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걸어요 속리산둘레길 보은2길
함께걸어요 속리산둘레길 보은2길
  • 엄선용
  • 승인 2016.10.2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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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의 앙금을 씻어낸 자연은 가까이 다가온 계절을 성실히 준비하며 자연을 물들이고 있는 중이다. 곳곳에서는 벌써 붉어진 가을과 자주 마주치기도 한다.  이제 막 열리는 가을의 서막은 이번 여정을 통해 확인했다. 속리산둘레길 2구간은 장안면 개안리 안내센터를 출발해 장안~구인~오창~장재~말티재~솔향공원(둘리공원)~상판~구 법주초등학교까지 '말티재 넘는 길'로 명명된 13.5㎞ 구간이다.  지난 9월 걷기 일정은 호우주의보 발령으로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사고가 염려돼 10월 1일로 연기했다. 이날도 비가 오락가락은 했지만 걷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날 웬 행사가 이렇게 많은지 속리산면민의 날, 회인면민의 날, 마로면 걷기행사 등등이 겹쳐서 당초 신청자들도 불참을 연락해와 참가자는 3명에 불과했다. 수정초등학교 4학년 이영찬 군과 영찬이맘 박경애 선생님, 그리고 보은교육지원청 고재권 주무관님과 함께 출발한 2구간 코스는 보은의 숨은 비경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숲과 능선, 골짜기, 그리고 길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코스, 이제부터 2구간 걷기를 시작한다. ?평화로운 들판, 장안으로 만들다  장안은 역사적인 마을이다. 정부의 박해에 맞서 교조신원운동을 벌이던 7만여의 동학교도들이 1893년 3월 장안마을에 모여 조직적인 교단사업을 위해 대도소(大都所, 총본부)를 설치하고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척양척왜(斥洋斥倭)를 외쳐 동학농민운동의 효시가 된 동학 취회지(聚會地)이다.  지금은 안내판만 하나 덜렁 서 있는 초라한 대접을 안타까워하며 발길을 옮긴다.  학교 앞을 지나 농로를 따라 걸으면 만나는 장안 장류체험장에서 바라본 마을은 한 폭의 그림이다. 황금들판, 올망졸망 모여있는 집들 그리고, 옥녀봉을 감싸고 있는 구름 색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장안의 평화는 계속 이어졌다. 구인리 날망은 강릉의 '안반데기' 정도는 아니더라도 산 정상을 논으로 개간해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가을은 들녘에서 먼저 느껴진다. ?장재 저수지, 숨은 비경을 엿보다  둘레길 곳곳에서는 둥근잎 나팔꽃, 미국나팔꽃, 며느리 밥풀꽃, 꽃범의 꼬리, 며느리 배꼽, 익모초꽃, 이고들빼기꽃, 구절초, 고마리, 둥근잎 유홍초, 서리올 때 붉은 열매같은 맺는 낙상홍 등 들어 본 것도 있고 처음 보는 꽃들도 있다. 또 젖버섯 아재비, 젖비단 그물버섯, 뽕나무버섯, 조개껍질 버섯, 큰 갓 버섯 등 다양한 버섯도 눈에 띈다. 가을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알밤의 주인은 다람쥐일까, 청설모일까, 아니면 사람일까? 빈 껍질만 남은 밤송이들이 농로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오창리에서 속리초등학교 김성구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길손들을 기꺼이 집안으로 불러들여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놓는 김 교장선생님 내외의 대접으로 지친 발걸음에 휴식을 주고 약간 촐촐했던 배도 채웠다.  조선시대 세조임금이 복천암을 가는 도중 행궁을 지었다는 얘기가 전해져 오는 장재리 대궐터를 지나면서 이어지는 숲길은 아기자기하다. 나무그늘에 가려 햇살이 몇 줌 들어올 정도로 걷기 좋은 숲길 바닥은 포실 포실한 흙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저수지. 그동안 차도만 다녔기 때문에 몰랐던 저수지 안쪽의 세상은 비경이었다. 숲으로 들어온 사람들에게만 선물한 물과 산, 그리고 나무. 그 모든 것들을 그림자로 담은 저수지. 탄성이 절로 나왔다. 더이상의 조화는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을 눈앞에 펼쳐놓는다. 물 그림에 빠져있는 사이 저 멀리 아득하게 말티고개 정상부가 들어온다. 그렇게 장재 저수지는 우리가 몰랐던 그림을 길손들에게 선물했다. 얼마간을 그 풍경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빠져 있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 무엇을 함부로 빼거나 더할 수가 있을까?  인간에 제아무리 아름답게 포장을 해도 자연이 빚은 것만큼 아름다울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말티고개로 접어들었다. 고려 때는 태조가 얇은 돌이 깔린 고개를 말을 타고 넘었다는 전설이 있는 박석(薄石)티 또는 말티라고 부른다. 이곳은 보은군이 명소화 사업으로 걷기 좋게 길도 내고 목마른 토끼도 목을 축이라고 옹달샘도 내놓고 졸졸졸 흐르는 계곡도 있다. 굽이굽이 열두 구비를 이어놓은 말티 고갯길을 둘레길도 구불구불하게 이어놓았다.  차로 넘기도 힘든 곳이었는데 걸어서 넘자니 여간 대근한 게 아니었다.  2구간 중 가장 힘든 구간이다. 백두대간도 아닌 말티고개를 억지춘향 식으로 백두대간으로 둔갑시켜 백두대간 생태를 복원한다며 산림의 속살을 파헤치느라 고개 정상부는 굴삭기 소리며 각종 기계음이 요란하다. 아마도 산짐승들이 놀라 저만치 물러나 있을 것이다. ?솔향공원, 솔 기운이 느껴진다  이 것 저 것 인공으로 덧칠되고 있는 자연이 안쓰럽다. 말을 하지 못하는 자연도 그 아픔을 솔 기운으로 치유하길 바라며 길을 재촉했다. 유난히 길고도 혹독했던 지난 여름, 그럼에도 한 번도 메마른 적 없었던 듯 짙고 촉촉하고 울울창창한 숲과 마주한다. 솔향공원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 곳 숲 속은 나무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키가 큰 나무들 아래로 두 번째로 큰 나무들이 자리하고, 그 아래로 키 작은 나무들이 잎을 무성하게 피운 채 또 한 층을 만든다. 그렇게 솔향공원 일대의 숲은 하늘바라기를 한 큰 나무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모여 군락을 이루고 있다.  깊은 산속을 등산할 때도 나무층을 감상하기 쉽지 않은데 솔향공원의 숲에서는 켜켜이 쌓인 나무층을 볼 수 있다. 둘레길 2구간에서만 얻는 보물인 것이다.  자연에 집중해 있는 사이 어느 새 하산이다. 바로 옆에는 사람들을 태운 빨간색 바이크 레일이 보인다. 자녀들과 혹은 연인과 함께 하늘을 나는 기분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즐거워 보인다. 땅을 디딘 것도 아니고 공중에 매달린 레일 위에서 내려다본 발아래 세상은 어떨까? 궁금증을 뒤로하고 2구간의 목적지인 구 법주초등학교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오랫동안의 걸음으로 힘겹기도 하지만 그 정도의 고생은 오늘 본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 풀어졌다.  물길을 내고 산길을 빚고 사람의 길을 내어준 자연의 아름다움이 새삼 느껴지는 길이었다. ?구간 아쉬운 점  둘레길 걷기는 자연이 주는 풍미를 감상하는 것도 있지만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주변의 명소와 명인의소개가 보태지면 또다른 이야기들을 잉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둘레길 그 구간에서만 맛보는 재미일테고.  이번 2구간에서 아쉬운 점은 지난 2015년 9월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박영덕 전통서각공예가가 운영하는 운봉서각 안내간판 하나가 없다는 점이다. 2녀1남의 자녀들까지 모두 전통공예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운봉서각공방은 둘레길 도보여행 길손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둘레길 코스에 있어 방향표시만 해 놓아도 도보여행객들이 이곳을 들러 작품도 감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호젓하게 걷는 이들에게 개짖는 소리는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농장의 방범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험상궂은 개들이 끊임없이 짖어대는 소음은 고요를 깨게 했고 날뛰는 모습은 위협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지역사정을 모르는 외지 둘레길 여행객들에게 혐오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내집 울타리 안만 깨끗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골목이나 동네 입구마다 무단 투기된 쓰레기도 문제다. 재활용봉투를 사용하지 않거나 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버리는 등 불법 행위가 구간 곳곳에서 노출되고 있다.  깨끗한 마을환경도 둘레길의 소중한 문화자원이 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마을을 가꾸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글, 사진 : 송진선 길 안내 : 숲길체험 지도사 김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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