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방역초소 현장을 찾아
구제역 방역초소 현장을 찾아
  • 박상범 기자
  • 승인 2011.02.10 10:09
  • 호수 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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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축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지난 1월 전국적으로 백신접종이 이루어졌음에도 구제역 확산추세는 꺾이질 않고 있다. 여전히 축산농가와 행정기관이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구제역 유입을 막기 위해 철통같은 방역체계도 변함이 없다. 군에서는 고속도로 IC 등 13개 방역초소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축산농가를 중심으로 자생조직들이 생겨나 각 마을입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방역초소도 여전하다. 이런 민관의 노력을 눈이 아닌 몸으로 취재하기 위해 지난 8일 방역복을 입고 구제역 방어의 전초기지인 방역초소를 찾았다.

 

 

◆72일째 운영되고 있는 적암리 방역초소
오전 10시, 찾은 곳은 군에서 운영하고 있는 경북 상주시와 도계를 이루고 있는 마로면 적암리 방역초소이다. 지난해 11월 28일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다음날인 29일부터 보은에서는 처음으로 운영한 곳으로, 이날까지 꼬박 72일째 하루도 한시도 쉬지 않고 방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보은읍에서 약 20여분을 달려 방역초소에 도착하니, 점퍼와 방역복 차림의 네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마로면사무소 황명구 산업담당, 송기호 민원봉사담당과 마로면자율방범대 소속 고왕진·김홍영 대원이었다. 김홍영 대원은 경광봉을 들고 차량의 서행을 유도하고 있고, 나머지 세 사람은 소독약 저수조에 물을 긷고 있었다.  모터를 돌리자, 1분 남짓 만에 1천리터 저수조가 금방 물이 찬다. 이곳에 구제역 예방 소독약 '씨크린' 2병을 풀어 휘휘 저었다. 이렇게 하루에 사용하는 소독약이 저수조 5통 5천리터에 달한다. 소방서로부터 물공급을 받고 있는 다른 방역초소들과는 달리 구병산에서 내려오는 바로 옆 하천에서 물을 공급받아 물걱정은 없었다. 다만 지난 추위에 하천이 얼어붙어 약 50㎝넘는 얼음을 깨는 수고를 며칠 하기도 했었다.

 

초소 안으로 들어오니, 남보은농협 마로지점 오진수 씨가 분무버튼을 조작하고 있었다. 남보은농협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적암초소에 직원을 파견해 방역근무를 지원하고 있다. 차량감지기가 작동하면 도로바닥과 양옆에서 설치된 분무기계에서 자동으로 소독약이 분무되고 차량이 지나친 뒤에는 소독약을 절약하기 위해 곧바로 버튼을 끄고 있었다.

황명구 담당은 "오늘은 지원인력들이 많아 마음이 든든하다"면서 따뜻한 커피를 한잔씩 돌렸다. 커피를 마시면서 구제역에 대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초소 문이 열리면서 지방행정동우회에서 라면박스를 들고 위로방문을 왔다. 초소 안을 살펴보니, 각 단체에서 건넨 물품들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띠었다. 함께 위기를 극복하려는 마음들이 느껴졌다.

대화 도중 창밖을 주시하고 있던 황명구 담당이 고왕진 대원을 데리고 쏜살같이 밖으로 나간다. 사료차량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료차량은 정차시켜 별도 방역을 실시한 후 통과를 시킨단다. 일단 운전자를 차에서 내리도록 한 다음, 대인소독기속에서 1분가량 소독을 하도록 하고 호스를 이용해 차량 구석구석에 소독약을 살포했다. 특히 손분무기를 이용해 차량 운전석까지 철저하게 소독을 실시했다.

이곳 적암방역초소는 하루 통과차량이 많지는 않지만 충북과 경북의 도계에 위치해 있고, 특히 지난 1월 22일 상주시에서 구제역이 발생함에 따라 그 중요성이 더욱 증가된 곳이기도 하다.

적암방역초소는 황명구 담당이 주 책임자 역할을 하는 가운데, 오전 4시간은 마로면사무소 직원, 오후 4시간은 경제과 직원들이 각각 2명씩 배치되어 방역을 맡고 있으며,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는 한시적으로 계약된 민간인 6명이 2명씩 돌아가면서 방역근무를 섬으로써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내 가축은 내가 지킨다, 방역에 나선 축산농가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동안 적암방역초소에서 방역체험을 한 후, 오후에는 민간이 자생적으로 운영하는 방역초소는 어떻게 운영되는 궁금해 이동을 감행했다.

장소는 마로면 수문리 마을입구에 있는 방역초소. 이동 중 관기리 시내에서 얼큰한 짬뽕으로 빈속을 달랬다.

오후 1시경, 수문리 방역초소에 도착하니, 최당열 마로면의용소방대장께서 맞아주신다. 최 대장 역시 돼지를 키우는 축산농이다. 함께 방역을 하고 있는 축산농민은 구덕서·최상규 씨였다.

지난 1월 12일부터 운영되기 시작한 이곳 초소는 마로면 수문리에서 축산농업을 하고 있는 17농가들이 아침 8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방역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틀에 한번씩 방역근무를 서게 됨으로써, 이제 한달이 다 되어가자 피로에 많이 지친 모습들이다. 자원봉사의 손길이 이런 자생 방역초소에도 미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피로와 축산농가간 의견 불일치로 군내 십 수곳에서 운영되었던 자생 방역초소의 상당수가 폐쇄되기도 했다.

이곳은 적암초소와는 달리 모든 것이 수동으로 이루어지므로 차량이 올 때마다 하우스 밖으로 나가 차량소독을 하고 있었다.

이곳 방역초소로 인해 보호받고 있는 가축들이 돼지 1천700두, 젖소 280두, 한우 250두 등으로 약 2천300두의 가축들이 구제역으로부터 지켜지고 있다. 장안면 봉비리로 통하는 길이 차단되어 이곳 초소를 지나가는 차량들은 다시 되돌아 나오는 길 밖에 없다.

오후 2시 30분경 사료를 실은 차량이 다가온다. 최상규 씨가 차량에게 다가가 통과할 수 없음을 알리고 초소 인근에 임시로 설치된 사료거치대에 사료를 뗄 것을 요청했다.

이렇게 수문리는 사료차량을 마을내로 들여보내지 않고 마을입구에 사료를 내려놓게 하고 축산농가가 마을입구로 나와 사료를 싣고 가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이중으로 일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임에도 사료를 내려놓는 사료회사 직원이나 사료를 싣고 가는 축산농민들 모두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방역초소를 통과하는 학교버스에서는 관기초 학생들이, 시내버스에서는 마을주민들이 차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는 이들 축산농민들에게 격려의 손짓을 보냈다. 마음이 흐뭇했다.
오후 3시30분경 수문리를 돌고 나오는 시내버스와 함께 약 5시간의 체험을 마치고 보은읍으로 향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할 터 
이렇게 민관이 각기 제자리에서 방역초소를 운영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은 추위가 누그러들었지만, 1월 내내 영하 15~20도의 추위와 싸우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 강추위로 인해 방역장비가 꽁꽁 언 장비를 녹이고, 뒤돌아서면 곧바로 얼어붙는 도로를 막기 위해 얼음을 끌어내고 수시로 염화칼슘을 뿌리느라 잠시 쉴 틈도 없었다.

구덕서 씨는 "호스가 얼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길바닥이 얼어 소독하던 차량이 미끄러지면서 논둑으로 떨어지기 일보직전에 멈춰선 사례도 있었다"면서 당시 힘들었던 점을 말했다.

적암방역초소에서 만난 황명구 담당은 지난 추위로 인해 초소 인근에 있는 얼음들을 깨서 치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아직 추위가 끝난 것이 아니고 눈도 한 두차례 더 올 가능성이 있으므로 미리 치워놓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공무원들은 자신의 고유업무를 하면서 방역초소근무를 해야 해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송기호 담당은 "1~2월은 새해가 시작되면서 업무가 많은 시기로, 공무를 수행하면서 방역근무도 함께 하다보니 이중의 몫을 감당하느라 여러모로 힘들다"면서도 "하지만 재난에 준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는 참고 견뎌야 하지 않나, 구제역이 끝날 때까지 보은에는 유입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고 말했다.
몸이 힘들 것은 참고 견디지만, 마음을 힘들게 하는 상황도 종종 접하는 모양이다.

지난 명절연휴기간동안 수문리 방역초소에는 많은 차량이 몰리다보니 소독약 살포를 위한 대기시간이 길어졌고,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방문객들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비싼 고급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소독약으로 인해 차가 훼손되는 것을 우려하는 말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고.

이에 대해 최당열 대장은 "지금 당장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조금 더 멀리 생각해 공생공존의 자세로 협조해 위기를 극복했으면 한다"며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일선에서 방역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축산농민과 공무원들,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격려방문과 물품지원을 아끼지 않은 기관단체장들, 방역초소를 드나드는 것이 미안해 병원가는 것도 자제하고 명절에도 자식들의 방문을 자제시킨 주민들.
이런 노력과 마음이 하나 되어 보은군을 구제역으로부터 3개월동안 막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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