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토종누에농장 이준기씨
보은토종누에농장 이준기씨
  • 류영우 기자
  • 승인 2010.11.04 09:12
  • 호수 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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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농촌, 어렵지만 희망은 있어요

이준기.
농사짓는 사람들도
아들, 딸들이 농촌에서 농사짓는 것을
만류하는 세상에,
농촌의 희망을 찾겠다고 나섰다.

 

일찍이 농촌의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난 지 오래다. 그 행렬에 뒤쳐지거나 역행하는 사람은 오히려 별난 사람 취급받는 것이 요즘 세태이다.

농사짓는 사람들도 아들, 딸들이 농촌에서 농사짓는 것을 만류하는 세상에, 농촌의 희망을 찾겠다는 한 젊은이가 있다.
바로 보은토종누에농장 이준기씨다.
아직은 태양빛에 그을리지 않은 얼굴에 담겨있는 미소는 편안한 자연을 그대로 닮았다.
그의 나이는 이제 갓 31살. 하얗고 앳된 얼굴이지만 그의 모습 어딘가에서 흙냄새가 풀풀 풍겨난다.

 

#농촌에서 희망찾기
보은읍 용암리에서 태어나 중초초등학교와 보은중학교, 보은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찌감치 농촌에서 희망을 찾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우리나라 농업농촌발전을 선도하는 유능한 정예 후계농업경영인을 양성하는 한국농수산대학(옛 한국농업전문학교)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농촌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서였다.

87년부터 아버지 이대현씨가 양잠일을 해왔지만, 정작 그의 선택은 화훼였다.
"솔직히 양잠일은 아버지께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 다른 전공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결론은 화훼였어요. 농촌지역에서 고소득을 올릴 수 있고, 여러 가지 체험활동과 볼거리도 제공하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2002년, 대학 졸업 후 그는 9동의 비가림하우스에서 글라디올러스와 허브 종류의 꽃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시련, 그리고 또 다른 도전
2004년, 눈이 참 많이 내리던 해였다.
이틀 동안 40cm가 넘는 적설량을 기록한 당시 폭설은 농민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준기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9동의 비가림하우스 가운데 폭설을 견뎌낸 것은 단 2동뿐이었다.
7동의 비가림하우스가 폭설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농촌에서 희망을 찾겠다는 이씨의 첫걸음은 이렇게 폭설과 함께 내려 앉았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일을 직접 겪으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더라구요. 시설원예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무너져 버려 화훼농장도 더 이상 운영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시설원예의 기반을 잃은 이씨는 이후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재기를 노렸다.
폭설은 이씨의 하우스는 무너뜨렸지만, 농촌에 대한 희망마저 빼앗지는 못했다.
2년 뒤, 그는 다시 농촌으로 돌아왔다.

 

#누에는 블루오션이다
블루오션(blue ocean).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전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는 경영전략을 뜻하는 말이다. 남들이 이미 시작한 영역에 들어가 '피 말리는'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한 '푸른 바다'를 찾아나서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준기씨는 누에야 말로 농촌에서 찾던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체험활동, 농촌을 찾는 도시인들은 더 많아 질 것"

 

"예전에는 집집마다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이 누에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누에 하면 옷감을 짜는 원료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건 누에를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kg 당 2만5천원에 불과한 누에를 공예품으로 가공할 경우 10만원도 넘는 부가가치가 발생합니다. 공예뿐 아니라 요즘에는 각종 기능성 식품과 미용, 음료, 스포츠웨어, 건축자재 등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 번의 실패를 맛 본 이준기씨는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아버지께 양잠일을 배웠다.
단순히 양잠일 만을 배운 것은 아니었다. 그가 양잠일을 배우면서 매달린 분야는 상품개발이었다.
학습용 누에사육셋트, 누에고치공예, 누에와 뽕잎을 넣은 기능성 청국장, 그리고 누에고치 마사지재료까지.
그는 누에로부터 수많은 부가가치를 뽑아냈다.

 

#소중한 추억을 선물한다
그가 농촌을 선택한 결정적 계기가 단순히 돈벌이에 있지 않듯이, 그는 농촌과 도시가 함께 상생하는 그런 공간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바로 체험공간이다.
아이들이 누에를 무서워하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예쁜 캐릭터도 만들었고, 흰색의 누에고치에 염료를 이용해 염색한 후 자르고, 오리고, 붙여 여러 모양의 고치공예를 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도시에서 체험을 위해 농장을 찾는 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시골에 오니까 공기도 좋고, 깨끗해서 좋다'는 말입니다. 도시에서 사는 분들이라면 누구든지 농촌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농촌에서의 체험을 통해 잊혀져 가는 우리의 옛 것을 더 느낄 수 있구요. 다양한 체험활동이 마련된다면 농촌을 찾는 도시인들은 더 많아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많은 체험활동을 위해 그는 마을 주민들과의 연대도 구상하고 있다.
표고버섯 농가를 비롯해 자연농법으로 유정난을 생산하는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체험공간을 그려나가고 있다.

 

#해외농업을 꿈 꾼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웃는 얼굴로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바로 해외농업이다.
"제 꿈이에요. 필리핀을 시작으로 베트남, 중국, 우즈베키스탄까지 4개국에서 누에농장을 만들고 싶어요. 한 나라에 2천ha씩 총 8천ha에 이르는 큰 농장이요. 중국에서 생산되는 실크의 양이 전체 소비량의 75%를 차지합니다. 중국에서의 생산량이 5%만 떨어져도 실크 가격은 50% 이상 오르죠. 그만큼 도전해 볼 가치가 충분한 사업이 아닐까요?"
위도별로 조성되는 세계 실크생산단지.
그의 환한 웃음 속에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농촌의 희망도 함께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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