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과 닮아있는 속리산 산행
인간의 삶과 닮아있는 속리산 산행
  • 박상범
  • 승인 2009.08.13 15:33
  • 호수 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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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외면 백석1교~신정고개~애기업은바위~묘봉~북가치~여적암

입추도 지났다. 논 옆을 지날 때는 벼가 익어가는 알싸한 냄새, 밭을 지날 때는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들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아직은 여름,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찬 기운이 돌기 시작하지만 한낮의 푹푹 찌는 더위는 여전해 기어이 땀을 불러내고야 만다. '이 더위에 10시간 산행을 잘 버틸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군대시절 산악행군 경험을 믿고 속리산악회(회장 최윤태) 회원들을 따라 나섰다. 오늘의 산행에는 최윤태 회장을 비롯한 9명의 회원이 참가했으며, 코스는 속리산 줄기인 산외면 백석1교~453고지~신정고개~애기업은바위~묘봉~북가치~여적암 코스로 약 10㎞의 거리이다.

 

▲ 우리 지역 명산 탐방에 나선 속리산악회원들. 애기업은 바위에서 하늘을 배경삼아 사진 촬영을 했다. 사진은 맨 앞줄 왼쪽부터 최윤태 회장, 이진덕 총무, 두번째줄 왼쪽부터 양화용 회원, 김연진 회원, 전승자 회원, 이종호 회원, 임승순 회원, 김재열 회원, 한충근 회원이다.

 

#숲속의 시원함에 빠지다
일요일 아침 7시 이른 시간이지만 산외면 백석1교 밑은 피서객 여러 가족들이 진을 친 상태이다. 등산대신 시원한 저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숲속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잠시, 숲속에 들어서자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땅속에서 물을 빨아 올린 나무들은 이 물을 잎을 통해 수증기로 증발시키게 된다. 이 때 물이 증발하면서 주변 열을 흡수하고 땅속에서 끌어 올린 시원한 물이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 오니 숲속은 시원할 수 밖에.

등산이 시작된 백석리는 등산로가 없어 최회장이 앞장서 등산로를 확보하며 나아간다. 얼마가 지났을까 최회장 뒤에서 걷던 속리산악회 총무 이진덕 회원이 '아~악'하고 비명을 지른다. 최회장이 뱀을 밟은 것을 목격한 것이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등산스틱으로 뱀을 치우는 최회장을 보면서 뒤에서 웃음과 함께 농이 나온다. "에이 조금만 컸어도, 이번 여름은 무난히 날 수 있는데..."

저벅저벅 발길을 옮기다 보니 이런 저런 버섯들이 보인다. 또 한바탕 말들이 오고 간다.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못 먹는 것이다. 그럼 한 번 먹어봐라!"

소풍 나온 어린애들처럼 산행 그 자체를 맘껏 즐기는 모습들이다.
한 시간 정도를 걸어 453고지 정상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휴식 중 이종호(보은읍장) 회원이 이곳이 백석리이라는 지명을 얻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흰 백, 주석 석 다시 말해 은이 많이 나오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옆에 이 말을 듣고 있던 양화용(전 군수비서실장)회원이 약 30년전 친구들과 이 산 밑에 있던 은광 속을 성냥 몇 통을 가지고 들어가 본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욕심은 청정한 산에도 미쳐
한 시간을 걸어 몸이 풀리고 잠시 휴식을 한 탓인지 발걸음에 탄력을 받는다.
숲이 점점 깊어지자, TV에서만 보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넓은 지대에는 푸릇푸릇한 고사리들이 자라고, 걷는 발걸음 주변에서는 멧돼지를 비롯한 산짐승들의 배설물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또 눈에 들어온 것이 있으니, 멧돼지 차우(덫의 충북지역 사투리)이다. 다소 녹이 슬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용이 가능한 상태이다.

산속에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이장 후 남아있는 석물, 겨우살이 채취를 위해 멀쩡한 참나무를 쓰러 뜨리고 버섯을 따러 온 이들이 버리고 간 음료캔과 플라스틱 물통들.

또한 하산 길에 보았던 7~80년생 소나무의 상처에 대해 김재열 회원은 "일제시대 때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1~20년 생 소나무에 상처를 낸 것으로, 일제가 이 송진으로 비행기 기름을 만들어 썼다"고 설명을 한다. 북가치에서 여적암으로 내려오는 등산로 주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소나무가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주권을 빼앗기면 사람만 힘든 것이 아니라 나무들도 고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인간의 욕심이 청정한 속리산 곳곳에 미쳐있구나'하는 답답함이 든다.

#군민들의 참여속에 군계종주 다시금
산외면을 벗어나 속리산면으로 접어들었는지, 돌길이 시작된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된다.
맨 앞장을 서서 길을 만들어 가는 최 회장은 등산로가 헷갈릴 만한 곳에 속리산악회가 쓰여 있는 시그널을 붙이고 있다.  언젠가 보았던 '오늘 내가 내딛는 한 걸음이 내일 이 길을 걷는 이에게는 길이 되리라'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신정고개를 얼마 앞두고서는 아줌마(?)들의 한바탕 싸리버섯 채취가 있었다. 지체된 시간만큼 발걸음을 재촉하자, 이제는 고개로써 그 효용을 다한 신정고개가 나온다. 그 옛날 속리산면 부수골과 산외면 신정리를 넘나들던 이들의 많은 사연을 뒤로 한 채 고개는 낙엽으로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애기업은바위가 얼마 남지 않자, 가파른 길의 연속이다.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오고 있는데, 최 회장이 신기한 것을 보여 주겠다며 불러 세운다.

10톤은 나감직한 커다란 바위를 소나무가 붙들고 있는 모습이다. 바위는 나무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고 나무는 바위가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고 있는 모습이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람 사는 세상이 자연에도 펼쳐지고 있었다. 바로 그 위에는 누구나 보아도 거북이를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을 한 거북이바위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몸은 힘들어도 눈은 즐거웠다.

애기업은바위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가 넘어 점심때를 넘겼다.
모두들 각자 싸온 도시락을 꺼내 한 곳에 모여 꿀맛 같은 점심을 먹는다. 땀을 많이 흘려서 일까, 새콤한 양배추 김치, 곰취나물·양파절임 등 간간한 반찬들이 입에 댕긴다.

복숭아로 후식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한 시간을 걷자, 묘봉이 멋있는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준다. 묘봉 자체도 멋있었지만, 여름답지 않게 청명한 날씨로 가깝게는 괴산의 칠보산, 대야산 멀리는 계룡산, 대둔산까지 보고 싶은 곳까지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묘봉정상에서 주변경관을 구경하다가 북가치를 거쳐 여적암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이내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시원한 계곡물로 흐르는 땀을 씻어내자, 상쾌함이 2배다.

하산길에 최회장이 담아두었던 속내를 말한다. "3년전 산악회원 및 군민 20여명이 참여해 160㎞에 이르는 군계를 10일에 걸쳐 종주를 한 적이 있다. 많은 군민들이 참여속에 다시금 보은군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땀에 옷이 척척 감기고, 쐐기에 쏘여 팔은 따갑고, 더위에 힘은 들었지만,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은 쾌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 오르고 내리고 힘들었던 10시간의 산행을 하면서 산행도 인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껴본 하루였다.

조만간 최회장의 바람이 이루어져 군계종주에 동참할 것을 약속하고 속리산악회원들과 즐거웠던 산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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