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탄생
  • 편집부
  • 승인 2018.12.27 10:26
  • 호수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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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철

세상의 이치를 보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은 늘 공존한다. 어둠을 뚫고 빛이 비치면 세상이 밝아지지만 그 뒤편에는 기다란 그림자가 생기는 것을 본다. 이런 면은 사회현상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정부에서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고 얼마 지나면 처음 생각했던 밝은 면보다는 오히려 어두운 그림자가 너무 크게 나타나 정책입안자들을 당황하게 한다. 이럴 경우 빨리 수정안을 내놓으면 좋으련만 고집을 부리거나, 엉뚱한 논리로 사람들을 이해시키려 하다가 일을 크게 망치는 경우를 본다.

우리나라가 현재 당면한 문제 중 하나가 인구문제가 아닌가 한다. 지금부터 50여 년 전 만 해도 정부는 아이를 조금만 낳으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못 사는 이유는 아이들을 너무 많이 낳아서 그러니 셋만 낳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 후 몇 년 지나자 이번에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으라고 했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주던 때도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현재는 정반대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제발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지금의 사회를 유지하고 나가서 노동생산성을 키워 경제성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다.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결혼이며 출산이냐고 반문한다. 경제학 강의를 하다가 인구와 실업문제가 나오면 학생 모두가 한숨이다. 이는 몇 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품안의 딸, 아들이 결혼해 때가 되자 임신의 기쁜 소식을 전해 왔다. 그래서 가끔 보호자로 또 운전자로 인근에 있는 산부인과에 갈 경우가 있다. 갈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병원에는 임신한 젊은 아낙들이 참 많다. 그리고 그 병원이 소아과를 겸해서 그런지 고만고만한 아이들도 많다. 이 병원만 보면 출산율을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나라전체를 보면 아니란다. 산부인과 없는 군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인근 대도시로 원정 출산을 해야 한다고 하니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일주일 전에 손녀가 열 달 동안 엄마와 함께 있다가 세상에 나왔다. 출산의 고통도 잊고 아기를 안고 있는 며늘아기의 얼굴은 찡그리고 있지만 기쁨 그 자체이다. 아들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나는 아들 부부에게 부모가 된 것을 축하하면서 또 당부의 말도 곁들였다. 부모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은 고통과 희생을 통하여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마음 단단히 먹고 훌륭한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아직 그 뜻을 잘 모를 것이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들 내외는 자기의 분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성탄절이 지났다. 종교가 서로 다를 지라도 예수님 탄생은 세계적인 축제가 되었다. 전과 같이 거리마다 흘러나오던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호화스러운 조명, 카드 등이 적어져 분위기를 띄우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은 들떠있다. 아마 연말연시가 함께 있어서 그럴 게다.

아들이 집에 와서 갑자기 옛날 사진첩을 찾는다. 서재 한구석에 꽂아 있던 사진첩에서 자기가 태어났을 때의 사진을 찾고는 빙그레 웃는다. "아버지, 사람들이 우리 한별이가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제 어릴 때 사진을 보니 저와 똑같아요. 여기 보세요."하며 사진첩을 내민다. 내가 보기에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아들을 위하여 큰 소리로 동조했다. "그럼, 딸이 누굴 닮겠냐? 부모 얼굴 닮지. 귀는 엄마 닮았고, 코는 아빠 닮았구나."

아들은 나의 말에 잔뜩 고무되어 얼굴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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