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닮은 어진 촌장님이 계셨으면…
땅을 닮은 어진 촌장님이 계셨으면…
  • 편집부
  • 승인 2019.03.0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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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집에 와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초등학교 저학년인데 친구들이 불러서 나가기로 했단다. 그런데 그 거리가 멀어서 마침 아내가 그 아이를 태워다 주었더란다.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친구에게 언제 오냐고 전화했더니 '야 그거 몰카야! 키킥'하고 자기들끼리 웃더란다. 아이는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화가 나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한참을 있다가 다시 아내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아내가 아니었으면 집에서 떨어진 곳이라 혼자 돌아가느라 꽤나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집 애가 '요즘 애들은 그걸 몰카라고 하는구나'하며 자신도 학교다닐 적에 그런 경험을 했었다고 한다. 좀 가볍게는 '선생님이 시키셨다'고 자기들끼리 거짓말을 정해놓고 우리 애가 골탕먹는 걸 보면서 저희들끼리 웃는 놀이를 하더란다. 우리집 애는 사이가 틀어지든 말든 정색을 하고 따졌단다. 다음에 그런 장난은 하지 않았다지만 서로 어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일명 '몰카'를 당한 아이는 다문화출신 아이이고 우리집 아이는 귀농한 아빠 따라 전학온 지 얼마 안 된 아이였었다.
이런 말을 서두에 꺼내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있을법한 사소한 장난이나 사생활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야기야 가벼운 따돌림 같은 내용이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장난같은 일들이 보은에 살면서 모두가 알든 모르든 겪고 사는 일들처럼 느껴진다.
친환경농사를 하겠다고 귀농해서 마을에 들어와서 농사짓고 산지도 올해로 10년째이다. 도시에서 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항상 고민했었다. 피폐해져가는 선배 직장인을 볼 때 임금 노동자로서의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았다.
갈수록 험악해져 가는 기울어진 자본주의의 그늘이 개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구조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되도록 덜 자본화된 시골에 가서 '농촌공동체, 생태농업, 마음살리기'를 실현해가며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향이라고 믿고 실천했다. 함께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다 같이 사는 꿈도 꾼 것 같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 생각들이 비록 잘못된 생각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농촌과 사회전반의 현실을 잘 몰랐다는 결론이 든다. 사람의 마음도 이윤과 명예에 손쉽게 좌우되고 겉과 속이 항상 같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쁘고 좋고'가 아니라 '그냥 그렇다'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순진하거나 순수한 젊은 열정이자 낭만 같은 것이었다. 손실이 크고 아픈 경험이지만 여기가 아니었으면 얻기 힘든 '앎'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임에도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점. 바르고 제대로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을 생각해야 한다. 세상살이가 내게 와서 '이거 몰카였어'라며 조용히 속삭이고 나서야 나는 알게된 것이다. 뒤통수를 울리는 문제인식을 하고나서 나는 농촌에서 새롭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는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이 공간에서 조금씩 풀어놓고 싶다.
첫째로 농촌사회의 본질 또한 도시와는 다른 형태지만, 매우 자본주의적인 시스템 속에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생태농업의 현실도 몹시 착취적인 농업구조와 맞물려 시장질서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무엇을 해도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인 결핍을 이야기하고 싶다.
귀농하면서 지금까지도 느끼는 부분이지만 토박이와 동향출신이라는 폐쇄성, 편법과 반칙을 통해서라도 이윤만을 추구하는 행태들은 무엇보다 먼저 공동체의 평등성, 농업의 경제성을 파괴시킨다. 제대로 된 인간사회라고 하면 약자와 소수자도 공존할 수 있는 장치가 가장 기본적인 필수조건이다. 그래야 마을이든 지자체든 지속가능하게 존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을, 우리 지자체에서 상대적 약자는 누구를 말함인가? 약육강식의 경쟁 속에서 우리는 누구나 상대적 약자가 될 수 있다. 오늘의 강자도 내일은 더한 강자에 의해 약자로 전락되는 것이다. 약자를 지켜주지 않으면 결국 사회는 점차 축소되어 소멸해갈 것이다.
마을의 약자가 비단 독거노인, 장애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다. 막 들어온 기반없는 귀농청년이 그렇고, 최저임금 수준에서 겨우 버티고 사는 생계형 가장이 약자이고 또한 소수자이다. 약자를 보살피려면 사회모순을 살필 줄 아는 지성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성찰, 그리고 타인을 존중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 인간다움을 상실한 마음은 결국 저급한 엔돌핀만 탐닉하게 된다. '몰카'따위로 약자를 우롱하는 패거리들만 만들어 다니다가 결국엔 다같이 폐망하는 길만이 남을 것이다.
봄이 다시 돌아온다. 매년 반복되는 농가의 일상이 시작되지만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계절의 약속마저도 지금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요상한 조짐들로 가득하다. 몇 년째 너무 덥거나 너무 가물거나 너무 폭우가 내린다. 한마디로 '하늘도 너무하다.'라고 한다. 기후가 바뀌면 사람의 마음도, 사회도, 농사거리도, 몸도 바뀌어갈 것이다. 우리는 땅과 함께 살아간다. 봄의 마음이 지금은 이곳 빈 땅만큼이나 빈약한 대지처럼 보일지라도, 그 속에는 새싹이 기다리고 있다. 녹은 물은 눈물처럼 젖어있고 만물은 자식처럼 굳건하다. 땅은 뭇 생명을 차별없이 키우는 그런 사랑이다. 마을마다 땅을 닮은 어진 촌장님이 계셨으면 좋겠다. 찾아가 힘들다고 하소연도 하고, 이런저런 하고싶은 일도 이야기하고, 때때로 불평불만도 터트려보면서 아무 말이든 이야기해도 가만히 들어주시는 그런 어른이 계시면 좋겠다. '그래 자네 어디 해보게' '그래 그랬구나' '그래 힘들었구나' 하고 뭐든 품어주시고 키워주시는 봄날같은 어른을 꿈꾸어본다. 그런 얼굴이 보고싶은 요상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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