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에서 새 희망을 찾는다
보은에서 새 희망을 찾는다
  • 류영우 기자
  • 승인 2009.07.07 09:57
  • 호수 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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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은 가장 경쟁력 있고, 가치 있는 투자 공간 -산외면 대원리에서 새 삶 시작한 김현호·유애라 부부

 일찍이 농촌의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난 지 오래다. 그 행렬에 뒤처지거나 역행하는 사람은 오히려 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 요즘 세태다. 농사짓는 사람들도 자식들이 농촌에서 농사짓는 것을 만류하는 세상에 낮선 땅, 생면부지의 사람들 속으로 한 젊은 귀농인이 스며들었다. 귀농은 농업농촌의 희망을 찾아가는 길이다. 귀농인들이 땅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런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은 바로 우리 농업에 희망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난해 11월 산외면 대원리로 귀농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젊은 귀농인 김현호(51), 유애라(46)씨의 이야기다. 혈연, 지연, 학연 등 그 어느 것 하나 비빌 언덕이 없는 보은에 들어와 새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김현호씨 부부. 그들은 과연 어떤 희망을 갖고 이 땅에 들어온 것일까?

 

 

◆농촌에서 희망을 찾는다
 생명의 시대를 강조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가장 강력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단어는 바로 '안전한 농산물'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농업 현실은 그 내용에 있어 미약한 것 또한 사실이다. 햅쌀이 익어가는 들녘은 분무기를 타고 쏟아져 나오는 농약으로 가득 채워졌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비료 값을 원망하면서도 대다수 농민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화학약품의 힘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여기에 봇물처럼 밀려들어오는 수입농산물은 우리의 먹을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김현호씨가 진정한 가치를 부여한 농촌의 희망은 바로 안전한 먹을거리다.
 먹을거리가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촌은 김씨에게 있어 가장 경쟁력 있고, 가장 가치 있는 투자공간이었던 것이다.

◆아주 우연한 인연
 서울에서 건축 인테리어 일을 하던 김현호씨가 보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청주에 있는 처갓집을 방문한 자리에서 속리산 등산을 결정하게 됐고, 산외면 신정리에서 시작된 묘봉을 오르면서 보은에 자리를 잡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고민을 했죠. 귀농을 결심하는 사람은 많지만 나이를 먹어서 들어오는 것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농촌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귀농을 결심한 상황에서 묘봉에 올라 보은을 바라봤습니다. 산세도 좋고, 공기도 좋고. 남은 일생을 바쳐도 될 만큼 포근했습니다."

 보은 땅에서 새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김씨는 지난해 11월 컨테이너상자 하나에 의지한 채 농사일을 시작했다.
 6개월을 넘게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면서 새로 지을 집을 직접 준비했고, 많은 어려움을 이겨낸 뒤 드디어 지난주에 마을 사람들과 집들이 행사도 가졌다.
 “지난 겨울, 많은 고생을 했죠. 낮에는 농사일에 매달리고, 밤에는 집 짓는 일에 매달리고."
 농사일과 집 짓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정작 김씨가 가장 어려웠던 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귀농인에 대한 지역의 무관심이었다.

 

 

◆귀농대책 마련 절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는 귀농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과 교육시스템이 마련돼 있습니다. 100% 의존하지는 않았지만 귀농을 결심한 후 보은에서 생활하면서 필요한 부분도 많더라고요. 하지만 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농가주택이라고 해서 군으로부터 저리융자를 받았지만 이마저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돼 직접 신청한 것이었다.

 귀농인에 대한 무관심은 군 행정뿐이 아니었다.
 시골사람들의 우직함과 순박함을 믿었지만 김씨에게 돌아온 것은 실망뿐이었다.
 “처음엔 땅 때문에 문제가 생겼죠. 부동산 업체에서 장난을 치는 바람에 많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고요. 계속해서 토목공사를 하면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수천만 원이라는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고요. 저야 손해를 본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보은을 찾는 귀농인을 위해서, 귀농인이 안정적으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군 행정 차원의 지원체계 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첫 수확
 이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김씨가 처음으로 농사일을 시작한 것은 바로 채소다.
 집을 짓기도 전에 김씨는 집 앞 텃밭에 알타리와 배추, 상추, 쑥갓 등을 심었다.
 그리고 첫 수확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서울에 있는 친지들과 나눠 먹는데,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농작물은 가꾸는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가꿨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얘기죠. 앞으로 제가 키운 농작물에는 '사랑으로 키웠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판매 할 생각입니다. 우리 가족들과 친지들이 먹는 농작물인 만큼 더 많은 사랑으로 키워야죠."

 단순히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귀농을 한 것도, 농작물을 키워온 것도 아니었다.
 김씨의 얘기 속에는 농사일을 통해 새로운 수입을 거두겠다는 의지도 담겨져 있었다.
 “34살 때.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적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농산물 유통일을 하면서 농사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나마 얻게 됐습니다. 농사는 정직한 노동입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주식시장에서 한 주, 한 주를 살피는 마음으로 고추밭의 고추를 한 포기, 한 포기, 놓치지 않고 들여다 볼 생각입니다. 이렇게 정성으로 키운 농작물은 제가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판매할 생각이구요."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김현호씨 부부는 생면부지의 땅 보은에 뿌리를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농촌에 살고 싶어 보은에 왔다는 그들은 모두가 떠나려고 아둥바둥하는 그 곳에서 새로운 꿈을 일궈나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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