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수씨, 50년 못 채우고 이달 말 문 닫아
전진수씨, 50년 못 채우고 이달 말 문 닫아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9.02.21 12:06
  • 호수 47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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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게① - 46년 역사, 군내 가장 오래된 한일세탁소
▲ 2월 말로 문을 닫는 한일 세탁소 주인 전진수씨와 그의 아내. 시원섭섭한 표정이 읽혀진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고 있다. 오래된 것은 낡아서 못 쓴다며 부수고 허물어버려 감쪽같이 없애고 새것으로 바꾸는 세상이다. 그런 가운데 오래된 것에 최신의 감성을 색칠해 보존하면서 오히려 빈티지한 느낌을 살려 그곳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새기게 하는 것도 요즘의 분위기다.

유럽, 일본의 100년 넘은 가게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닌 것처럼 서울 등을 중심으로 전통을 보존하고 유지하고 있는 빈티지한 오래된 가게.  마을이 관광명소로 뜨고 있다.

보은에도 전통을 갖고 있고 5060, 3040의 세대에게 추억이 있는 오래된 가게들이 있다. 성광사진관, 화생한의원, 배규정 사법서사 등 지역의 터주대감이었던 오래된 가게들은 아쉽게도 우리 눈에서 사라졌다.

본보는 이렇게 전통이 있는 지역의 오래된 가게를 찾아 지면에 소개한다.

그 첫 번째는 농협군지부  맞은편 보은읍 삼산리 149-17번지에 있는 46년 역사의 한일세탁소다.

신작로에 완행버스가 다니던 시절 한일세탁소 주변은 버스터미널이 있었고 김남수 한의원 자리에 장 외과라는 병원이 있었고, 차부식당 등 탁주를 마실 수 있는 선술집이 있었고, 화교가 만든 자장면을 먹을 수 있는 중국집이 있었고, 최상오 동물병원 자리에 중앙약국이 있고 쌍화차를 내놓으면 중년 신사들의 지갑을 열었던 중앙다방이 있던 보은의 중심지였다.

옛날 그 가게들이 모두 없어진 지금 한일세탁소는 유일하게 남은 터주대감이다.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번화가, 보은읍 1번지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가게이다.

#초창기 드라이세탁은 옷에 기름 붓고 손톱으로 긁어 때를 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짧은 시간 내에 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하루아침에 가게가 생기거나 없어지는 변화가 빠른 시절이다. 그나마 시골이라 도시와 같은 급격한 변화는 덜하지만 보은도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프랜차이즈나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그 옛날 익숙했던 낡았지만 친근한 모습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런 변화에 무던하게도 한일세탁소는 간판 정비로 명패만 바꾼 것 말고는 옛날이 남아있다.

올해로 세탁업을 한 지 46년 역사인 한일세탁소의 주인장 전진수씨는 세탁소를 하면 큰돈은 못 벌어도 때 꺼리 걱정은 안하겠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밥 먹여 주고 잠 재워주고 돈도 주고 기술도 배울 수 있는 세탁을 배우기 위해 상경했다.

지금은 물빨래든 드라이든 기계가 하지만 옛날에는 물빨래는 물론이고 드라이하는 것도 모두 손으로 했다. 드라이 할 옷을 펼쳐놓고 비누칠하는 것처럼 기름을 부어 손톱으로 긁어 때를 뺐다. 기름범벅의 옷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세탁을 끝낸 후 외부에 며칠을 걸어놓아도 기름냄새가 진동했다. "그래도 지금보다 훨씬 깨끗하게 세탁이 된 것 같다"고 전진수 사장은 기억했다.

세탁소에서 쓰는 기술 중 또하나의 고급 기술이 바로 다림질과 수선이었다.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아 주인이나 경력자가 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다림질은 온도체크와 물분사 기술이 필요하다. 연탄불 위에 다림미를 올려놓고 데운 후 옷을 다려야 했는데 너무 뜨거우면 옷이 눌러 붙고 흰 옷은 누렇게 변할 수 있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도로 식히는 기술이 요구됐다. 뜨거워진 다리미를 찬물에 살짝 닿게 해 온도를 떨어뜨리는 방법을 시도하는데 뜨거워진 다리미가 차가운 물과 닿으면 다리미가 튈 정도로 요통을 친다.

초보는 깜짝 놀라서 다리미를 놓치는 실수도 할 수 있지만 고수는 다리미가 튀는 정도만 보고도 온도를 가늠했다. 또 옷이 눌러 붙지 않고 잘 다려질 수 있도록 옷 위에 물을 분사해야 하는데 분무기가 없던 옛날엔 입에 물을 잔뜩 머금고 분사해 안개같이 작은 입자의 물이 고르게 퍼지도록 해야 했다. 고수인지, 초짜인지 물뿌리는 것만 보면 알 수 있었던 시절이다.

담뱃불이 떨어져 구멍이 뚫린 양복바지를 감쪽같이 짜깁기 하는 기술, 오버로크 치는 재봉질 등 고수일 정도의 여러기술을 갖고 있는 세탁소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전진수씨는 이 모든 기술을 숙련한 후에 보은으로 내려왔다.

#교복칼라 수 백장 세탁해 빳빳하게 다렸다

처음 세탁소를 차린 곳은 읍내가 아닌 속리산 곡산여관 옆. 허름하지만 대 여섯 평 정도의 작은 가게에 '한 없이 일이 들어오라'는 뜻을 담은 한일세탁소 간판을 걸었다. 당시 속리산은  흙먼지 뽀얗게 일으키며 달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수학여행이나 신혼여행을 오는 관광객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그 옛날 누가 세탁소를 이용했겠어? 하겠지만 속리산으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의 하얀 교복칼라는 흙먼지 투성이로 변해 세탁소에 맡겼던 것. 하루에도 수백장의 세탁 주문이 들어와 밤새 세탁해서 풀을 먹여 다림질해 빳빳한 교복 칼라를 만드느라 그의 어깨는 빠질 지경이었다.

1년 정도 하다 보은읍내로 왔는데 처음엔 구 보건소 앞 안씨 소유의 방 딸린 6, 7평 가게를 얻었다. 보은읍사무소 맞은편, 시장 안 등 네 다섯 곳에서 세탁소가 성업 중이었던 당시 그는  버스 터미널 주변 그러니까 지금의 자리를 얻기 위해 호시탐탐 가게가 나기만 기다렸다. 그는 "유동인구가 많고 장사가 잘되는 번화가인 그곳에 가게를 얻기 위해 다들 대가리 터져라 대들던 시대였다"고 말했다. 읍내로 들어온 지 4년 만에 번화가인 지금의 자리로 입성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아침 일찍 문 열고 세탁 실력도 소문나고 또 옷 수선 실력도 소문나면서 단골이 늘었다. 드라이 하는 세탁기계도 많이 발전됐다. 처음엔 옷에 기름을 부어 손톱으로 긁어 때를 뺀 후 밖에 널어도 오랫동안 냄새가 빠지지 않았던 것이 드라이 세탁의 1세대라면 2세대는 기계인데도 방앗간에서 피댓줄을 거는 것처럼 피대를 걸어 기계를 돌렸다. 그 다움 3세대에서 컴퓨터 세탁으로 발전됐다. 지금은 단추만 누르면 세탁이 된다. 또 드라이약제도 좋아져 탈취도 금방 됐다.

#에피소드 실타래처럼 주렁주렁

가죽염색도 하고 밍크도 빨았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던 그는 세탁물을 보면 옷의 유행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옛날엔 겨울옷으로 가죽 옷을 많이 입었지만 지금은 가죽옷은 거의 사라지고 파카로 대체됐다. 유행, 트렌드의 변화를 알 수 있는 것.

도로변에 있는 한일세탁소는 많은 문 두드림을 받았다. 옛날에는 잠을 자다가도 문을 두드리는 손님들 때문에 잠을 깊게 자지 못할 정도. 밤12시가 임박했는데 양복바지를 줄여달라고 내미는 손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옷을 빨아달라고 맡긴 세탁물 주머니에서 한 뭉치의 현금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고 학교 선생님의 바지 주머니에서는 반지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주인들에게 돌려줘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데 반대로 화가 나고 속상한 일도 많이 겪었다. 자기가 옷을 태워놓고는 안태웠다며 우겨서 물어줬던 일도 있었다고 했다. 고가의 옷은 도시의 전문 업소에 현금을 주고 세탁해오는데 찾아가지 않아서 손해를 본 적도 있었다. 또 면접 보러 간다며 세탁해놓은 남의 옷 좀 빌려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법적으로 3개월간 보관토록 돼 있지만 지역이다 보니 3, 4년까지 보관하는데도 세탁물을 찾아가지 않아서 이를 처리하는데도 골머리를 앓는 등 46년간 세탁소 운영하며 그는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손해만 본 것이 아니다. 맘에 쏙 들게 수선을 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기도 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일부러 찾아와 인사를 하는 단골들 덕분에 일상의 보람이 크다고 전했다.

#아랫목같이 뜨끈한 앉음터는 지역 사랑방

46년 역사의 한일세탁소는 사람들의 사랑방이다. 세탁장 안에 사람들이 걸터앉을 수 있는 곳을 만들어놓았는데 특히 겨울철에는 몸을 녹이기 좋다. 다리미로 유입되는 온수를 이곳으로 보내 하루 종일 바닥이 뜨끈뜨끈하다. 아궁이에 장작을 지피면 뜨끈해지는 아랫목과 같은 느낌이다. 다리미작업을 계속할 때는 방석을 깔고 앉아도 뜨겁다. '허리를 대고 누워 지지면 시원하고 좋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수 있을 정도다. 작은 규모이지만 사람들이 자주 앉아 쉬어간다. 대포 한잔 하러 가자며 들른 사장님 친구도 있고, 어느 땐 맞은 편 건물에 사는 어르신도 있고, 지나가다 들러서 이런저런 얘기하다 가는 그냥 아는 사람들의 사랑방 코너와 같은 곳이다.

그런데 참 아쉬운 소식을 접했다. 46년 역사의 한일세탁소가 2월말을 끝으로 가게를 접는다는 것.

오랜 단골들은 다들 "이제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묻는데 세탁소 주인 전진수씨는 "아내나 나나 46년간 빨래 빨아대느라 어깨와 허리가 너무 많이 아파서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가게를 접는 이유를 말했다.

자주 찾던 단골 가게가 문을 닫으면 아쉽다. 발길 닿았던 걸음걸음 추억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 같다. 각별한 가게일수록 오래가길 바란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아랫목같이 뜨끈한 사랑방에 앉아서 추위를 녹였던 기자는 이제 어디서 추위를 녹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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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아저씨 좋았는데^^ 2019-02-28 00:51:19
그리울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