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공원 국화공장 공장장
솔향공원 국화공장 공장장
  • 편집부
  • 승인 2018.11.08 09:49
  • 호수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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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충완(소나무홍보전시관 숲해설가)

구월 지나 어느 날 기습적으로 오는가 싶더니 가을은 물밀고 오듯 숲을 접수했다. 어제에 이어 속리산면에는 오늘도 된서리에 영하의 아침이다. 한여름 그 광기어린 해는 이젠 노란 국화 빛으로 식었다. 땅은 해보다 두어 발짝 먼저 식는다.

참나무는 벌써 색이 바랬지만 가을산은 아직 뜨겁다. 은행나무를 보고 있으면 막 타오르는 노란 불길을 보는 것 같다. 단풍나무에는 검붉은 불꽃이 잠겨있다. 복자기 나무는 어느새 노랗고 빨간 잎들을 거반 떨궜지만 낙엽송은 이제 막 불씨를 당겼다. 가을 숲은 아직 불타고 있다. 숲은 대체 어디서 저 에너지를 당겨왔을까.

된서리에 견디는 꽃이 있을까? 나는 없는 줄 알았다. 하얗게 된서리를 뒤집어썼던 국화는 잠깐의 아침 햇살로 다시 피어났다. 꽃잎이 되살아나고 향기가 살아났다. 지금 솔향공원에는 국화향이 가득하다.

국화는 사방에 있다. 소나무홍보전시관에도 있고 식물원 안팎 주변에도 있고 말티재 관문 언저리에도 있고 연꽃단지에도 있다. 모르긴 해도 숲체험마을 이곳저곳에도 있을 것 같다. 이 많은 국화는 어디서 왔을까.

세상에 그냥 쓸쓸함만 가득할 것 같은 11월에 국화가 있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형형색색의 꽃은 시선을 고정한다. 꽃향기에 벌이 날아들고 꽃 같은 여인들이 찾아와 꽃과 사진 찍고 남정네들도 덩달아 꽃 주변을 어슬렁댄다.

나는 이 꽃들의 내력을 안다. 솔향공원 비닐하우스가 국화공장이다. 이 수많은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공장장 윤 여사는 부단히 마음 졸이며 지냈다. 상판 모래를 만들고 거름 섞고 뒤적일 때는 본인이 여자인 것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단다.

모판 국화모종부터 화분으로 자랄 때까지 옮겨 심고 물주고 바람통하게 위치 바꾸는 일을 할 때는 누구든 눈에 띄면 붙들고 일을 시켰다. 일을 시켜놓고도 조심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기 일쑤다. 적당히 하라고 동료들은 눈을 흘겼다. 적당히는 여사에게 통하지 않았다. 갑자기 태풍 온다고 야외에 내놓은 화분을 펜스 뒤로 옮기는 일을 할 때 여사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옮기다 꽃대가 부러질까, 화분이 비바람에 넘어 질까.

꽃은 생물이라 뭐든 타이밍이고 늦으면 결과는 참담한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여사는 혼자는 할 수 없어 동료들에게 없는 아양 떨며 일을 시켰다고 한다. 

11월 2일 오후 2시 무렵, 국화공장에 남은 화분을 소나무홍보전시관, 말티재 관문 교육관 실내에 옮기는 일을 하다 잠깐 커피숍에서 윤여사랑 마주 앉았다.

"세상이 온통 국화천지예요. 뿌듯한가요?" "처음이면 모를까 이젠 연례행사인 걸요."

여사 목소리는 전에 없이 여유롭고 부드럽다. 여사는 보은 사람이다. 또 솔향공원 기간제 근로자이고 이름은 윤선옥이다. 이 가을 국화 핀 솔향공원에서 그 이름이 자랑스럽다.

201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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