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트랙터 품앗이
통일트랙터 품앗이
  • 편집부
  • 승인 2019.05.08 21:39
  • 호수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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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오황균
(청주충북환경연합 상임대표/내북면 법주리)

전국농민회총연맹이 북한의 농사를 돕고 추수 후에는 농산물로 돌려받는 식으로 통일트랙터 50대를 마련하여 남과 북이 품앗이 사업을 한다니 이 얼마나 참신하고도 기발한 발상인가. '품앗이'가 무엇인가. 우리 민족 대대로 내려오는 아름다운 전통이다. 아니던가. 바쁘고 힘든 농사일을 서로 도우며 일손을 나누는 우리 민족 고유의 마을공동체 협업이 바로 '품앗이'다. 남북 관계가 얼어붙어 꽉 막혀 있을 때, 돌아가신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소 1001마리를 몰고 경계가 삼엄한 판문점을 가로질러 북으로 향했다. 1998년의 일이니 벌써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른 새벽 목에 화환을 건 북으로 가는 황소가 내뿜는 하얀 콧김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통일로를 줄지어 달리던 소떼를 실은 트럭의 행렬은 통일을 열망하는 우리 민족, 아니 전 세계인의 가슴에 놀라움과 커다란 감동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지 않았던가. 그 감격스러운 사건으로 남과 북은 철천지원수가 아니고, 함께 도우며 살아갈 같은 민족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고, 남의 자본과 기술에 북의 노동력이 어우러져 함께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는 개성공단이 문을 열게 되었다. 사람 사는 이치야 어디인들 다를 수 있으랴. 노상 싸우다가도 어려운 일 닥치면 서로  도와주고 그러다보면 정도 싹트고 하는 것이지.
4월 27일 신새벽! 충북농민회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고 통일트랙터를 북에 전하러 임진각으로 향하는 마음은 설렘과 감동 그 자체였다. 함께 가는 영동, 옥천, 미원의 농민회 회원들도 가슴 뿌듯한 기쁨에 들떠 차마 말을 잊지 못한다. 임진각으로 향하는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산과 들은 온통 초록의 향연장이다. 들판에서는 농사 준비로 트랙터를 몰고 나온 농민들이 분주하게 논과 밭을 일구고 있다. 이제 일철이 돌아왔으니 농부들은 논과 밭에서 추수 때까지 뼈가 부서져라 일을 해야 한다. 이 바쁜 농번기 초입에 농사일 제쳐두고 우리는 임진각으로 간다. 온 국민의 성금으로 마련한 27대의 통일트랙터를 북에 전하러 간다. 우리 국민들의 위대함과 평화통일에 대한 열망이 다시 한 번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제 시작이다. 서울을 지나쳐 임진각을 향하는 통일로에 접어드니 임진강가 철조망이 '여기가 최전방이오.'라고 무언의 공포를 전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올라오는 버스 행렬이 장관이다. 그러고 보니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4·27평화 선언을 한 지 꼭 1년이 지났다. 버스 안에서 찾아본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은 읽어보면 볼수록 의미가 소중하고 뜻 깊다.
판문점 거의 다 가서 임진각 통일대교 앞 행사장에 도착하니 웅장한 27대의 트랙터가 줄지어 서 있다. 로우더를 높이 추겨 든 트랙터의 모습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그러나 트랙터는 더 이상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에 가로막혀 멈춰선 것이다. 논밭을 가는 농기계까지 지원을 못하게 막고 있으니 그 제재라는 것이 얼마나 무차별하고 맹랑한 것인지. 통일트랙터는 인적교류사업으로 대북제재의 대상이 아니라는 농민들의 주장이 진정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대북제재 해제하라'는 손 팻말을 들었다. 오늘 행사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제주는 물론이고, 저기 땅 끝 마을 해남에서부터 경기 강원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와 농민, 시민들이 '통일트랙터품앗이' 출정식을 진행해 왔다. 언론은 4월 24일 열린 해남군 출정식에 참석한 명현관 군수가 "한반도의 최남단 땅 끝 해남에서 최북단 온성군으로 보내는 트랙터가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고, 통일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며 희망 메시지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오늘 행사가 끝나고 북으로 전해져야 할 트랙터는 다시 발길을 돌려 인근의 '임진각평화공원'으로 향한다. 아! 철조망은 탱탱 녹이 슬었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트랙터 뒤를 따라 공원으로 되돌아가는 우리의 가슴은 찢어지고 발걸음 또한 천근만근이다. 마침 오늘은 역사적인 'DMZ평화인간띠잇기' 행사가 있는 날이어서 한반도의 허리를 갈라놓은 휴전선 인접한 공원이 인산인해다. 공원에서는 평화인간띠잇기 행사를 마친 많은 시민들이 모여 열띤 주장을 펼치는 가운데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연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서야만 하는 허탈한 심정을 가누지 못한 농민들이 쓴 '쐬주'로 아린 마음을 달래며 일갈한다. "메칠이 걸리더래두 쭉 밀고 나가서 철조망을 걷어내야 되는 거 아녀?" 그렇다. 저렇게 수 십 년을 하릴없이 세워둔 철조망을 걷어치우고 이제는 평화로 번영으로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은 철옹성처럼 가로막혀 있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지만, 팔천만 한민족이 지혜를 모으고 노력과 정성을 기울인다면 결코 먼 미래의 까마득한 일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버스에 몸을 싣는다.

칼럼리스트 오황균
(청주충북환경연합 상임대표/내북면 법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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