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만세운동 100주년 특집 -① 산외면 장갑리 산 혈 끊겨
3·1만세운동 100주년 특집 -① 산외면 장갑리 산 혈 끊겨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9.02.14 10:42
  • 호수 4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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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외 장갑 혈 일제강점기 때 끊겼다"
▲ 산외면 장갑2리 궉말 뒤 북산줄기 산이 두동강이 난 모습이다.

주민, 마을번성 및 자손영화 위해 산허리 잇기 노력

올해는 일제에 항거한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3·1운동의 정신이 교과서 속 역사 또는 기념일 행사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본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지역에서의 일제 침탈 사례 보도를 통해 매년 찾아오는 3·1절이 일회성이 아닌 우리들의 삶과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로 기억되고 지역사랑, 지역공동체 통합과 화합의 운동으로 승화되도록 주민들의 관심을 촉구해 보고자 한다.

보도순서
①지맥 끊어놓은 산외면 장갑리
②송진 채취위해 소나무 생채기 낸 속리산
③지명유래와 다른 마을이름

일제침략 36년은 경제수탈 및 우리의 많은 문화유산이 일제에 의해 훼손, 멸실, 왜곡되는 문화침략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그 중에 전국 도처의 명산에 쇠말뚝이나 돌기둥을 박고, 지맥을 단절하기 위해 산허리를 자르는 등 민족정기 말살 정책을 펼쳤다는 주장이 있다.

즉 한반도의 혈을 끊기 위해 곳곳에 쇠말뚝을 박고, 지맥을 잘라 국운을 단절하려 했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민족의 정신적, 사상적 문화에 상처를 내서 우리에겐 더 이상 인물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믿게 하고, 심리적으로 절망하고 자포자기해서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하려 했다는 것.

산외면 장갑리 궉말(궝말) 주민들도 일제강점기 위와같은 피해를 본 곳이 바로 장갑리라며 이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마을의 중심이자 기둥인 북산에 일제가 쇠말뚝을 박고 이곳에서 마을로 뻗어내려온 지맥을 끊음으로써 마을의 기운이 단절되고 마을에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월 7일 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박동식(77)씨는 "옛날부터 북산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얘기를 듣고 또 북산에서 내려오는 산의 혈을 끊은 것 같다는 얘기를 선대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마을의 큰 산으로 여기고 있는 북산은 속리산 천왕봉, 문장대, 관음봉, 묘봉, 검단산에서 이어지는 속리산 줄기, 대한민국 국토의 중심인 단전에 해당되고 마을이름이 한자로 으뜸마을을 뜻하는 장갑리여서 이곳의 혈을 끊어 마을의 기운을 단절하기 위해 일제가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주민들이 선대 조상들로부터 구전으로 들은 내용이다.주민들이 지맥을 끊어놓았다고 주장하는 북산 현장을 확인한 결과 마을 쪽으로 뻗어내려온 산줄기 중 5m 깊이로 11m, 20m 가량 완전히 단절된 것이 확인됐다.

기자는 농지에서 모를 기를 경우 흔히 못자리용 상토로 산의 흙을 활용했고 오랫동안 이 산에서 못자리상토를 확보하다보니 아예 산이 끊어진 것은 아니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문제의 산은 사유림이고 또 마을에 산주가 거주해서 임의로 남의 산의 흙을 파서 상토로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며 일제가 산줄기를 끊었다는 선대의 주장을 재삼 강조하고 마을의 혈이 끊겨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북산의 기운이 좋아 인물이 여러명 날 자리이지만 일제가 혈을 끊었기 때문에 인물이 많이 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 마을에서 난 인물로 6.25 한국전쟁당시 인천상륙작전, 수도권 탈환과 김일성 고지 및 장단지구 전투에서 공을 세운 우리지역 유일의 3성 장군인 이동용 장군과 일제강점기 애국계몽운동을 펼친 독립유공자 정3품 통정대부 김규한 선생, 1대 산외면장 이동만 선생을 꼽았다. 주민들은 특히 산의 혈을 끊은 곳이 이동용 장군의 선산으로 선대 묘소가 있는 곳인데 일제가 혈을 끊은으로써 장군이 1명에 그쳤을 수 있다며 일제가 마을의 혈만 끊지 않았다면 장군도 더 많이 나오고 인물도 많이 났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이에따라 마을에서는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민족정기회복은 물론 마을의 기운을 상승시켜 마을의 번성과 자손의 영화를 위해 일제에 의해 훼손된 마을 산하의 정기를 회생시키는 것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김동수 이장은 "마을에서 산줄기를 끊은 탓인지 장갑2리 주민들이 잘 안풀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 북산 줄기를 잇는 작업에 대해 주민들과 협의할 계획"이라며 행정당국에서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천의 준설토나 공사장의 사토 등을 이용해 산을 메우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김 이장 등 주민들의 생각이다.

산외면 장갑2리는 궝말, 벌말로 이뤄져 있으며 48가구 1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다만 장갑리는 일제강점기때 생긴 마을 이름이다. 문화원 발행 '보은의 지명'에 의하면 1914년 남악, 벌말, 적말, 안말, 새말을 병합해 장갑리(長甲里)라 했으므로 첫 번째, 으뜸마을로 꼽혀 마을을 단절시키기 위해 쇠물뚝을 박았을 것이란 추측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광복 50주년을 맞아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5년 전후로 쇠말뚝 제거사업과 일제가 개악한 고유지명 찾기 등 민족정기회복사업을 정부 주도로 추진한 바 있다. 당시 보은에서도 △속리산면 사내리 수정봉·신선대·묘봉 △회남면 조곡리 국사봉△남대문리 성재·분저리 삼막골 △내북면 봉황리 청벽 △산외면 장갑리 북산에 쇠말뚝이 박혀있다는 주민제보가 있었다. 이곳들 중 속리산 문장대와 입석대 쇠말뚝은 민간 주도로 제거작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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