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간 누에농사 지은 양승기씨
64년간 누에농사 지은 양승기씨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9.03.07 10:28
  • 호수 4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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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재임 양잠조합장 드디어 후임에게 전수

 

누에는 봄, 가을 1년 두 차례 친다. 영농기간도 짧고 노동력이 집중되지만 콩 등 일반 밭작물보다 동일면적에서 거둬들이는 소득이 높다. 과거 누에농사는 누에치가 실을 빼 고치를 만들면 이를 실크의 원료로 판매하고 번데기를 파는 것이 고작이었으나 누에가 당뇨병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누에를 고치생산용에서 누에 동결건조, 동충하초, 뽕잎 나물, 뽕잎차, 뽕나무 열매인 오디까지 판매하는 등 고소득 작물로 부상했다. 더욱이 곤충이 산업으로 발전하면서 부가가치가 더 높은 작물로 손꼽히고 있다.

이같이 대한민국의 양잠역사를 써온 탄부면 벽지리 양승기(82)씨가 지난 연말 총회에서 조합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2000년 1월 보은양잠협동조합장이 된 후 19년간 재임하는 동안 나이가 많아서 못하겠다고 젊은이에게 물려주면 젊은이는 시간이 없다고 도로 자신에게 맡기고 또 물려주면 또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근근히 양잠조합을 이어왔던 것이다.

그러다 지난 12월 총회에서 신임 조합장으로 류재석씨를 선출하고 일반 조합원으로 돌아갔다.

양승기 전 양잠조합장은 "보은양잠조합이 안고 있었던 빚이 많았어. 경찰서 앞쪽에 조합 재산으로 건물 3동이 있었는데 부지는 넓지만 위치가 그래서인지 세도 잘 나가지 않고 애를 먹었어. 그런데 최근 보은군이 도시계획도로를 내면서 조합 땅이 편입돼 보상을 받는 바람에 빚을 갚았지. 빚 청산에 20년이 걸렸어. 그동안 책임감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조합장을 계속했던 것이다"라며 "빚을 모두 청산하고 조합재산도 남은 상태에서 후임자에게 물려줘서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양 전 조합장은 보은 조합장을 하면서 그동안 충청북도양잠진흥회장 및 잠사회 대의원, 양잠연합회 이사도 지냈다. 보은군 양잠농가를 대표해 양잠 활성화를 위해 한 시절은 바쳤다. 보은의 양잠업은 9농가가 1만여평에서 누에고치를 생산하고 있다.

양승기 전 조합장이 양잠농사를 진 것은 64년 전이다. 18살 때 아버지를 여읜 후 먹고 살 일이 막막했던 가난한 집 아들 양승기씨는 당시 처가(삼가리)에서 누에농사 짓는 것을 보고 양잠농사에 뛰어들었다. 가진 땅이 없었던 양승기씨는 남의 산에 뽕나무를 심어서 누에농사를 시작했다.

산주인도 돌보지 않았던 임야는 양승기씨가 뽕나무를 재배하면서 땅 값 높아진 경작지가 됐을 정도로 64년간 누에농사에 집중하면서 생활형편도 나아지고 조금씩, 조금씩 저축도 할 수 있었다. 땅 한평 없이 시작한 농사였지만 논 4천평, 밭 2천평을 사고 처음 뽕나무를 심었던 산도 7천평을 매입했다. 부자가 됐다. 물론 봄과 가을 1년에 두 번 누에를 한 번 칠 때마다 24장(1장 : 누에 알 1만마리)까지 칠 정도로 누에와 동고동락한 결과다.

실크의 원료인 누에고치를 생산하고 당뇨병에 좋다고 알려진 누에를 냉동 및 열 건조하거나 동충하초로 가공하는 등 다양한 제품들ㄹ이 만들어 수익을 높였다. 또 뽕나무 열매인 오디도 직거래로 판매하고 일부 뽕잎나물도 생산했다.

꼬물고물 꼼지락거리는 흰 미물이 징그러워 보이기도 한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는 소리가 마치 비오는 소리처럼 들려 2002년엔 환경부가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에 선정했을 정도로 미물이지만 결코 미물이 아닌 누에로 양 전 조합장은 부농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재미있게 누에농사를 진 양 전 조합장은 82세인 지금은 몸도 아프고 힘에 부치기도 해서 작년에는 봄과 가을 3장씩 6장 치는 것으로 대폭 줄였다 24장까지 쳤던 것에 비하면 1/4로 줄였다. 누에를 이용한 제품보다는 황금누에고치 생산에 주력했다. 올해도 양을 늘리지 않고 이 정도만 유지할 생각이다.

부인 김순자(77)씨와의 사이에 1남4녀를 둔 양승기 전 조합장은 "1년에 2회 두 달 정도 고생하는 것에 비하면 수입은 꽤 괜찮은데 이제는 고령이라 3, 4장 치는 것도 버겁다"며 "그래도 아들이 귀농했으니까 하지 안그러면 힘들어 못해 벌써 남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64년 뽕 농사를 지은 양승기 전 조합장은 올 봄 어김없이 누에농사를 위해 잠실을 청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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