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산행 13구간 (도화리~천왕봉~문장대(3.2㎞))
둘레산행 13구간 (도화리~천왕봉~문장대(3.2㎞))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1.03.17 09:43
  • 호수 8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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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한설이 지나간 천왕봉엔 봄기운이 모락모락

본사와 속리산악회(회장 조진)가 함께 운영하는 둘레산행일인 지난 13일 곧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잔뜩 찌푸려있다. 혹시 비가 오면 어쩌나 싶었지만 이내 하늘을 맑게 개이고 봄햇살이 삼천리에 퍼질 정도로 따뜻했다.
13구간인 도화리~천왕봉안부~천왕봉~문장대까지 3.2㎞를 걸으며 이완된 몸속으로 자연을 흠뻑 담아왔다.

 

▲ 이번 둘레산행구간의 중심지인 천왕봉 정상에서 산행에 함께한 일행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13구간을 뛰면서 그어려운 구간을 뒤어서 밀고 앞에서 끌어주며 함께해 동지적 감정마저 갖게 하는 얼굴들이다.

 

#끝내 人자 바위는 확인하지 못했다
산행 시작인 속리산면 도화리다.  몇 집 되지 않는 도화리 마을 맨 위쪽에는 고 조자용 박사가 기거하던 생가가 있고 묘소가 있다. 하버드대학에서 현대건축학을 전공하고 주한미국대사관까지 지었던 주인공이 화려한 건축가의 길을 포기하고 산골로 들어와 그것도 천왕봉 바로 아래인 도화리에 터를 잡고 모태신앙의 근거지로 삼으며 삼신운동을 펼쳤던 고 조자용 박사의 생가와 묘소를 지나면서 도화리에서 경북 화북면 장갑골로 넘어가는 고개인 천왕봉 안부 떡갈목이(고개)까지는 경사가 급하다.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 없이 계속 오르막길을 치고 올라가야 한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일명 기모가 들어있는 겨울옷 속에 갇힌 몸은 사우나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미련하게 챙겨 입은 고어텍스 재킷과 겨울옷을 벗고 티셔츠차림을 하니 몸이 날아갈듯 하다. 발걸음마저 한결 가벼워졌다.

천왕봉방향으로 향하면서 소천왕봉 밑 절벽 사방 50m정도의 큰 바위에 사람 인(人)자가 새겨져 있다는 인자바위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숙제 아닌 숙제가 머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인자 바위는 한 변의 길이가 25~30m이고 패인 길이가 3m정도의 인(人)자를 따라 암반의 색깔이 흰색을 띄고 있다고 한다. 또 인(人)자 밑 한가운데에는 직경 2m정도의 둥근 공 모양의 새까만 원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그곳에서 도를 닦는(?) 사람이 움막을 짓고 기거해 천왕봉 등산로에서 인자바위로 쪽으로 좁은 길이 나있고 샘도 있다고 했는데 길을 찾지 못했다. 아쉽지만 인자바위를 확인하는 것은 포기해버렸다. 어쨌든 흔하지 않고 범상치 않은 바위를 지역의 유산, 지역의 명물로 보은군에서 관리하는 것도 필요할 듯싶었다.

 

#삼강의 발원 천왕봉에 봄물이 흐르다
인자바위를 보지 못한 서운함을 접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천왕봉 정상 가까이에 근접하자 아직 겨울 잔상들이 남아있다. 등산로가 봉우리 북쪽으로 나있어서인지 아직 잔설이 켜켜이 쌓인 채 남아있었지만 가지마다 물이 왕성하게 오르는지 생생해 보인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옮겨 가까스로 위험한 구간을 오르니 눈앞이 천왕봉 정상이다. 암릉이 빚어낸 속리산의 주봉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천왕봉이 품은 거대하고 풍성한 산줄기가 장쾌하다.

천왕봉에서 태어난 깊은 골골마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지표수는 녹아서 한강, 금강, 낙동강으로 향하며 만물을 소생시키고 있다. 제 몸만 이롭게 하려고 샘물을, 그리고 정기를 품지 않고 치마폭을 벌려 다른 이에게 내어주는 천왕봉, 보은(報恩)이야말로 가장 이타의 정신이 살아있는 고장이 아닐까.

속리산의 최고봉인 주봉 천왕봉(1천58m)은 2008년 천황봉(天皇峰)에서 천왕봉(天王峰)으로 개명됐다. 개명당시 많은 논란을 빚었을 만큼 속리산의 천왕봉은 지리산의 천왕봉 만큼 유명하다.

제일 높은 봉우리 하늘 뚫었고 / 돌아보니 티끌세상 아득만 한데 / 구름 한 조각 비라도 내릴 듯이 / 저 푸른 허공에 둥실 떠있고 / 천지의 원기만이 바람 한 점 없는 / 고요함 속에 가득 찼구나라는 조선영조때 시인 백하 황번노 선생이 천왕봉에 올라 지은 시가 있다.

또 여지승람에는 이 산마루에 옛날엔 대자재천황사라는 사당이 있어 산신제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천황신이 해마다 가을 10월 범의 날이면 법주사에 내려가서 45일 동안 머물다가 상봉(천왕봉)으로 도로 올라오는데 그 동안에 산 아래에 사는 주민들까지 신을 맞이하여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도 천왕봉 아래에는 제를 지낼 수 있는 단이 있고 매년 10월에 속리산관광협의회가 주관하는 천왕봉 산신제도 여기 문헌에서 연유하고 있다.

천왕봉에서 사방을 조망하고 둘레산행의 마지막 구간이 문장대로 향했다. 방안에만 갇혀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봄 마중을 나온 것처럼 천왕봉~신선대~문장대 구간은 겨우내 높은 산 오르기를 참아왔던 사람들로 빼곡했다. 좁은 등산로에서는 기다렸다가 갈 정도로 북적댔다.

신선대쪽으로 가면서 후발대로 처져 주변 속리산의 풍광들을 눈에 담았다. 그동안 산행 때마다 앞사람을 놓치면 길을 잃을 것처럼 발뒤꿈치만 보면서 쫓아가느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게 산행을 했던 것보다 한결 여유로웠고 등산하는 것 같았다.

속리산의 이런저런 모습, 봉우리들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거북이가 알을 낳고 힘겹게 바위를 오르고 있는 거북모양의 바위도 보았다. 거북바위 위나 아래에 토끼가 있다면 그야말로 '토끼와 거북이' 동화의 탄생설화를 만들 수 있었는데…. 안타까웠다.

해태모양의 바위도 보았다. 조진 회장은 해태상이 똥을 한 무더기 싸놓고는 시원하다고 소리를 치는 것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속리산 사무소에서 이런 명물 바위를 조망할 수 있게 표석을 설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발대보다 2, 30분 늦은 시간에 신선대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신선대 휴게소표 라면과 당귀막걸리를 음미하고 나니 그야말로 신선이 된 듯 기분이 좋다. 마지막 구간인 문장대(1019m)로 향하는 발걸음도 가뿐해졌다.

우리는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월광태자라는 귀공자가 동쪽으로 시오리 올라가면 영봉이 있으니 그곳에서 기도를 올리면 신상에 밝다고 해서 올라가 보니 과연 구름과 안개에 가린 영롱한 봉우리(雲壯臺)가 있고 정상에 삼강과 오륜을 명시한 책이 있어 세조가 책을 읽으며 신하들과 하루 종일 강론을 했는데 그 뒤부터 운장대를 문장대(文藏臺)라 불렀다'는 문장대 정상에서 동서남북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장관에 감탄했다.

산의 능선 정상이 행정구역을 나누는 경계이지만 왜 문장대만은 그러지 않았을까. 이것도 힘의 논리인가. 경북 상주시 화북면이라고 또렷하게 새겨놓은 문장대 표석에서 산객들이 사진을 찍는 것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속리산이 보은군과 괴산군, 상주시 경계에 걸쳐 있으나 명승, 고적이 보은군에 몰려있어 보은의 속리산이라고 불렸던 것을 상주시가 강하게 부정하고 내 땅이라고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지만 어쩐지 우리 땅인데 빼앗긴 것 같이 서럽다.

바로 옆에 속리산 번영회에서 설치해놓은 표석이 초라해 보이기 그지없다. 아무도 그 표석 주변에선 사진을 찍지 않는다. 차라리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천왕봉이나 관음봉, 묘봉처럼 이름과 높이 표기한 표석을 새로 설치하는 것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측면에서도 낫겠다.

이번 산행의 최종 목적지에 점을 찍었는데 마무리를 하지 않은 것 같이 머릿속이 묵직하다. 법주사 쪽으로 하산하는 도중 보현재 휴게소와 용바위골 휴게소 사장님이 선물한 고로쇠 물이 효험이 있었던 것일까? 체내 묵은 찌꺼기까지 태워내 한결 머리가 가벼워졌다. 한 달 살아갈 에너지를 바로 이 속리산에서 저축했기 때문이다. 산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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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선녀 2011-03-19 10:22:03
그동안의 후기글을 고생하신 만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선물받아 냉장고에 넣어둔 고로쇠로... 땀을 식힙니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