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불인(天地不仁)
천지불인(天地不仁)
  • 편집부
  • 승인 2019.02.14 10:18
  • 호수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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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황균(내북면 법주리)

얼마 전 아는 분들과 밥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만난 글귀다. 벽에 걸린 액자에 예사롭지 않은 서체로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네 글자! 천지불인(天地不仁)! 도올 김용옥 선생이 일필휘지로 써 주었다는데 휘갈긴 글씨라 처음엔 네 글자 중에 한 두 글자밖에 몰라보았다. 궁금하던 차에 주인장이 와서 자랑삼아 액자가 걸린 내력과 글귀의 뜻을 자세히 풀어 주시기에 무릎을 치고 말았다.

'하늘과 땅은 결코 인자하지 않다.'라는 말인데 도덕경에 나온다는 이 글귀가 새삼스럽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인간이 대자연을 우습게보고 대했다가는 하늘과 땅이 커다란 벌을 내리는데 용서가 없다는 말이리라. 요즘 들어 돌연 바다 속 저 깊은 곳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쓰나미가 발생해 수천의 목숨을 앗아가는 천재지변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또한 늘 따뜻했던 지역에 갑자기 한파가 몰아닥쳐 여러 사람이 동사했다는 소식은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한다. 지난 해 유럽 등지에서는 수백 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도시를 삼켜버린 일도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천재지변이 최근 들어 자주 발생하는 것일까.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이 하늘과 땅 바로 대자연을 두려워하지 않고 막 대해 왔기에 이제 더 이상 인자하게 참지 않고 대자연이 분노를 토해내는 것은 아닌지.

도덕경에서는 또한 천도무친(天道無親)을 설파한다. '하늘의 이치는 특별히 친애하는 것이 없다'라는 말이다. 세계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우리 한반도도 기상이변에 예외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한반도의 겨울은 사흘이 춥다가도 나흘은 따뜻하다는 '삼한사온(三寒四溫)으로 일컬어져 왔다. 허나 미세먼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몰아닥치는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겨울을 삼한사미(三寒四黴)로 부른단다. 사흘은 차가운 북풍이 몰아쳐 춥고, 나흘은 중국 발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최근 겨울 날씨를 빗대어 일컫는 것이다. 이 모두가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무분별하게 화석연료를 채굴하고 과도하게 사용하는 등 자연을 무차별 파괴한 결과가 아닐까?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점점 높아져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은 서서히 물에 잠기고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현 상황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구는 많고 땅이 턱없이 비좁다보니 많은 문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비좁은 땅에 웬 도로를 그리도 뚫어대는지 모르겠다.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사회에서 어쩔 수 없다는 주장도 이해는 가지만 왼 종일 차 몇 대 다니는 한적하기 짝이 없는 도로를 바라보고 있자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는 어찌 그리도 많이 지어대는지. 인구는 줄고 이래저래 아파트는 남아도는데 계속 지어대고 있으니 이 또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도리가 없다. 산은 왜 그리 파헤치고 뚫어대는 건가. 산불이 나면 산불을 끄려고 임도를 내야하고, 사람들이 산에 놀러 오면 쉬어가야 하니 숙박시설이 필요하단다. 산에 나무는 왜 그리 무분별하게 빡빡 밀어대서 벌목을 하는가. 잡목을 없애고 경제성이 높은 수종으로 바꿔 심는단다. 그러나 우리같은 비전문가의 눈에는 그 주장이 믿기질 않는다. 어느 세월에 어린 나무가 자라 울창한 숲이 될까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이러다가 하늘과 땅이 정녕 노하는 날에는 우리 인간들이 그 분노를 막아내기는 불가능할 것만 같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란다! 개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무차별 파헤치고 오염된 쓰레기 더미를 땅에 마구잡이로 파묻어 버리다가는 인자하지 않은 하늘과 땅이 노해서 용서 없이 벼락을 내리치게 될 것이다. 그 때 가서 하늘과 땅을 원망하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자연을 먼저 생각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중심에 놓고 소박하게 살아갈 일이다.

오황균(내북면 법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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