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타다
가을을 타다
  • 편집부
  • 승인 2018.11.01 11:14
  • 호수 46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영철

환절기라 그런지 온몸이 가렵다.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상황은 점점 나쁘게 진행되었다. 잠을 자다 나도 모르게 긁었는지 아침이 되면 팔과 다리에 긁은 자국이 선명하다. 우선 집에 있는 연고를 바르고 상태를 지켜보았다. 낮에는 그런대로 지낼 만한데 저녁때가 되면 다시 가렵기 시작했다. 피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좁쌀만 한 붉은 점들이 몸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샤워하고 약을 바른 후 잠을 청했지만 가려움에 몇 번을 깨었다.

여름이 다가오면 부모님께서는 막둥이를 위해 우선 모기장을 꺼내어 손질하셨다. 혹 구멍이 난 곳이 있으면 미리미리 실로 꿰매어 놓았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모기에 물리면 며칠간 물린 곳이 부어오르다 결국은 곪아 터진다. 그런 모습을 여러 번 본 부모님께서는 여름만 되면 막둥이가 모기나 벌레에 물릴까 전전긍긍했다. 

피부과에 가서 처방을 받았으나 별 효과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머리까지 가려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루는 아내가 어디서 들었는지 피부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용한 한의원이 있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의원은 바로 집 인근에 있었다. 아침을 먹고 일찍 한의원을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증상에 대하여 자세히 묻고는 상처 부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진맥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처방을 내놓는다. 가려움증 첫째 요인은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인 순환작용이 떨어져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요사이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몸이 노화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단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동안 오랫동안 복용한 고혈압약도 영향을 주었단다. 아무리 좋은 약도 부작용이 있는데 20여 년 동안 먹었으니 부작용이 나타날 때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건강과 미용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한 체중 감량도 한몫하고 있단다. 체중감량으로 몸이 건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피부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고 했다. 들어보면 모두가 맞는 말인데 내가 아는 상식과 많은 차이도 있었다.

다음 날 한약을 한 가방 들고 집으로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퇴직 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젊어지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우선 모든 병의 근원이라는 과체중을 감량하려고 5년 동안 헬스장을 쉬지 않고 다녔다. 하얀 머리가 싫어서 염색도 자주 하였고, 정장과 나이 들어 보이는 칙칙한 옷은 모두 벗어던지고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간편복을 입고 다녔다. 그런데 이런 것에도 부작용이 있다고 하니 마음이 갑갑하기만 하다.

머리를 염색하여 젊어 보일 수는 있지만 이로 인하여 두피에는 옻이 올라 알레르기 약을 먹어야 했다, 또 젊은이들처럼 몸에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다녔더니 조임으로 인하여 건조한 피부는 쉽게 상했다. 그뿐인가 좀 더 큰 키를 만들기 위하여 굽 높은 구두를 신었더니 이것도 발목과 척추에 무리를 준다고 신지 말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세상일은 순리대로 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봄은 봄대로의 멋이 있고, 가을은 가을대로 멋이 있는데 굳이 가을을 봄으로 만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아니 노력한다고 해서 가을이 봄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개나리 한 가지를 가을에 꽃을 피웠다고 봄이 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몸과 마음이 자꾸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니 이게 큰일이다. 머리는 그게 아니라고 말해도 몸은 자꾸만 젊은이들의 모습을 따라가려고 한다. 아마 이게 주책이요 망령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 내가 가을을 타도 많이 타나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