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
더불어 함께
  • 편집부
  • 승인 2018.11.08 09:49
  • 호수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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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황균

사회가 발전하고 그만큼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하다 보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요구나 주장을 담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그 힘으로 이를 관철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주말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집회도 있고, 어떤 이는 송전탑 같은 높은 고공에 올라가 펼침막에 주장을 써서 걸어 놓고 생명을 건 투쟁을 전개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피켓을 들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기도 한다.

인터넷과 SNS(Social Network Service : 사회적누리소통망)가 발달한 요즘은 더욱 다양한 형태의 의견 표출 방법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 중 가장 세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가 '청와대 국민청원'이 아닐까 한다. 2017년 8월 17일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이하여 19일 청와대 홈페이지를 '국민소통플랫폼'으로 개편하면서 신설된 바, 2018년 2월 23일 기준으로 약 124,500건을 넘는 글이 올라와 일일평균 658건을 기록했다니 가히 선풍적 관심을 끌고 있다 하겠다. 국민청원에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동의가 모일 경우에는 장관과 수석비서관을 포함한 정부 관계자의 공식 답변을 30일 이내에 들을 수 있다.

그럼 옛날에는 어땠을까. 조선시대에 힘없는 백성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임금에게 직소했던 신문고가 있었고,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호소문이나 격문을 쓰고 나서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게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원을 그려놓고 돌려가며 이름을 적은 사발통문은 주로 고종 때 동학농민군이 사용하였다. 그 다음으로 '만인소'라는 것이 있다. 만인소는 '1만여 명이 임금에게 올린 글'이란 뜻으로, 하나의 상소문에 1만여 명이 연대 서명을 해서 자기들 의견이나 주장을 임금이나 조정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처음 행해진 만인소는 앞에서 언급한 '청와대 국민청원'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1792년 봄, 조선 22대 임금 정조께 영남 지방 유생 1만57명이 올린 상소문을 시작으로 모두 7차례나 만인소를 올렸다. 1880년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홍집을 벌하라는 영남 유생들의 만인소를 받아든 고종은 결국 이를 받아들여 그를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조선책략'을 근거로 한 외교정책을 철회했던 적도 있다. 

얼마 전 보은 지역에서는 친환경 사업을 가장한 업자들의 횡포로 여러 곳에서 폐기물 쓰레기로 인한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 내가 사는 법주리에도 지렁이 사육장이 들어온다고 해서 모든 주민이 큰 걱정을 했다. 마을 주민이 모두 나서서 싸운다고해 봤지만 심각한 역부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보은군 이장협의회 연찬회가 충남 모처에서 열린다고 해서 우리 법주리 이장님이 협조를 구하기 위해 결의문과 서명지를 돌렸고 많은 이장님들이 동병상련의 걱정으로 서명을 해주셨다. 보은군의 이장단은 이러한 불의의 사태가 보은의 어느 지역에서 일어나든 공동으로 대처하며 행동하고 끝까지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 우선 내북면에서는 이장단과 발전협의회에서 결의하여 모든 동네 앞에 폐기물 쓰레기장 설립 반대의 현수막을 일제히 내걸었고, 이웃 회인면에서도 각 동네마다 앞 다투어 결사반대 현수막을 걸어주셨다. 이에 영향을 받았음인지 보은군에서는 환경을 지키자는 취지의 조례를 만들기에 이르렀고, 군청의 담당 과에서도 주민의 피해를 막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소식을 들은 법주리 주민들은 깊은 감사와 함께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든든함을 흠뻑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네 일이다 내 일이다'를 따지기에 앞서 '우리 모두의 일이다'라는 공동체 의식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더불어 함께' 사는 정신으로 똘똘 뭉쳐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나의 것으로 인식하고 함께 나서서 외칠 때라야 반드시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교훈을 배운 좋은 기회였다.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야말로 따뜻한 정이 흐르고 살맛나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잘 모르고 앉아서 당하고는 재판 승소 후에도 고통을 겪고 사는 질신리 주민들 생각이 난다. 농사 열심히 지은 죄 밖에 없는 그 분들은 얼마나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고 계실까. 이제는 그 분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짊어져야 하지 않을까.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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