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수레바퀴는 보은 땅을 구른다 ③
역사의 수레바퀴는 보은 땅을 구른다 ③
  • 편집부
  • 승인 2018.09.12 22:36
  • 호수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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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읍 어암리 출신 글·그림 작가인 이주용 작가

의주로 도망을 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명나라로 들어 갈 기회만 노리던 선조와 조정대신들에게 보은이란 곳에서 조헌이 왜군을 격퇴했다는 장계(狀啓)가 들어갔을 때 그 분위기는 어땠겠는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로 "역시, 조헌!"하고 놀라며 감탄했다. 조헌은 전에 자신이 벼슬했던 지방을 돌며 새로 의병을 모집했다. 바로 백두대간의 한남금북정맥이 위치한 땅들이다. 속리산에서 뻗어내린 산의 맥이 한강 남쪽과 금강 북쪽 땅을 가르니 보은, 청주, 아산, 공주, 홍성, 금산, 대전, 옥천이 들어있는 땅들이다.관군의 시기어린 방해 속에서도 이곳을 돌며 의병을 모집하니 1천여명이 넘었다. 공주에서 승병 600여명을 이끌고 온 영규대사와 조헌은 합심해 청주성을 공격했다. 얼마나 매섭게 들이쳤으면 성안의 전쟁귀신 왜군이 이튿날 저녁에 성을 버리고 자기들 편 쪽으로 야반도주를 했을까?

이 청주성 함락의 장쾌한 낭보는 의주의 피난조정을 또 한번 뒤집었다. 우리 편이 매일 지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럴 수가 없는 일이었다.

임진왜란 최초의 공성전 끝에 큰 성을 빼앗은 사건이었다. 선조는 신이 나서 조헌과 의병들과 영규대사에게 인색하나마 벼슬을 내리는 교지를 보냈다. 임금을 보호하러 달려가느냐(근왕), 적을 치러 달려가느냐(척왜)의 기로에서 조헌과 영규의 의병들은 광주목사 권율 등과 8월 모일에 금산성의 왜군을 같이 치기로 편지를 보내 약조하고 금산으로 향했다. 당시 전라도 담당 왜군은 전라도 경계인 웅치, 이치, 금산 등지에서 조선의 맹장 권율, 정담, 최경회, 의병장 고경명과 끊임없이 싸우느라 전주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을 때이다.

2만 5천의 주력은 무주에 두고 금산성에 진을 친 1만의 왜군들에게 2천도 안되는 조헌의 의병들은 무섭게 달려들었다. 권율이 다른 날 싸우자고 보낸 편지를 받기도 전에 약속한 날짜에 조헌은 '의(義)자에 부끄럽지 않게 죽자'며 적을 향해 앞으로 달려나간 것이다. 다른 날 권율을 기다렸다가 싸우자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서였다.

갓 결혼한 새색시를 두고 아버지를 따라 같이 싸우던 둘째아들 완기는 최후의 순간이 오자 아버지가 보은현감 시절 입었던 관복을 억지로 벗겨 자신이 입고 적군과 싸웠다. 수리티, 청주성의 패전에 이를 갈고 분노하던 왜적들은 아버지의 관복을 입고 있는 그의 아들 완기가 대장(조헌)인줄 알고 난도질을 해댔다.

중과부적, 조헌과 영규의 의병들은 전원 순국(殉國)했다. 무기와 숫적으로 우세한 왜군의 피해도 엄청났다. 통곡하며 제 편 전사자를 모아 태우는 연기가 사흘이나 갔다. 조헌의 시신은 며칠 후 아우 조범이 이명백 등 제자들과 큰아들 완도와 함께 수습해 금산의 갈산 끝 산록에 묻으니 이곳이 지금의 칠백의총이다. 완기의 시신은 수습할 수가 없어 현재 옥천군 안내면 도이리에 있는 그의 외로운 묘소는 허총(虛塚)으로 되어 있다.

국난 앞에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던 조헌과 달리 사대부 중심의 당시 인물들은 맨머리의 사체, 즉 승병들의 전후 수습에는 소극적이거나 관심이 없었다.

옥천의 가산사 스님들이 어떻게 했다고 하나 그들도 큰 힘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지금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중인 금산읍 갈산의 칠백의총에 승군은 선조가 벼슬을 내렸다는 이유로 겨우 끼워 준 영규대사 1인 뿐이다.

그렇게 금산성 전투를 치르고 나자 왜군은 그로기 상태에 빠져 맥을 못추고 급기야 전라도를 포기하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풍신수길의 지엄한 엄명이고 뭐고 전라도를 점령해야 할 고바야카와 다카가케 등 왜장들은 혼이 빠져 꽁무니를 빼버린 것이다. 경북 성주로 도망갔던 그들 부대는 다시 제 편이 있는 한양을 향했다.

보은읍 어암리 출신 글·그림 작가인 이주용 작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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