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이 꽃처럼 피어있는 가을 탐하다
버섯이 꽃처럼 피어있는 가을 탐하다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0.09.16 09:23
  • 호수 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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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길따라 … 둘레산행 7구간 : (문티재~덕대산~거리고개~금적산~거무티~원남중학교 도상 11㎞)

또 비가 온다. 오를 산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등산화 안으로 물어 들어갈 것은 뻔하고 우비를 입으면 산을 오르며 쏟아내는 열기와 운동에너지로 인해 땀으로 범벅일 텐데 우비를 안 입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한담.

지난 12일 우중산행 감행을 각오한 사람들이 모습을 보인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바로 오늘 꼭 그곳을 가야하는지.

본사와 속리산악회(회장 조진)가 함께 추진하는 보은군 둘레산행 길에 오른 일행을 태운 버스가 7구간 출발지점인 수한면 문티재 정상에 닿았다. 산행구간은 국도37호선 수한 거현의 문티재 휴게소 앞에서 덕대산(575m)을 거쳐 금적산(651.6m)정상에서 거무티로 하산, 원남중학교 입구에 다다르는 도상 11㎞구간이다. 옥천군 안내면 동대리~오덕리~청성면 능월리가 이웃이다.

옥천군과 경계인 덕대산, 금적산은 한적하게 등산을 할 수 있는 코스인데다 능선 또한 험하지 않아 길손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굳이 등산로를 내지 않았어도 앞서간 사람들이 디딘 발자국들이 모여 만들어진 자연발생적인 등산로를 따라 첩첩이 장막을 치고 있는 비안개를 헤치고 등산여행을 떠난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
비옷을 차려입고 빗물이 등산화로 스며들지 않도록 비닐봉투를 이용해 물 빠짐까지 갖춘 후 앞서갔던 사람들이 낸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한쪽방향이기 때문에 헷갈릴 일 없다. 이곳을 처음 타는 초보자도 쉽게 방향을 잡을 수 있고 부담 없이 산을 탈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르지 않고 완만하다.

비 때문인지 오랜만에 산을 타는데도 숨이 차지 않았다. 숲길에 접어드니 시간과 시각을 잃을 만큼 산 빛깔이 온통 진초록 빛이다. 아직 가을을 느낄 수가 없다. 굵은 소금 크기의 빗방울이 숲을 열심히 가르지만 빼곡하게 서있는 나무, 나뭇잎 사이를 제대로 뚫지 못한다. 낙엽을 켜켜이 쌓아둔 능선은 오히려 폭신폭신하다. 모처럼 둘레 산을 밟는 일행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험하지 않은 구간이 트레킹코스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중이어서 불편하기는 했지만 깨끗하게 정화된 산속에서 오롯이 진초록의 기운을 온몸으로 탐닉할 수 있었다. 세파에 찌들어 있는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내니 개운하다.

후드득, 후드득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리드미컬하다. 저벅저벅 물기 스민 능선을 밟는 발자국 소리도 경쾌하다. 권인화가 부른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속으로 흥얼거리면서 "겨울에 토끼를 후리러 덕대산을 많이 찾았었다"는 종곡 어르신의 추억속의 무용담을 들으며 앞사람을 뒤를 따르다 보니 어느새 덕대산 정상이다.

옥천군에서 선점한 덕대산 정상에는 이런 저런 구간 표시며 정상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까지 표시해놓고 있다. 둘레산행 시작지점인 산외면을 비롯해 내북면, 회인면, 회남면을 거쳐 오는 동안 거의 모든 산들을 괴산군, 청원군이 선점한 것처럼 덕대산도 마찬가지였다.

1989년 12월 보은문화원이 발간한 '보은의 지명'에는 덕대산이란 지명이 아예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 덕대산 정상을 경계로 우리 군과 옥천군이 나뉘어 있지만 덕대산은 이미 우리지역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다. 옥천군이 덕대산을 자기네 것이라 해도 우리는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일행 모두 보은군의 한심함을 지적한다.

지난해 속리산악회와 함께 시행한 군내 명산 탐방 때 덕대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며 조망을 했을 때 멋있었던 풍광은 50m 앞도 보이지 않게 자욱한 안개바다 속에 잠겨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더했다.

덕대산의 끝자락이랄까 금적산의 시작이랄까 정상에서 땅으로 떨어질 것 같이 계속 내려가니 옛사람들이 넘었을 것 같은 고개가 나왔다. 거리고개다. 수한면 거현1리에서 옥천군 안내면 동대리를 연결하는 고개다.

산행 구간 곳곳에 이곳을 다녀간 산 꾼들의 흔적이 나뭇가지마다 리본으로 매달려 있다. 금적산을 찾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길을 재촉했다.

전국의 명산은 알지만 정작 우리지역의 산은 몰랐던 일행들은 둘레 산행을 통해 우리지역을 알고, 우리지역을 좀 더 사랑하는 마음을 꽉 채워나갔다.

 

#금적산에서 길을 헤매다
멧돼지가 흙샤워를 한 것 같이 뒹굴었던 흔적이 구간 곳곳에 남아있었다. 머리가 쭈뼛해질 정도로 무서움이 엄습해왔다. 장수철 속리우체국장은 "어르신들이 깊은 산을 갈 때는 멧돼지 등 야생 동물들이 많으니까 쇳소리가 나는 것으로 땅을 두드리며 가는 것으로 동물을 쫓는다고 하셨다"는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쇠가 박혀 있는 등산지팡이에 힘을 줬다.

발길을 재촉해 닿은 정상 부근에 있는 산소에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그러기를 수 십분. 이곳에서 점심상을 차려 요기를 하고 산행 방향을 잡았다. 우왕좌왕했던 곳에서 300m도 안 되는 거리에 금적산의 상징물이 돼 버린 방송국 안테나 등 보기흉한 문명의 이기들이 보였다. 금적산 정상이었던 것이다.

발아래 펼쳐진 장쾌한 풍경이 안개 속에 숨어버려 조망을 할 수가 없었다. 주변 경관을 탐닉하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 길로 내려섰다. 안개가 바다를 이루던 낮 12시 30분경 금적산에서 점심을 먹었을 때와는 달리 오후 1시30분경 전주이씨 성을 쓰는 분의 묘소까지 하산했을 때 안개가 걷히고 전망을 할 수 있는 풍경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멀리 삼승면 원남 소재지가 보이고 더 멀리 저수지도 보였다. 장수철 우체국장은 그곳에서 보이는 저수지는 아마도 한중 저수지 일 것이라고 했다.

산을 올랐을 때 사방경관을 조망하는 즐거움이 큰데 오늘은 그런 수확이 없다고 포기할 즈음 만난 경관이어서 아쉬움을 다소나마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즐거움의 여운이 채 가시지고 전에 문제가 생겼다. 하산 길을 잃은 것이다. 무조건 산 아래로 내려간다는 생각으로 우거진 나무사이를 뚫고, 가시덤불을 헤쳐 나갔다. 제2의 심장이라고 하는 발의 곤함이 느껴졌다. 금적산은 우리에게 호락호락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겸손, 정복이란 단어를 새삼 되새기게 했다.

헤맨 끝에 겨우겨우 내려와 닿은 곳은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 계란을 생산하는 옥천농장에서도 한 참 떨어진 곳이었다. 원래 하산지점인 삼승면사무소 위 문화숯불갈비 식당 인근인 거무티와는 상당한 거리다.

팔지도 못할 옥천 땅을 너무 많이 샀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산행 마지막 지점인 평지길 원남중학교 입구까지 속도를 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제 빛깔을 찾지 못한 사과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버섯꽃밭 보셨나요
하지만 여름 내내, 가을까지 이어지는 잦은 비로인해 버섯은 풍년이다. 산행 구간 내내 버섯이 풍년가를 부르고 있다. 야생화가 바닥에 깔린 것처럼 버섯이 군락을 이뤄 마치 꽃밭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닭의 털을 뽑았을 때 살의 돌기가 튀어나온 것처럼 보인다 해서 이름 붙여진 닭다리 버섯을 비롯해 외꽃버섯 등 버섯, 그리고 독을 품고 있을 것 같은 버섯들까지 즐비했다.

송이는 물론 능이버섯을 만나는 행운은 없었지만 버섯 꽃밭을 구경하는 행운을 만났다. 군락을 이뤄 피어있는 버섯이 꽃처럼 예뻤다. 꼭 도토리에서 버섯이 피어난 것 같은 버섯도 있었다. 한 송이 꽃 같은 모습이다.

야생화 보다는 버섯이 더 많았지만 일행들은 버섯 채취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거의 독버섯인 것 같았다. 장수철 속리산우체국장으로 부터 "독버섯이 아닌 식용버섯이라도 무더위에 올라온 버섯은 독을 더 많이 품고 있고 찬 기운이 돌때 올라온 버섯은 독이 덜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아 그렇구나. 금방 조리하지 않고 물에 오랫동안 담가놓는 싸리버섯도 일찍 나오는 것과 찬바람이 돌 때 나오는 버섯과 다르다는 것.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추석이 지나고 9월 말, 10월 초순쯤이면 사람들이 탐내는 많은 식용버섯들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10월 둘레산행 길에는 버섯 채취 욕심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동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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