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와 손님
약사와 손님
  • 편집부
  • 승인 2019.03.21 10:07
  • 호수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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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환욱

몸과 마음이 항상 건강하면 좋겠지만 세상은 사람들을 여러 고난에 빠트립니다. 사람끼리도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그러면서 서로를 치유하기도 합니다. 병 주고 약 주는 오묘한 관계입니다. 병은 이 사람에게서 얻었으나 약은 저 사람에게서 얻기도 합니다. 마치 약사와 손님처럼 말이죠. 그런데 때로는 약사와 손님이 뒤바뀌기도 하는, 세상은 움직이는 약국입니다.
학교도 그러합니다. 선생님은 찾아온 아이들의 처방전을 생각하느라 참 바쁩니다. 처방전이 어느 정도 규격화되고 정해져 있어서 쏙쏙 골라서 쓰는 것들이 바로바로 효과를 보면 좋겠지만 찾아오는 손님들은 갈수록 새롭고 개인적이며 장기적인 요구를 합니다. 한 번의 처방으로 낫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때로는 손님이 도리어 약사를 아프게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이 참 곤란합니다. 한참이나 어린 손님에게서 받은 데미지는 충격도 충격이지만 이를 치유하고 쉴 틈이 없습니다. 바로 다른 손님 앞에서는 멀쩡한 척 영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약사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약국 전체는 시름시름 앓을 것입니다.
물론 상황이 이 정도로 악화되기 전에 누군가는 구원투수로 나타날 것입니다. 신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물론 처음부터 아프지 않게 해주면 참으로 감사하겠지만 신은 아마도 인간을 단련시키고 싶어 하시나 봅니다.
구원투수는 사람일 수도 좋은 글귀일수도, 어떤 이벤트나 찰나의 아이디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나은 것은 자신에게 병을 준 당사자에게서 약을 얻는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말이지요. 문제의 원인에 깊이 다가갈수록 치유의 효과 또한 깊겠지만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회복적 정의라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끕니다. 가해자를 색출하여 처벌하는 응보적인 패러다임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진심어린 뉘우침을 표현하여 피해자의 회복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바라는 것이죠.
한편으로 어른들은 모두 약사입니다. 성인은 누군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찾아 공부하여 자신만의 처방전을 갖춰가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것을 토대로 가정이나 직장 등 각종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조언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또한 각각의 리더입니다.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책은 무수히 많습니다. 제가 보는 매거진에 리더가 꼭 지켜야 할 덕목들에 대한 글이 실렸는데 내용이 직설적이면서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첫째, 과거의 성공 경험은 모두 잊을 것. 그 경험은 이미 과거의 것이고 구성원의 인식과 환경이 과거의 것과는 다르기에 과거의 정답은 현실에서 매일 매일 과거로 흐르고 있음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조직은 리더의 철학을 실현하는 곳이 아니라 구성원의 자아실현을 돕는 곳이라는 것.
셋째, 구성원 모두가 마음 놓고 개성을 발휘하는 조직문화를 만들라는 것.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 일할 때 최고의 성과를 발휘하는 것이지 타인이나 조직의 방식으로는 창의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체 조직에서는 통제된 관료모드로 일하다가 개인 작업에서 갑자기 창의성 모드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넷째, 구성원을 최고로 대우할 것. 구성원들을 최고로 대우하면 그들도 리더에게 최고로 되돌려줄 것이며 자부심 또한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로 리더의 생각을 투영시키려 하지 말 것. 그것은 구성원을 리더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라는 거죠. 여섯째, 조언 대신에 행동으로 보여줄 것. 아마도 이것들이 모두 지켜진다면 최고의 조직이 될 것입니다.
몇 장을 뒤로 넘기니 이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또 있습니다. '학교는 어떻게 성공하는가?'에 대한 논문을 발췌한 것인데 학교가 성공하기 위해서 '교육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동의 일이며, 그것도 훌륭한 한 명의 리더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리더십으로 상호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현실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당 학교의 학생들은 교실에서 배움의 주인공이 되어 삶과 지식을 연결하여 공부함으로써 학교 가는 것을 행복해했고, 교사들은 상부의 명령과 관행을 따르는 것에서 벗어나 기존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고의 틀을 깨는 경험을 하였으며, 학교 차원에서 교직원과 학부모 모두가 한 팀이라는 의식으로 함께 성장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를 '공유리더십'이라 불렀고 이를 기반으로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었으며 끊임없는 문제의식과 대화로 높은 수준의 문제해결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 직원들 모두가 스스로 리더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행동하여 학교의 성장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학생의 행복을 추구하며 각자의 소질 발현을 돕는다는 본래의 목적을 그 자체의 순수한 의도로 실행을 하는 것. 그 과정에서 각자의 창의성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공유리더십이 온전히 대접받을 때 학교든 다른 조직이든 성장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느껴졌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아마도 개성 넘치는 약사들이 여럿 있을 것입니다.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나처럼 다른 리더도 매우 중요함을 알고 서로에게 처방전을 내밀 것입니다. 짓궂은 손님들도 약사들의 열정과 공동체성에 태도가 바뀔 것입니다. 자신들을 위해 그들이 수고하고 애쓰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약사와 손님 모두 행복한 약국이 여기저기에 많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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