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는 산줄기를 낳은 천왕봉, 그 품은 넉넉했다
수없는 산줄기를 낳은 천왕봉, 그 품은 넉넉했다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1.02.17 09:58
  • 호수 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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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길따라 … 둘레산행 12구간(삼가리 지방도 도계~형제봉~피앗재~천왕봉 안부 11㎞)

2월 중순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다는 기상캐스터의 겁주는 예보멘트가 있었지만 큰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바짝 다가가니 계절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지난 13일 우리의 산하를 두발로 밟아보는 둘레산행 12구간을 탐사했다. 본사와 속리산악회(회장 조진)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둘레산행에 미리 봄 마중을 나가는 군민들이 참여해 속리산 천왕봉에서 뻗어 나온 험준한 산줄기를 타느라 고통 후 전해지는 진한 희열을 맛보았다.

이날 등산은 속리산면 삼가리 지방도 도계에서 출발해 형제봉을 정상을 타고 넘어 피앗재를 지나 천왕봉 안부인 떡갈목이 고개에서 도화리를 종점으로 하산하는 구간이다. 우리지역과 이웃하고 있는 지역은 경북 화남면 동관~화북면 장각동, 상오리이다.

제 시간에 집결지에 모습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게을렀는데 이날도 역시나 조금 늦는다는 미안함을 전화로 알리고 서둘렀다.

한사람 때문에 여러사람을 기다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매번 지각대장 꼬리를 떼지 못한다. 때마침 2월14일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한 알씩을 선물같이 건네며 미안한 마음을 달랜다.
 

#이곳도 경북에 찜 당하다
삼가리 경북과 도계에서 등산해 형제봉(832m)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이 많이 찾은 것 같다. 백두대간 줄기가 인근을 지나가는 곳이기 때문인지 이미 등산로가 나 있고 눈도 쌓여있지 않아 산을 타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등반대장이 조금 서둘러야 한다는 재촉에 발길을 서두른다. 높고 낮은 봉우리들을 넘는 동안 잠깐 잠깐 쉬면서 리듬을 되찾았는데 형제봉까지 오르는 동안 가파른 산세가 계속됐다.  암벽도 타야했다. 난코스가 이어졌다. 암벽을 우회할 수 있는 코스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을 졸이는데 누가 설치했는지는 모르지만 로프를 설치해 한결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게 도와줬다. 몇 개의 구간에 장정 몇 사람이 한꺼번에 잡아당겨도 문제가 없을 굵은 로프가 설치돼 있었다.

양손에 스틱을 쥐었지만 로프에 의지해 산을 올랐다. 형제봉 아래 급경사에는 나무계단도 설치해 놓았다. 부목을 대고 직경 3, 4㎝ 정도 되는 철근까지 박아놓았다. 등산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점심 먹을 지점이 보이면 다리에 더욱 힘이 붙는다. 형제봉 코앞 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에는 의자까지 설치해놓았다. 긴 의자 두개가 점심상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로프, 의자 누가 설치했을까. 궁금했다. 일행들은 이구동성으로 상주시에서 설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간 등산객 수만여만명이 오는 적암리 방향이나 구병리 방향 구병산 등산로도 정비하지 않는 보은군인데 정규등산로도 아닌 이곳에 등산객 안전과 편의를 돕는 시설을 설치해놓을 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산외면 대원리에서 시작해 경계의 모든 봉우리와 아름다운 경관을 보이는 곳에 타 지자체 명의로  편의시설을 해놓은 것처럼 이곳 또한 마찬가지였다.

경계는 지적도상에서만 보은군 땅이라고 표기하고 있을 뿐 실제로 보은군 땅임을 알 수 있는 산이 한 곳도 없었다. 보은군은 땅을 뺏기고 있는데도 뒷짐을 지고 있다.

보온밥통 속의 점심밥으로 허기를 면했는데 살이 통통한 싸리버섯 찌개를 먹고 난 진한 국물에 삶은 라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냉큼 젓가락을 가져갔다.

벌써 위는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다고 거부를 하는데도 젓가락을 놓지 못한다. 게다가 너무 짜서 물까지 켰다. 가득했던 물통을 비워도 혀의 짠 기는 가시지 않았다. 배가 부를 대로 부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하니 걸음을 떼놓기가 버거웠다. 맨 후미에서 오늘 안에만 도착하자는 식으로 발을 옮긴다.
 

#천왕봉이 가까울수록 산은 험난
고산준령(高山峻嶺 : 높은 산 험한 고개)이라고 했다. 천왕봉에 한 발이라도 더 가까이 갈수록 높은 산의 위엄이 나타나는 듯 거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대단했다.

산봉우리도 높았다. 많이 내려가면 그만큼 더 올라가야 하는데 배는 불러 죽겠는고(?) 형제봉을 지나면서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하늘까지 올라가야 하는 봉우리들을 넘느라 허벅지에 힘이 다 빠졌다. 만수리에서 경북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로 통하던 피앗재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진행하니 등산로에 속리산 식생의 특성인 조릿대가 나온다. 푸른 빛깔을 띠는 싱싱한 산죽(조릿대) 사이로 난 등산로는 그 자체로 산수화였다.

무식하게 먹은 음식 때문에 걷기도 힘든데 가파른 능선을 타느라 두 배, 세 배로 느껴졌던 피로도 푸른 빛깔에 묻힐 정도였다. 봄 새싹이 돋으면서 내는 연두의 푸른빛이 사람들에게 생기를 주는 힘을 잠작하게 했다.

그렇게 능선을 오르고 내리고 타면서 하산지점인 천왕봉 안부 떡갈목이(고개)에 닿았다. 대목리에서 경북 화북면 장갑골로 넘어가는 고개다. 도화리 방향으로의 하산 길도 조릿대 등산로다. 구불구불 난 등산로에 둥글둥글한 나무계단, 그리고 조릿대. 그 사이를 사람이 한 발 한 발 내려간다. 그 길을 디디는 맛이 난다.

몇 개인지 모를 목계단을 딛고 한 없이 내려오니 계곡의 돌들이 그대로 드러난 너덜길이다. 터벅터벅 발 따로 몸 따로. 산행의 힘든 여정을 고스란히 몸에 쟁여놓은 채 내려오다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고 조자룡 묘소 앞에 설치된 공적비와 생존에 그가 머물기도 했던 고택 마당의 천지인 바위가 보이는 것을 보니 이번 산행은 여기서 마무리다.

 

#도화리 마을 뒤가 궁금하다
천왕봉 안부에서 하산했지만 마을 뒷산 봉우리인 천왕봉 주변이 궁금했다. 임경업 장군이  무예를 닦고 속리산으로 가다가 복숭아꽃이 만발한 것으로 보고 도화동으로 불렀던 곳이다.

천왕봉의 정기를 그대로 받은 탓인지 주변의 바위, 골짜기가 예사롭지 않다. 우선 소천왕봉  및 절벽에 사방 50m정도의 큰 바위에 사람 인(人)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더욱 신기한 것은 한 변의 길이가 25~30m, 패인 길이가 3m정도의 人자를 따라 암반의 색깔이 흰색을 띄고 있다고 한다. 또 인(人)자 밑 한가운데에는 직경 2m정도의 둥근 공 모양의 새까만 원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이것은 뭔 징조?

삼신신앙을 모태신앙으로 삼는 등 민학운동을 벌였고, 1986년엔 에밀레박물관을 개관하여 민중박물관운동을 펴나갔고 새마을운동으로 무자비하게 깨져나간 마을의 신단재건과 마을축제를 되살리는 운동을 이끌며 헌 마을운동을 펼쳐 슬레이트집을 개조해 초가집을 짓기도 한 조자룡박사가 인(人)자 바위 아래 도화리에 터를 잡고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천왕봉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인자 바위에 새겨진 문양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은 틀림이 없다.
다음 3월 산행(13일)은 바로 천왕봉 구간을 지나는데 과연 그 인자 바위를 확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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