넓은 들판은 이제 멀리서도 푸른빛이 완연합니다. 지난 겨울이 춥지 않았던 때문인지 올 봄에는 꽃도 많이 피고 나무들은 더 크고 윤이 나는 잎을 하루가 다르게 키우고 있습니다.
처음 '初(초)' 字(자)가 붙으면 대부분의 경우 붙지 않았던 본래의 단어보다 더욱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저녁'보다는 '초저녁'이, '가을'보다는 '초가을'이 듣는 이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합니다. 처음 '初(초)' 字(자)를 접두어로 사용한 단어 중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와 닿는 것은 아마도 '初心(초심)'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많은 국민들을 진정 짜증스럽게 만드는 단어중의 하나도 바로 이 '初心(초심)'이라는 단어입니다. 특히 그 단어가 정치와 연관되어 사용될 때 더욱 그렇습니다. 국회 안에서 여야가 난장판이 되어 국회일정을 마비시키고, 선출직에 당선된 사람이 부정을 저질러 구속되면서도 모두들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이 '初心'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初心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初心을 지키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다'등등의 표현이 언론에 등장합니다.
하기야 어찌 유명인들에게만 初心을 잃은 것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둘러보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民草(민초)들도 初心을 잃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는 다소 억지감이 들어도 '내불남로'로 바뀌어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옛 어른들은 嚴以治自和以待他(엄이치자화이대타)라는 점잖은 표현으로 자신에게 엄격하며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는 德(덕)을 쌓는 修行(수행)을 강조하셨습니다.
얼마 전에 지역신문을 보니 한 개인 소유의 농지에 과도한 공적예산을 들여 농지의 효율성과 재해예방을 시도한 것이 문제가 된 기사가 있었습니다. 과도한 예산이 사용되었는지, 부당한 조치였는지는 공적 감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그 농지의 소유자와 군정의 최고 책임자가 서로 돈독(?)한 관계라는 것이 더욱 군민들의 의구심을 키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 경우 농지소유자와 군정책임자 양자 모두가 '내로남불'이 아닌 '내불남로'의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스스로에게 적용했더라면 군민들이 혀를 차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합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오신 날, 스승의 날이 모두 지나갔습니다. 5월은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 누구인지 또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달입니다. 그리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별칭답게 아름다운 달입니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 오월에 우리들 모두가 아카시아 꽃보다 더 향기롭고, 신록보다 더 싱그러운 존재로 거듭나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 지름길은 아마도 우리 각자가 '初心'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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