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여분교에 자리잡은 동화작가 노정옥·서양화가 원덕식 부부
소여분교에 자리잡은 동화작가 노정옥·서양화가 원덕식 부부
  • 류영우 기자
  • 승인 2010.09.30 09:53
  • 호수 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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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소통하는 작은 미술관 꿈꾼다

[어느 날 저녁, 다희의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그 날 밤, 온 세상을 날려버릴 것만 같은 비바람이 밤새 불어댔습니다. 다음 날에 다희의 아버지는 작은 배 한 척과 함께 세상과 이별합니다.
- 중략 -
동주는 다희를 업고 가면서 마음을 위로해 줍니다. 그런데 다희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버지가 마을을 지켜주는 푸른 고래가 되었을 거라고요. 아버지를 위해 유자나무를 심고, 유자가 잘 익으면 아버지를 위해 유자를 바다에 던져 줄 거라고요.]            -노정옥, 푸른 고래를 찾는 아이들 중-

 

시골, 그리고 지역에 애착을 갖고 부유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굵직한 책임감이기도 했고, 무척이나 하고 싶은 작업이기도 했고,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폐교가 된 마로면 소여리 관기초 소여분교에 둥지를 튼 노정옥(42), 원덕식(39) 부부도 그들 중 일부였습니다. 부부는 지금 '그들만의 세상'을 '우리들의 세상'으로 바꿔가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그 어려운 첫 발걸음을 지난 1월, 보은이라는 생소한 땅에 내딛었습니다.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떠돌다
폐교. 이 단어는 서글픈 의미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폐허가 된 농촌, 사람이 하나둘씩 떠나 이제 있던 마을조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농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폐교는 더 이상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그래서 학교가 필요 없을 것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정옥·원덕식 부부는 희망이 꺼져가는 작은 농촌마을, 그리고 폐교를 찾는 일에 매달린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그림을 그리던, 글을 쓰던 작업 공간을 찾기 힘든 예비 작가들에게 자유로운 쉼터를 내 주고 싶었고,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는 농촌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길고도 힘들었습니다.

 

◆첫 만남
2008년 여름, 둘은 처음 만났습니다.
'푸른 고래를 찾는 아이들'이란 첫 동화집을 출간한 동화작가 노정옥씨와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서양화가 원덕식씨의 만남은 그들이 살아온 삶과는 전혀 새로운 세상 속으로 뛰어들게 했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던 농촌에서 그들의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한 부부는 그 후 2년 여 동안 그들의 둥지를 찾아다녔습니다. 지난해부터는 아예 운영하던 미술학원조차 정리한 후 그들의 보금자리를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2년여의 긴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멋진 자태를 뽐내며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도 그랬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소여분교의 나무 울타리도 그들의 눈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2010년 1월.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썰렁한 교실에 텐트를 치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난방도 없고, 수도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은 자신의 공간을 손수 꾸며나갔습니다.
"고생 참 많이 했죠. 남자야 그렇다고 해도 여자의 몸으로 추운 겨울을 텐트 속에서 지내며 힘든 노동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 쓰러져가기 직전의 폐교, 여러 색깔의 페인트를 누더기처럼 기운 겉모습, 그리고 모두 다 도시로 떠난 농촌을 지키는 장승처럼 서 있던 학교는 이렇게 이들의 손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소중한 이 공간에 '소통'의 의미까지 부여했습니다.

 

◆지역과 함께 하는 소통의 공간
그들의 손을 거치면서 폐허처럼 자리 잡았던 작은 학교는 이제 서서히 지역과 함께 하는 '문화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월 23일,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 작은 학교가 새로운 출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외부 작가들과 함께 하는 개관전과 노정옥·원덕식 부부의 새 출발을 알리는 결혼식이 바로 이곳에서 열리게 됩니다.

그들이 작은 농촌을 선택했듯이, 이번 개관전에서도 농촌을 사랑하는 서울작가들 10여명이 참가하게 됩니다.

지역과 함께 하는 소통의 공간으로써의 미술관. 이들의 시도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작은 학교는 서울지역 작가들과 지역을 연결하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 공연 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역사람들은 모두 서울에서 전시를 합니다. 역으로 우리는 이곳 작은 학교에서 서울사람들의 작품들을 전시할 생각입니다. 단순히 전시만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많은 작가들이 보은사람들과 소통하는 그런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작은 학교의 색다른 공간은 이제 노정옥·원덕식 부부가 꿈꾸는, 아니 지역이 함께 꿈꾸는 소통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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