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에서 시작해 꽃밭에서 끝내다
눈밭에서 시작해 꽃밭에서 끝내다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1.05.12 09:38
  • 호수 9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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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군 둘레산행 390리 대장정 완주

지난 8일 둘레산행 마지막 구간인 신정리 암릉~상학봉~활목고개를 끝으로 둘레산행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본사와 속리산악회(회장 조진)가 함께 한 도상 156㎞, 390리. 장장 1년 5개월의 여정 속에 보은군 둘레를 돌며 흘린 땀과 거친 호흡, 저마다의 추억이 고스란히 산천 곳곳에, 골골마다 남아있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마지막이 주는 의미심장함 때문일까? 전 달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 애기업은 바위 정상에 도착한 일행들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속리산 북서능선을 타다
산에서 얻는 것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은 산에서 받을 그 벅찬 감동에 힘을 받으며 또다시 힘겨운 나 자신과 싸움을 하며 고지를 향해서 간다.

이번 산행 시작구간인 애기업은 바위다. 큰 바위 뒤에 작은 바위가 붙어 있는 것이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업은 것과 같아서 붙여졌다고는 하는데 눈앞에는 큰 바위뿐이다. 바위를 오르라고 설치해놓은 사다리는. 방부목이 아닌 일반 참나무 가지 두 개를 기둥삼아 나뭇가지로 발판을 만들었는데 철사로 얼기설기 엮어놓았다. 몸무게가 좀 있는 남자들이 밟으니 발판이 부러진다.

그래도 조망하나는 끝내준다.  사방이 탁 트여 거칠 것이 없다. 멀리 천왕봉, 비석하나 우뚝 서 있는 것 같은 입석대, 문장대, 관음봉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눈 호강을 하면서 소진됐던 에너지를 충전해 다시 길을 재촉한다. 상학봉(834m)을 거쳐 829m봉을 향하면서는 경북 운흥리(용화) 두부마을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과 뒤엉켜 등산로는 북새통을 이룬다. 특히 로프구간마다 산객들이 대기하고 있어 지체정체가 반복됐는데, 로프 하나에 의지해 천 길 낭떠러지 같은 암반을 오르내리기가 여간 두려운 게 아니다. 만만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산을 오리내리며 만나는 이름 모를 들꽃들은 눈을 즐겁게 하고 암반 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려 모진 풍파를 견뎌내고 있는 소나무의 푸른 기운은 고통마저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새벽에 일어난 토끼가 눈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목을 축이고 가는 옹달샘은 심장이 타들어갈 정도로 메마른 목에 촉촉하게 습기를 주는 것 같았다. 산이 주는 행복감에 마음이 평안해진다.

운흥리 두부마을에서 올라오는 구간을 지나 활목고개 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일반 등산객들은 찾지 않는 온전히 우리만의 산길이 펼쳐져 있다. 조금 여유있게 산행을 할만도 한데 모두들 갈길을 재촉한다.

멀리 미남봉 봉우리가 보인다. 속리산 줄기 봉우리 정상이 모두 암반으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미남봉 정상은 그냥 흙밭이다. 표지석도 없고 폼은 별로 없다. 하지만 속리산 북서능선의 제일 끝자락에 위치해 전망대 역할을 해주고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와 웅장한 모습에 가슴마저 상쾌하게 해준다.

그런데 왜 미남봉이라고 했을까? 산 아래에서 보면 암반 펼쳐진 것이 마치 잘생긴 남자의 옆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였다고 하는데, 정상에서는 도저히 미남의 모습을 느낄 수가 없다.

미남봉을 지나면서 좀 여유를 찾았다. 앞사람 발뒤꿈치만 보며 누가 뒤에서 쫓아오기라도 하듯 죽어라고 가기만 했던 발길을 멈췄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널려있는 이름 모르는 산꽃들을 카메라에 가득 담았다. 그렇게 높은 산에도 나비인지, 나방인지 모를 나비류가 꽃술에 입을 대고 꿀을 따고 있는 것도 보였다. 호흡을 멈추니 주변의 아름다움이 보인 것이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활처럼 휘어졌다는 고개, 종점인 활목고개에 무사히 닿았다. 해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보은군 둘레 종주 기록을 세운 것이다.

 

#156㎞에 사연도 많다
온 산이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있던 지난해 1월 시작해  연초록 잎가 연분홍 꽃들이 산을 은은하게 색칠하는 5월까지  장장 1년 5개월, 17개월 동안 매월 둘째 주 일요일마다 우리지역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게으름을 포기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됐던 산행을 실행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을 딱 한 번 깬 적이 있다. 8월 산행. 그날 새벽부터 계속되는 폭우에다 폭우는 물론 벼락, 천둥 등 기상악화 예보로 긴장시켰는데 산행에 나서겠다고 나온 사람이 불과 3명. 산행을 접고 삼겹살 파티로 아쉬움을 달랬다.

지난해 5월 9일엔 산삼도 채취했다. 피반령~ 염티 구간에서는 땅 위로 쭉 벋은 줄기, 3개의 큰 잎 아래로 2개의 작은 잎이 받치고 있는 잘생긴 산삼이 임재업씨의 눈에 들어와 "심봤다"를 외쳤다. 정일용씨가 산삼주를 담아 1년이 지난 후인 지난 8일 마지막 둘레산행 길인 애기업은 바위 아래서 산신께도 잔을 올리고 일행들도 한모금씩 맛을 보았다. 모두들 힘이 불끈 솟는것 같다고 자랑했다.

은운리~지경리~용수말~노성고개~질고지~거멍산~문티 구간과 원남중교~망월~삼승산~오천치~437.2봉~월남리 구간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왔던 구간 또 가다 능선을 잘못 잡아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하기를 몇 번했던 곳이다. 특히 은운리~문티구간은 길을 헤맨 것 말고도 빗물이 신발 속으로 스며들어 보통 때 보다 힘이 두 배 이상 들었다.

잘 닦여진 구간, 이정표가 있어 절대로 길을 잃지 않을 곳인데도, 굳이 오색찬란한 시그널을 붙여 경관을 훼손시켜 좋지 않게 생각했던 시그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은 구간이기도 하다. 군계는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구간이지만 아직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구간은 아닌 것이다.

속리산악회원이자 자전거동호회 회장인 김기식씨는 물한병, 손바닥만한 도시락에 반찬통이 전부인 배낭 하나 매고 가기도 힘든데 구간에서 수거한 쓰레기  무게가 내 배낭무게보다 무겁다.

20ℓ 쓰레기봉투 두 개를 가득 채우고 남을 정도로 쓰레기를 수거하는 모범 산사나이다. 마지막 산행구간에서도 많은 양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이런 사람으로 인해 산이 그나마 깨끗한 것 아닐까.

 

#둘레산행 다시 시작이다
둘레산행을 마무리한 모임에서 처음 둘레산행이라며 길을 낼 생각을 하고 길을 찾아낸 최윤태씨의 노력에 둘레산행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새삼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이젠 보은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둘레산행을 하면서 보은군과 경계에 있는 괴산군, 청원군, 옥천군, 경북 상주시가 산을 관광상품화 하고 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보은군의 뒤떨어진 행정을 지적했다. 산외면 검단산을 이미 괴산군에게 금단산이란 이름으로 빼앗겼고 산외면 가고리 국수봉은 청원군 옥화봉으로 점령당했고 수한면 덕대산은 옥천군이 선점했고 백두대간 구간에 있는 형제봉은 상주시에서 개발을 선점했다.

 

속리산 묘봉, 상학봉도 산꾼들은 보은 것이 아니라 경북 상주 용화 것으로 안다. 지금도 신정리나 속리산면 사내리 여적암에서 북가치를 거쳐 묘봉과 상학봉을 오르는 사람보다 용화에서 올랐다가 다시 용화로 하산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타 시군이 산으로 등산객을 끌어들여 지역경제 활성화를 노리다 산악자전거가 유행하자 임도를 자전거 길로 홍보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보은의 관광을 접목한 산림 정책은 너무 뒤떨어졌다. 위기감을가질 때다.

둘레산행을 완주했으니 적당히 게으름을 즐겨도 되지만 종주했다는 뿌듯함도 잠시 허전함이 밀려온다. 앞서간 사람이 길을 내면 뒤에 가는 사람이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으로 만들어진 그 길을 따라 다시 길을 떠나듯 다시 둘레산행의 시작을 계획해본다.

등산인구 1천만명이 넘어선지 오래다. 지리산 둘레길, 괴산 산막이 옛길 등 이런 저런 이름으로 들과 산을 이용해 길을 내는 것이 유행이다. 보은군을 경계로 하는 둘레길 산행은 누구나 갈 수는 있지만,  아직은 아무나 갈 수 없다. 그곳을 누구나,  아무나 어디서든 갈 수 있는 둘레산길을 내는 것이 지금 보은군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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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선녀 2011-05-12 11:52:03
뿌듯함으로 함께한 둘레 산행길... 수고 하셨습니다.~
몸은 함께하지 못했지만 함께한것처럼 저에게도 뿌듯함이~ 힘이 솟는군요.~
제 2탄을 기다려 봅니다.~ 끝까지 함께한 속리산악회!!. 화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