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지나간 산등성이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다
가을이 지나간 산등성이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다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0.11.18 09:12
  • 호수 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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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길따라 … (월남 보청천~340.1m 봉~효자고개~450m봉~한중리 도계, 도상 12㎞)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까닭이 꼭 비경을 보고 사연을 듣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산은 그 자체가 사색의 공간이자 대화의 장이다. 인생을 돌아보지 않는 이 없고 세 명이 걸으면 그 중 반드시 배울 사람이 있다고 했다.

길의 한자어인 도(道)는 '지역의 경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나 깊이 깨친 이치'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걸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한 달에 한 번씩 둘레산길을 걷는 것이지만 거창하게 도를 깨닫기 보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가을이 찾아왔다고 생각한 순간 벌써 뒷모습이다. 안타까워하는 시간도 아까운 지난 14일, 속리산악회(회장 조진)의 안내로 가을의 뒷모습을 쫓아 둘레산행 9구간인 원정(월남마을) 보청천~340.1m봉(세중)~효자고개(갈전)~450m봉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걸었다.

밖에서 보는 산은 낮아 보이고 능선이 가파르지 않아 쉽게 넘을 것 같아도 산 속으로 들어가 능선을 타보면 그 말이 쏙 들어간다. 이번 둘레산행 9구간을 산행하면서 산은 얕잡아 보면 절대 안 되고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도상으로 12㎞, 실 거리로 15㎞정도 된다고 해도 능선이 완만해 해가 떨어지기 전인 오후 3시면 산행을 마무리 할 줄 알았던 일행들은 오후 5시가 다 되서야 산행을 마무리했다.

사실은 경계를 밟는 것이기 때문에 걸어서 가로질러야 하는 보청천 물길을 차로 건너 쉽게 접근했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경계는 7, 80도가 넘는 가파른 경사를 치고 올라가야 했다. 김기식 전임 대장이 인정사정 보지 않고 쏜살같이 치고 올라간다. 날이 춥다고 바람막이 옷으로 무장한 것을 후회할 정도로 후끈 달아오른다. 찬 공기를 그대로 들이마신 탓인지 폐가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기분 좋은 통증이다.

쉬지 않고 내달렸다. 후발주자들이 저녁에 인삼 삶은 물을 먹고 왔느냐고 할 정로 다들 힘을 냈다. 쾌조의 스타트다. 해떨어지기 전 구간 종점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상이 가능했다.

멀리 세상의 중심이라는 세중초등학교가 보이는 능선 정상에서 잠깐 쉬면서 목을 축이고 겹겹이 껴입은 옷을 벗어 가벼운 옷차림으로 변신, 산행하기에 적합한 복장으로 만들었다. 발걸음이 보다 가벼워졌다.

산등성이마다 갈 낙엽들이 소복소복 쌓였다. 메마른 떡갈나무 잎들은 밟을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경쾌한 리듬마저 느끼게 하고 낙엽송 잎들은 쿠션같이 폭신폭신하다. 우리는 그 길을 한 참 걸었다.

 

◆유명한 효자고개도 만나다
세중 안골 뒷산을 지나며 산중에 세가구로 형성된 한 마을을 만났다. 서리 맞아 수확을 해도 별 재미가 없는 감이 그대로 달려 있다. 이 마을을 ㄷ자형으로 끼고 돌아 340.1m봉까지 발길을 재촉했다. 얼마쯤 갔을까. 시원스레 뚫린 아스팔트 포장길이 나온다. 갈전~법화간 도로인 것 같았다. 세중리에서 참가한 송재영씨가 이곳이 그 유명한 효자고개란다. 원래 이곳은 갈전리 치랏골과 법화리를 연결하는 백자미치(白慈味峙)고개였지만 정재수 어린이의 효행으로 인해 고개 이름까지 바뀐 곳이다.

청산 법화리가 고향으로 경북 화서면 사산초등학교에 다니던 정재수 어린이가 1974년 1월 22일 설을 하루 앞둔 섣달그믐 폭설주의보에 혹한이었지만 설을 쇠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험한 산길을 혹독한 강추위와 싸워 넘었다. 이들 부자는 세중리 어느 술집에 들러 잠시 쉬었고 이곳에서 꽤 많은 술을 마신 아버지 정씨는 여러사람의 만류도 뿌리치고 혹한과 눈보라 속을 뚫고 고향인 청산 법화리를 향해 길을 떠났다.  어린 정재수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술에 취한 아버지를 부축해 고갯마루 근처까지 왔지만 아버지 정씨는 쓰러지고 그런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꼬마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정재수 어린이는 술에 취해 쓰러진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옷을 벗어 아버지를 덮어 주고, 혹독한 추위와 싸우다 아버지와 함께 동사하고 말았다.

고갯마루 근처에는 정재수의 묘역이 있고 경북 화서면에 정재수 기념관을 세워 효행을 기리고 후세에 전하고 있다.

감동스런 실화가 서려있는 이 고개는 옥천군과 보은군이 2차선 도로로 포장을 했는데, 산을 도로를 내면서 산을 완전 절단하지 않고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만들어 효자고개 정상을 연결하고 있다.

 

◆산능선마다 철쭉나무 천지
묘소에서 점심을 먹으면 항상 다음 코스부터 헤매던 것이 끔찍해 묘소에서 먹는 것만은 피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선발대가 싸리버섯과 먹버섯 등 버섯찌개와 호박고지 찌개 끓일 준비를 하며 점심상을 편 장소가 하필 묘소 앞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묘소 주인에게 '고수레(사투리는 고시래)'로 신고를 한 후 든든하게 요기를 하고 기분 좋은 산보를 계속했다.

명당인지 산 정상에는 잘 관리된 산소 주변으로 멧돼지 방어용으로 푸른색의 망을 쳐놓았고 옥천 청산과 멀어지는 대신 경북과 가까워지는지 낙동정맥을 뛰는 사람들이 다녀갔다는 시그널도 매달려 있다. 그리고 옥천군 청산면과 보은군 마로면 경북 상주시 화서면이 만나는 영동의 삼도봉 쯤 되는 삼시군봉(三市郡峰) 같은 암봉도 만났다. 멀리 경북 팔음산도 보였다.

이 구간 으뜸 명물은 한중리 백록동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의 즐비한 철쭉나무 인 것 같다. 산 정상 부근에 군락을 이루고 있어 봄이면 철쭉꽃이 장관을 이룰 듯 했다. 경사는 급하지만 백록동에서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코스를 개발하면 봄철 철쭉 관광으로는 소백산 철쭉 못지않게 환상적인 광경이 될 것 같다.

철쭉장관을 상상하고 있을 즈음 온통 주황색으로 치장한 낙엽송 단풍에 쌓여있는 한중리 백록동 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가히 환상이다.

백록동 마을을 끼고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쌓인 가랑잎 속을 헤엄쳐 나갔다. 천근만근 다리무게를 이기고 떡갈나무 낙엽 길을 헤쳐 만난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도로이정표가 반가웠다. 드디어 이번 구간 종점부인 한중리 도계에 닿은 것이다. 넉넉하게 남아있을 것 같았던 해도 서산 아래로 뚝 떨어졌다. 한기가 느껴진다. 겨우내 꺼내볼 가을의 조각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차곡차곡 쌓아둘 사이 없이 겨울이 코앞이 닥쳤음을 실감했다. 

◆산능선마다 철쭉나무 천지
이번 9구간 경계 부에는 2개 마을이 있었다. 총 3가구로 형성된 세중리 안골 잿마는 한 집만 세중에 속하고 나머지 두 집은 옥천군 청산면 대성리에 속한다. 세중에 속한 한 집은 세중으로 통하지 않고 시멘트 포장길인 대성리 진입로를 이용하고 있다.

 

구장회 세중리 노인회장은 "원래 세중리에 속했던 곳에는 5, 6가구가 살았는데 교통이 불편하고 또 농업소득 감소로 인해 다 떠나고 한 집만 남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중리는 두개 마을로 쪼개지지 않고 오롯이 마로면 한중리이지만 바로 옆에 화남면 중눌리가 있다. 과거에는 평온초교 중눌분교가 있어 어린이들이 이곳 학교를 다녔지만 폐교돼 지금은 마로면 세중초등학교 학구로 편입돼 있다. 결과적으로 마로면이 생활권이 곳이다.

 

실제로 한중리 육성임(57)씨에 따르면 "중눌이 잿마, 돼지골, 먹뱅이 3개 마을로 돼 있는데 경북에서는 상주에서 하루 3회 직행버스가 운행하는데 직행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보다는 보은 시내버스가 중눌까지 들어가 중눌 사람들이 거의 보은장을 보고있고, 중눌까지 시내버스가 안들어 갈 때도 한중리까지 걸어와 보은행 시내버스를 이용했다"며 "한중리 주민들과 서로 애경사도 챙기는 등 한동네 사람같이 잘 지낸다"고 말했다. 중눌리가 보은을 생활권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행정구역 따로, 생활권을 따로인 현재에서 주민들이 생활하기 편한 쪽으로 행정구역을 조정하면 어떨까.

다음 10구간에서 만날 임곡리도 경북과 충북 두 곳으로 쪼개져 있다. 행정구역 광역 통폐합 전에 이같이 불합리하게 나눠진 마을 통합부터 추진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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