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북 창리 역골 양재덕·한복수 부부의 고향집 이야기
내북 창리 역골 양재덕·한복수 부부의 고향집 이야기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9.01.31 10:23
  • 호수 4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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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문 열고 들어가면 가마솥 안에서 엿기름물이 펄펄 끓고
▲ 지차이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백년 이상된 옛집을 잘 가꾸고 있는 양재덕·한복수씨 부부.

정지문 열고 들어가면 가마솥 안에서 엿기름물이 펄펄 끓고
구들을 데운 연기는 굴뚝밖으로 뭉게뭉게 피어나고

과거 설은 무조건 시골 부모가 있는 집에서 지내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요즘은 부모가 자식들 집으로 제사를 지내러 가는 경우도 상당하다.

설이 1주일도 채 남지 않은 이즈음 민족 대명절 설을 맞는 백발의 부모들은 모처럼 집을 찾을 손자손녀들 볼 생각에 벌써부터 즐겁고 설이 반갑다. 가래떡 뽑아서 썰어놓고 떡볶이 해먹으라고 작은 토막도 내놓는 등 모두가 자식 위주로 맞춰져 있다. 올해 설맞이 풍경은 내북면 창리 양재덕(74)·한복수(68)씨 이야기로 엿본다.

내북면 창리 역골에 사는 양재덕 이장은 지차(之次)다. 지차이면서도 대대로 살았던 고향의 옛집을 지키고 있다. 부모가 살아계셨을때는 제사도 모셨다. 그러나 지금은 위로 형님이 있어서 제사를 모시지 않고 설이 되면 슬하의 자식들, '손주들' 앞세우고 장조카가 사는 청주로 간다.

100년이 넘은  고향집 뼈대는 과거 조상들이 살았던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부인 한복수씨의 집에 대한 사랑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양재덕씨 못지 않다. 바지런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쓸고 닦고, 칠한다. 그래서 집안은 항상 반질반질, 반짝 반짝거린다. 어디 하나 흐트러진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시골집 농사를 짓는 농촌에서 이렇게 집안을 가꾸려니 신역이 얼마나 고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집을 따뜻하고 포근하고 정갈하게 가꾼 한복수씨와 양재덕씨의 만남은 양재덕씨가 26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모를 떠나 청주에서 책상을 만드는 공장에 다녔던 양재덕씨와 충북대학교 교환원으로 일했던 20살의 한복수씨는 서로 스쳤지만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1년 뒤 양재덕씨와 한복수씨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다시 만나 사랑의 싹을 틔웠고 1년 뒤인 28살 때 결혼에 골인했다.

지차여서 살림을 날 수도 있었건만 양재덕씨는 부모와 큰형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본가의 방 하나에서 신접살림을 했다. 첫째 아들이 4살이 될 때까지 좁은 방으로 이뤄진 본가에서 3집 식구가 복작거리며 살았다. 그러다 양재덕씨가 충북고등학교 운전원으로 취업하면서 분가했다.

그러나 양재덕씨의 알콩달콩한 가정생활은 길지 않았다. 큰 형님 가족도 분가하면서 고향엔 노부모 만 남는 상황이 되었고 효성이 지극했던 양재덕씨는 부모 걱정에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부인 한복수씨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어머니의 몸까지 성하지 않자 한복수씨는 가스 불에 얹어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게 국이며, 찌개며, 밑반찬을 만들어서 주말마다 날랐다. 몸만 떨어져 있을 뿐 시집살이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차 며느리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시어머니는 병이 호전되지 않고 끝내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며느리의 손을 잡고 고맙다, 내가 잘못했다며 며느리의 가슴에 콕 맺혀 있던 시집살이의 설움을 모두 해소시켜주고 눈을 감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고향집을 홀로 지키고 있는 연로한 시아버지가 눈에 밟혔다. 며느리 한복수씨는 매일 시골집에 가서 "청주에서 저희와 같이 살자"고 시아버지를 설득했다. 극구사양했던 시아버지도 며느리의 계속된 설득에 청주로 본거지를 옮겼다. 오랫동안 많은 식구들이 복작거리며 살았던 고향의 본집은 어느새 빈집으로 덩그러니 남게 됐다.

양재덕씨는 아버지를 청주 자신의 집으로 모신 후 주말마다 고향집으로 내려가 집을 보살폈다. 군불을 때고 잡초를 뽑고, 사람이 살지 않으면 온기가 배어들지 않아 집이 허물어지는 이상한 기운이 고향집에는 스며들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살폈다. 그가 퇴직을 하고 고향으로 귀향할 때까지 14년을 계속했다. 그 덕분에 조상이 물려준 고향집은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흙집 보존 위해 호미로 벽 부숴

고향집 보존에 한복수씨의 역할은 남편 양재덕씨 못지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저리 융자를 받아서 집을 새로 짓지 그러냐고도 했지만 남편이 태어난 흙집을 온전히 보존하는 것에 더 마음이 쓰였다. 마당이 깊고 뜰은 높아 오르내리기 불편한 구식 주거공간을 고치기 위해 양재덕·한복수 부부는 마당에 흙을 채웠다. 집 울타리는 장미, 야생화, 매실, 복숭아, 국화 등 사철 꽃을 볼 수 있는 것들로 둘러쌌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방 2개를 하나로 터서 키우고 건너 방은 거실로 만들면서 싱크대를 놓아 입식으로 개조했다.

방을 하나로 털 때 집이 무너질까봐 벽에 물을 뿌려가며 호미로 살살 부셨다고 하는 한복수씨. 옛집을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 집의 진가는 난방이다. 리모델링하면서 기름이나 가스, 화목 보일러로 난방을 하는 대부분의 집들과 달리 옛날 구들을 그대로 살렸다. 방바닥도 두껍게 발라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하루 종일 따끈따끈하다. 창리 120가구 중 옛날 구들이 남아있는 집은 양재덕씨네가 유일하다.

그리고 안채 아궁에 얹은 무쇠 가마솥은 옛날 어머니가 사용했던 골동품이다. 사용하지 않을 때도 자주 들기름을 둘러 녹이 슬지 않게 관리한다. 쇠가 얼마나 많은 기름을 먹었는지 반들반들하다. 한복수씨의 바지런함이 느껴진다. 두께가 두꺼워 잘 타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도 더 진한 국물을 내는 무쇠솥은 이집 의 맛을 내는 비밀이다.

무쇠솥에 장작을 지펴 삶아낸 콩을 이용해 만든 된장, 청국장은 먹어본 사람들이 맛있다며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해맞이 행사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바로 집 뒷산인 성재산에서 하는 해맞이 행사에서 무쇠솥에 뼈다귀를 푹 고아서 우려낸 국물로 떡국을 끓여 주민들에게 대접하는데 아무것도 넣지 않았는데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 일품이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여낸 떡국과는 차원이 달라 올해는 두말 떡이 모자랐을 정도다.

잘 가꿔놓은 이 집은 해맞이 행사를 할 때마다 관광지(?)가 된다. 벌써 8년째인데 할 때 마다 새로운지 해맞이 참가자들은 집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문 해달은 부엌, 무쇠솥, 물레방아, 옻샘물,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게 정리해놓은 연장창고 등등 구경거리를 보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새해를 맞는 진풍경이 해마다 계속된다.

#시부모가 우환 다 걷어가 행복해

지차이면서 시아버지를 모신 한복수씨는 제사와 설과 추석명절 차례를 지냈다. 제사라는 것이 잘 모셔야 한다는 부담도 크지만 제사음식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오죽하면 명절 증후군이란 말이 생길까. 지차이니 마음만 독하게 먹었다면 나 몰라라 할 수도 있던 것을 한복수씨는 자청해서 고생(?)을 했다. 장손이 제사를 모셔갈 때까지 15년간 지냈다. 살아생전, 그리고 사후에도 맏이. 지차 따지지 않고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하고 모신 덕분인지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 일이 술술 잘 풀린다고 한다.

슬하에 아들만 둘 뒀는데 큰 아들이 다쳐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서 양재덕씨와 한복수씨는 한숨으로 나날을 보냈다. 그랬던 큰 아들이 검정고시로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충북대 대학원까지 자력으로 졸업하고 지금은 대기업에 취업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작은 아들도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 남편 양재덕씨도 쓰러져 자칫 거동이 불편할 수도 있었는데 잘 치료해 완쾌되었다.

시아버지가 집안의 근심 걱정을 모두 가져가 며느리의 어깨를 가볍게 해준 것 같다고 믿고 있는 한복수씨는 "큰 바람은 없고요, 아직 결혼하지 못한 큰 아들이 짝을 만나는 것과 자손 건강하고 우리도 건강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사는 것이 바람이예요"라고 말했다.

한복수씨는 며칠 뒤 돌아오는 설 명절 때 자식들하고 '손주들' 볼 생각에 마음이 흐뭇하다. 올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두를 빚고 또 무쇠가마솥에 뼈다귀를 넣고 진액이 나오도록 오래 푹 끓이고 무쇠 가마솥에 엿기름물을 팔팔 끓여 만든 달달한 식혜로 '손주들'로부터 "우리 할머니 최고"라는 칭찬을 들을 계획이다.

또 '손주들'에게 줄 세뱃돈도 빳빳한 신권으로 준비했다. '손주들'에게 주머니가 털려도 기분이 좋은 할머니는 요즘 매일매일 달력을 보며 고향 옛집을 닦는다.

"고향 옛집엔 자식을 기다리는 늙은 부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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