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
보은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
  • 편집부
  • 승인 2018.12.06 08:58
  • 호수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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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황균

민족정기가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고장 보은에 교육공동체 '햇살마루'가 떴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사회의 형태로 독일의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가 분류한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와 게젤샤프트(이익사회)라는 것이 기억난다. 게마인샤프트는 농촌사회의 혈연과 지연 등을 기반으로 하고 비타산적 특징을 가지며, 대인관계가 전통사회의 풍습에 따라 결정되는 사회의 형태다. 게젤샤프트는 20세기 들어와 대규모 도시화로 생겨난 인위적이고 타산적 이해에 얽혀 이루어진, 합리적 이기주의와 타산적 행동들이 특징인 사회 형태라고 알고 있다.

예로부터 마을에 큰 일이 생기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힘을 모아  그 일을 해결했다. 이것이 '두레'라는 옛 마을공동체다. 내가 어렸을 적 살던 마을에는 동네 가운데 높이 달린 종이 있었다. 그 때만해도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도 해먹고 소죽도 끓이던 시절이었다. 아궁이 불이 기어 나와서 부엌 안 나뭇간에 옮겨 붙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불이 나면 먼저 화재를 발견한 사람은 누구랄 것 없이 '불이야!!!'를 외치며 달려가 종을 땡땡땡땡땡... 미친 듯이 쳐대고, 온 마을 사람들이 양동이나 양재기 등을 들고 내달려 와 줄을 서서 물을 날라 불을 껐던 기억이 난다. 내가 경험한 게마인샤프트의 생생한 기억이다. 이러한 마을공동체는 나라발전의 기초가 되었고, 우리 민족의 사회·경제·문화적 삶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와 시대 변화에 따라 지역에 기반을 둔 마을공동체는 위기를 맞게 되었고, 특히 농촌 지역은 고령화와 이주민의 증가, 세대차이의 심화 등으로 더 큰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북면 법주리에 귀촌해서 1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나는 제2의 고향으로 여길 만큼 정이 많이 들었다. 지금이야 내 동네로 여기지만 처음엔 마을에 터를 잡고 오래 살아오신 주민들과 서먹서먹하였다. 더구나 낯설고 물 설은 내북면으로 범위를 넓히면 도대체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분도 안 계셨다. 이런 내게 함께 살아가자고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주신 분들이 법주리 마을 사람들과 '주성골생활공동체'에 속한 내북면민 들이었다. 그 고마우신 분들과 함께 어울려 충북 민속경연대회에 나갈 '주성골두레농요'를 연습했다. 여러 마을에서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하고 난 사람들이 고단한 몸을 이끌고 밤으로 모여 모를 쪄다 심고 김을 매는 두레농요를 재현하는 연습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주성골 공동체'에 녹아들고 어우러져 더불어 사는 행복감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우리 고장 보은에서도 협동조합 형태로 교육공동체 '햇살마루'가 11월 24일 창립총회를 갖고 당당하게 출범했다. 자주적·자립적·자치적 조합 활동을 통하여 가정·학교·마을이 함께 키움터·배움터가 되고, 주민 스스로 주인으로 나서서 연대활동을 통한 건강한 교육생태계를 조성하고, 평생교육의 질을 향상시킴은 물론 참여와 나눔의 기치 아래 마을교육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지역발전에 기여함으로써 누구나 살고 싶은 보은을 만든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다.

아무리 쉬운 일도 처음에는 해결해야 할 어려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허나 어려운 일들을 헤쳐 나가는 과정 속에서 힘도 커지고 희망과 미래 비전도 생기는 법이다. 부디 새로 탄생한 교육공동체 '햇살마루'에 힘들고 어렵지만 올곧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많은 보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돕고 서로 용기와 힘을 북돋워 줄 수 있는 바탕으로 잘 커주기를 소망해 본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는 마루 위에서 민족정기가 살아 숨 쉬는 보은을 빛낼 주인공들이 힘차게 쑥쑥 자랄 거라는 확신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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