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
염색
  • 편집부
  • 승인 2018.10.04 09:37
  • 호수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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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철

교양학부 경제학 시간은 새 학기마다 학생들이 새롭게 바뀌어서 좋다. 가끔은 재수강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극소수다. 이번 학기에도 30여 명의 학생들이 새로운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또 취업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경제학 강의를 듣고 있다. 그들은 전공 학과도, 나이도 다양하다. 특이한 점은 문과생보다는 이과생들이 많다는 것과 가끔은 외국인 학생이나 고령(?)의 학생들로 인해 수업에 어려움도 있지만 그래서 재미도 있는지 모른다.

수업 시간에 눈길이 자주 가는 학생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요란한 모발 염색을 한 학생이다. 머리를 백발로 탈색한 여학생, 빨강 머리로 염색한 남학생, 어떤 학생은 머리끝만 2-3가지 색깔로 염색한 학생도 있다. 보통 보수적인 사람들은 화려하게 염색한 머리에 대해 부정적이다. 나 역시 과거에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염색한 머리에 대해 긍정적이다. 아마 학교에서 그런 학생들을 자주 보아온 탓도 있지만 나 또한 머리염색을 하는 사람이라는 동료의식이 발동한 것 같다.

은행을 퇴직하고 나서 만나는 후배들이나 지인들이 묻는 말 중 단연 1위는 "무엇을 하고 지내느냐?"는 것이고 그 다음이 "퇴직하고 무엇이 좋아 졌느냐?"는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이야 있는 그대로 답하면 되지만 두 번째 질문은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한 결과 '첫째는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져서 좋고, 둘째는 날마다 정장을 안 입어서 좋고, 셋째는 염색을 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의 답변에 의미가 있다며 머리를 끄덕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나에게 있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답은 의외의 답변이라고 했다.

어쨌든 나에게는 목을 죄는 넥타이를 벗어 던진 것과 흰머리를 숨기기 위해 열심히 하던 머리염색을 하지 않는 것이 큰 자유였다. 그동안 입고 싶었던 원색의 셔츠도 마음껏 입고 바지도 여러 종류의 청바지를 사 놓고는 날마다 골라 입었다. 몸과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문제는 흰머리였다. 몇 달 만에 나를 본 사람들은 깜짝 놀라 하는 말이 "아니 퇴직하신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늙으셨어요?."라고 하든지, 아니면 "어디 편찮으세요?"라고 한다.

내가 거울을 보아도 얼굴은 분명 전보다 화색이 돈다. 그런데 머리는 염색을 안 하여 거의 백발에 가깝고, 과도한 체중 감량으로 얼굴과 목에는 여기저기 주름살이 늘어 내가 보아도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그래서 며칠을 고민한 결과 처음의 계획을 수정하였다. 머리 염색을 다시 시작하였고, 체중 감량은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했다.

머리염색 하나로 사람의 모양을 이렇게 변화시키는 줄 몰랐다. 다시 까맣게 염색한 머리는 나의 나이를 10년이나 젊은 50대 중반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날씬한 몸매에 젊은이들과 같은 복장을 하고 다니니 퇴직하고 회춘했다며 난리다. 얼마 전, 후배들이 주선한 모임에 나갔다가 질문 공세를 받았다. 오랜만에 본 후배들은 그동안 나의 육중한 몸과 근엄한 표정만 생각하다가 날씬해진 몸매에 젊어진 옷맵시를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아니, 이렇게 변신해도 되는 겁니까? 체중 감량은 어떻게 하셨어요?"하며 소나기 질문을 한다.

요사이 나는 여자들처럼 머리를 길러 보고도 싶고, 파마도 해 보고 싶다. 그래서 아내에게 슬며시 의중을 물으면 펄쩍 뛴다. "당신 나이가 몇 인줄 아세요? 아무리 백세시대라지만 당신이 청춘은 아니잖아요. 모든 일이 과하면 탈이 나는 법입니다."하며 핀잔을 준다.

이럴 때는 염색약이 흰머리를 검은 머리로 바꾸어 젊어지게 하듯 머리 안에 있는 뇌까지도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꿀 수 있는 '생각의 염색약'도 개발하면 좋겠다는 어린이 같은 상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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