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가로수는 과로사하고, 변두리 가로수는 돌연사하나
도심의 가로수는 과로사하고, 변두리 가로수는 돌연사하나
  • 편집부
  • 승인 2019.03.0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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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주(내북면 법주리)

충북 보은군 보은읍 성주리를 감싸고 있는 오성산 삼년산성 아래, 보은정보고에서 기상관측소를 거쳐 삼년산성 주차장에 이르는 600여 미터 도로구간에 심겨진 느티나무 가로수들이 베어져서 사라질 위기에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 흉보를 듣자마자 달려가 느티나무 가로수를 만나고 왔다. 삼년산성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20여년을 스스로 팔 벌려 터널을 이루어 환영해주는 아름다운 느티나무 친구들! 보은군에서는 이 말없는 친구들을 베어내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한국에서 보호노거수로 지정된 나무 중에서 가장 많은 나무가 바로 이 느티나무다. 오래 살며 크게 자라는 위풍당당한 나무. 마을에서는 둥구나무요 정자나무이고 당산나무로 우리 민족의 정서와 애환을 잘 간직하고 있는 나무. 먼지를 잘 타지 않아 깨끗한 나무. 벌레를 먹지 않아 귀한 나무. 가로수로 많이 심어진 나무. 분재의 소재이면서도 최고급 목재로 크는 나무가 느티나무다. 서민은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소나무 가구를 놓고 살다가 죽어서는 소나무 관 속에 들어가 땅에 묻히지만, 양반은 느티나무로 만든 집에서 느티나무 가구를 놓고 살다가 느티나무 관에 실려 저승으로 간다는 그 나무다.
봄이면 넓게 퍼진 가지에 자잘한 잎새들 무수히 매달리고,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 되면 작은 잎들이 더욱 무성해지면서 싱그러워지는 나무. 가을이면 단풍나무처럼 울긋불긋 화려한 색깔은 아니지만 떨어진 갈색 잎 밟히는 소리 아련하여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나무가 느티나무이다. 가지는 큰 우산 모양으로 고르게 펼쳐져서 겨울철에 눈이 오고 난 뒤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기만 하다. 이처럼 느티나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아름다운 터널 길을 만든다. 특별히 수형을 잡아주지 않아도 저절로 위엄과 품격을 갖추며 나이를 먹는 느티나무는 삼년산성의 수문장으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반면에 이 삼년산성 느티나무 가로수 길과 접한 농토를 가진 농민들의 애로가 있다. 나무뿌리가 뻗어 내려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가지와 무성한 잎은 그늘을 만들어 현저하게 일조량을 저하시킨다. 한 여름 뙤약볕을 가리는 느티나무 그늘은 산성을 찾는 이들에게는 오아시스이지만 농사짓는 분들에게는 애물단지인 것이다. 간혹 나무뿌리가 솟아 보도블록을 파손하면 통행하는 이들에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서 보은 민원 관련 부서는 물론 이장단 회의와 정책자문단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가로수 느티나무를 베어내기로 한 결정을 비난만 할 일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현재 이 문제가 표면화 되면서 많은 보은군민들이 이 결정을 지극히 단편적이고 행정편의적 진단과 해결 방식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수령 20년 이상, 지름 40센티, 높이 10여 미터에 이르는 울울창창하게 커 나가야 할 청년 느티나무 100여 그루가 보은군의 결정에 따라 인간들의 벌목계획표대로 돌연사할 불안에 벌벌 떨고 있다. 길을 내서 도로를 만들고 최적의 나무라고 가로수를 심던 그 때의 마음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한 때 은행나무 가로수를 다 잘라내고 대추나무 가로수 길을 조성했다가 수억의 예산만 날리고 지금은 전봇대 길이 된 보은 탄부면 임한리 가로수 길의 교훈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문화재 전문가들이 세계 문화유산 급의 가치를 지녔다고 극찬하는 아름다운 삼년산성의 정문을 지켜온 말 못하는 친구들을 경제 가치로만 따져 흔적 없이 잘라내겠다는 잔인한 결정은 반드시 재고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말이 있지 않은가. 심어 가꾸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베어내기는 참으로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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