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북면풍물단, 민속경연 최우수
내북면풍물단, 민속경연 최우수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8.11.01 11:27
  • 호수 4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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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되고 있는 상여놀이 섶다리 건너기 시연

우수 산외면 풍물단, 장려는 보은읍풍물단 차지

지난 10월 28일에는 여름 장맛비처럼 장대비가 한동안 내려 행사 진행에 지장을 줬지만 악천후 속에서도 문장대 등반대회는 성황을 이뤘고 풍물경연대회는 신명나게 펼쳐졌다.

풍물연합회(회장 홍진원)가 주관한 보은군민속예술경연대회에는 지난대회 우승팀인 장안면을 제외한 10개팀이 출전해 경연을 펼쳤다. 내북면과 산외면 수한면만 남은 상태에서 비가 내려 경연 중단의 목소리도 나왔으나 회원들이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내북면과 산외면은 비를 맞으면서 경연을 계속했다. 옷이 흠뻑 젖었고 꽹과리 장구, 북, 징 등 모든 풍물이 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울림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으나 혼신의 힘으로 경연을 펼쳐 많은 박수를 받았다.

경연 결과 우중에서도 훌륭하게 공연한 △내북면풍물단(회장 박부이)이 최우수로 군수 상을 받고 △산외면풍물단(회장 김영제)이 우수상으로 군의장 상을 수상했다. 구왕회 문화원장이 시상한 △장려상은 보은읍 풍물단이 받았고 홍진원 풍물연합회장이 시상한 △인기상은 속리산면풍물단이 △특별상은 삼승면풍물단이 수상했다. 수한면풍물단은남부3군 풍물협의회가 시상한 특별상을 수상했다.

내북 주성골 호상 섶다리 건너기

요즘 보기 힘든 만장기에 상여등장

우승팀 내북면풍물단이 공연한 호상(상여놀이) 섶다리 건너기는 내북면의 옛 지명인 주성골에 섶다리가 있어 전해오는 민속놀이를 발굴해 시연한 것으로 우중에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둘러서서 시연을 지켜보는 등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은 내북면 적음리 출신인 고 송우영씨 생존 시 고증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만장기를 들고 상여를 멘 상여꾼들이 섶다리를 건넌다. 요령잡이는 처음엔 상여꾼 위에 올라타 요령을 흔들고 후에는 상여꾼 앞에서 "간다 간다 나는 간다~~이제 가면 언제 오나~~" 인생무생 다시 오지 못하는 길로 떠난 망자의 넋을 달래며 유가족을 위로한다. 요령잡이의 구슬픈 소리에 숙연해질 정도로 심취한 관광객들은 비가 오는 가운데도 보기 드문 전통놀이를 선보인 내북면풍물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양재덕 내북면 창리 이장은 작품의 해설을 통해 "상여는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옛것이 됐지만 옛날에는 고인을 묘지로 모시고 가기 위해서는 필수도구였다. 내북면의 옛 지명인 주성골 호상(상여놀이) 섶다리 건너기는 주성골에 전해내려오는 전통 장례 문화"라고 말했다.

양 이장은 또 묘지로 가는 장례행렬에서 앞의 작은 가마는 혼백을 모시고 가는 영여(靈輿)이고, 뒤의 가마는 영구를 모시고 있다. 이 영구를 산으로 모시고 가려면 꼭 섶다리를 건너야만 극락세계로 간다고 해서 과거에 주성골에서는 꼭 이 전통을 따랐으며 지금은 없어지고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내북면 법주리~창리~성암리, 화전리~창리~성암리 구간의 하천이 흑천이다. 소재지인 창리를 중심으로 볼 때 이곳에는 크게 3개의 섶다리가 있었다. 즉 농협 옆(창리 2교)과 내북초교 진입구(창리1교), 그리고 창리 역골(엽(葉洞) 입구(엽동교)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농협 옆과 내북초 진입구의 섶다리(창리1, 2교)는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생기면서 없어지고 창리 역골 입구의 섶다리는 새마을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1960년대까지도 사용했다.

양재덕 이장은 "옛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창리, 화전, 도원, 동산, 성암, 봉황 동네에서는 섶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곳에 묘지를 마련했어도 일부러 섶다리를 건너는 풍습을 따라 사자(死者)가 극락세계를 가도록 기원했다"며 "주성골 상여의 섶다리 건너기 풍습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계속 됐다"고 말했다.

한편 섶다리는 콘크리트 다리를 만들지 못했던 옛날 나무로 기둥을 세워 그 위에 소나무 가지를 얹어 섶을 만들고 다시 그 위에 떼를 입혀 사람이 통행하고 소 등 가축은 물로 다녔다고 한다. 여름장마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5월말 섶다리를 해체하고 음력 8월초인 추석전 다시 섶다리를 놓고 봄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지난 10월 28일에는 여름 장맛비처럼 장대비가 한동안 내려 행사 진행에 지장을 줬지만 악천후 속에서도 문장대 등반대회는 성황을 이뤘고 풍물경연대회는 신명나게 펼쳐졌다.

풍물연합회(회장 홍진원)가 주관한 보은군민속예술경연대회에는 지난대회 우승팀인 장안면을 제외한 10개팀이 출전해 경연을 펼쳤다. 내북면과 산외면 수한면만 남은 상태에서 비가 내려 경연 중단의 목소리도 나왔으나 회원들이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내북면과 산외면은 비를 맞으면서 경연을 계속했다. 옷이 흠뻑 젖었고 꽹과리 장구, 북, 징 등 모든 풍물이 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울림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으나 혼신의 힘으로 경연을 펼쳐 많은 박수를 받았다.

경연 결과 우중에서도 훌륭하게 공연한 △내북면풍물단(회장 박부이)이 최우수로 군수 상을 받고 △산외면풍물단(회장 김영제)이 우수상으로 군의장 상을 수상했다. 구왕회 문화원장이 시상한 △장려상은 보은읍 풍물단이 받았고 홍진원 풍물연합회장이 시상한 △인기상은 속리산면풍물단이 △특별상은 삼승면풍물단이 수상했다. 수한면풍물단은남부3군 풍물협의회가 시상한 특별상을 수상했다.

내북 주성골 호상 섶다리 건너기

요즘 보기 힘든 만장기에 상여등장

우승팀 내북면풍물단이 공연한 호상(상여놀이) 섶다리 건너기는 내북면의 옛 지명인 주성골에 섶다리가 있어 전해오는 민속놀이를 발굴해 시연한 것으로 우중에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둘러서서 시연을 지켜보는 등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은 내북면 적음리 출신인 고 송우영씨 생존 시 고증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만장기를 들고 상여를 멘 상여꾼들이 섶다리를 건넌다. 요령잡이는 처음엔 상여꾼 위에 올라타 요령을 흔들고 후에는 상여꾼 앞에서 "간다 간다 나는 간다~~이제 가면 언제 오나~~" 인생무생 다시 오지 못하는 길로 떠난 망자의 넋을 달래며 유가족을 위로한다. 요령잡이의 구슬픈 소리에 숙연해질 정도로 심취한 관광객들은 비가 오는 가운데도 보기 드문 전통놀이를 선보인 내북면풍물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양재덕 내북면 창리 이장은 작품의 해설을 통해 "상여는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옛것이 됐지만 옛날에는 고인을 묘지로 모시고 가기 위해서는 필수도구였다. 내북면의 옛 지명인 주성골 호상(상여놀이) 섶다리 건너기는 주성골에 전해내려오는 전통 장례 문화"라고 말했다.

양 이장은 또 묘지로 가는 장례행렬에서 앞의 작은 가마는 혼백을 모시고 가는 영여(靈輿)이고, 뒤의 가마는 영구를 모시고 있다. 이 영구를 산으로 모시고 가려면 꼭 섶다리를 건너야만 극락세계로 간다고 해서 과거에 주성골에서는 꼭 이 전통을 따랐으며 지금은 없어지고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내북면 법주리~창리~성암리, 화전리~창리~성암리 구간의 하천이 흑천이다. 소재지인 창리를 중심으로 볼 때 이곳에는 크게 3개의 섶다리가 있었다. 즉 농협 옆(창리 2교)과 내북초교 진입구(창리1교), 그리고 창리 역골(엽(葉洞) 입구(엽동교)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농협 옆과 내북초 진입구의 섶다리(창리1, 2교)는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생기면서 없어지고 창리 역골 입구의 섶다리는 새마을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1960년대까지도 사용했다.

양재덕 이장은 "옛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창리, 화전, 도원, 동산, 성암, 봉황 동네에서는 섶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곳에 묘지를 마련했어도 일부러 섶다리를 건너는 풍습을 따라 사자(死者)가 극락세계를 가도록 기원했다"며 "주성골 상여의 섶다리 건너기 풍습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계속 됐다"고 말했다.

한편 섶다리는 콘크리트 다리를 만들지 못했던 옛날 나무로 기둥을 세워 그 위에 소나무 가지를 얹어 섶을 만들고 다시 그 위에 떼를 입혀 사람이 통행하고 소 등 가축은 물로 다녔다고 한다. 여름장마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5월말 섶다리를 해체하고 음력 8월초인 추석전 다시 섶다리를 놓고 봄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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