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 대한 간절함, 아름다운 시어로 다시 태어나다
배움에 대한 간절함, 아름다운 시어로 다시 태어나다
  • 류영우 기자
  • 승인 2010.12.30 10:03
  • 호수 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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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삶을 시로 읊는 주부 시인 김철순
▲ 김철순 시인

가문

애처가로 소문난 김씨가
상처한지 한 달도 안돼 새장가 가던 날
하늘이 화를 냈다

오랜 가뭄이다
냇가는 이미 물이 마른지 오래고
밑바닥은 쩍쩍 갈라져
허연 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샌가
들풀들이 밤의 여자처럼 달라붙어
냇가는 이미 들풀들만 무성할 뿐이다
물이 떠난 자리에
재빨리 들풀을 키울 수 있는
발빠른 김씨가 거기 있었다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작>

 

김철순(56, 마로면 관기리) 시인의 고향은 마로면 소여리다.
소여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보덕중학교(16회)를 다닐 때까지 제법 영어를 잘 했던 그녀는 영어선생님을 꿈꿨다.

하지만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후 막내를 유치원에 보내기까지, 그녀는 시인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니 일상의 삶에 치여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만의 시간이 주어지자 그녀는 책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젖은 손을 툭툭 털어버리고, 어디서 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해묵은 다이어리에 볼펜을 꾹꾹 눌러 한 글자, 두 글자 시를 적어 내려갔다.

일상의 삶이 아름답게 표현된 그녀의 시는 곧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보은에서 열린 백일장 대회에 우연히 참가해 금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상복(?)은 계속 이어졌다.
네 차례에 걸쳐 지역 백일장에서 입상한 그녀의 시선은 청주로, 그리고 전국으로 옮겨졌다.
청주에서 열린 백일장 대회에서 차상을 받은 후 다음해에는 장원, 전국대회에서도 연이어 입상했다.
 

◆제1회 지용문학상 수상자
한국현대시에서 정지용 시인이 차지하는 위상은 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로 크다.
옥천군을 흔히 문향이라고 하는 것도, 시인의 마을이라고 부르는 것도 정지용 시인의 영향이 크다.

지금은 정지용 시인을 두고, '우리는 위대한 시인을 가졌노라'라고 소리 높여 말하지만, 그의 이름 석 자도 말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월북이냐 납북이냐의 문제는 시대의 조류 속에서 조금씩 해소됐고, 정지용 시인 또한 88년 많은 작가들 중 가장 먼저 해금됐다.

그리고 1995년, 청록파와 미당을 추천했고 30·40년 시단의 왕으로 군림했던 정지용을 기리는 첫 지용문학상 시상이 인근 옥천군에서 개최됐다.

"청주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지용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높았어요. 정지용 시인의 위상도 위상이지만 첫 문학상이었고, 상금도 다른 신춘문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거든요."

각종 백일장을 휩쓸던 김철순씨가 시인으로 등단한 것은 바로 이 지용문학상이 계기가 됐다.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으던 첫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자로 김철순씨가 선정된 것.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은 지용의 시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와 함께 한국문인협회가 인정하는 등단의 권위, 그리고 등단한 시인도 다수 포함된 전국규모의 신인문학상 공모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됐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새로운 꿈을 향한 도전
"자만심이라고 할까요? 아니, 좀 더 치열해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남아요. 더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물 안 개구리일수밖에 없으니까요."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다. 책 2권, 시집 1권 분량의 원고도 써 놓았지만 선뜻 책을 내 주겠다고 나서는 곳은 없었다.
그리고 2년 전. 그녀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바로 동시작가다.

배움에 대한 그리움,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눈물로 키워낸 아이들의 얘기까지. 일상을 아름답게 읊은 주부시인의 삶은 아이들의 시각으로 고스란히 시에 담겨졌다.

동시에 도전한 지 채 1년도 안 된 2009년 가을. 그녀는 제1회 창비어린이문학상 본선에 오르게 된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이루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시집 한 권 내기조차 어려운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었으니까요. 동시가 참 좋았어요. 재미도 있었고요. 그래서 또 다시 동시에 도전을 하게 됐습니다."
인터뷰 도중, 그녀가 조심스럽게 또 다른 수상 소식을 전했다.

동시작가로 활동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은 그녀지만, 지난해 창비어린이문학상 본선 진출에 이어 또 다시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과 경상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을 함께 수상하게 된 것.

"그냥 꿈만 같아요.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제가 선택이 됐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아요.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제가,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도 통과하기 힘들다는, 1년에 몇 명에게만 주어지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는 것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그녀의 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배움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한 그녀는 현재 방송통신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고, 졸업 후에는 대학까지 진학해 아동문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그냥 주어지는 것은 없어요. 꿈을 위해 노력할 때 비로소 이룰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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