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대하여
나이 듦에 대하여
  • 편집부
  • 승인 2018.08.29 19:18
  • 호수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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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철(아동문학가)

날이 더워도 너무 덥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있으면 뜨거운 바람이 분다. 시원한 물로 목욕을 하고 나와도 금방 땀방울이 줄줄 흐른다. TV에서는 오늘도 그 흔했던 비 소식은 없다고 한다. 이럴 때는 태풍이 효자인데 발생만 하면 모두 일본, 중국으로 미꾸라지 빠져나가듯이 빠져나가니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퇴직하고 일 년 정도 지났을 때이다. 주위의 권유로 어떤 문학단체에 가입했다. 문우들이 생기면 아무래도 취미가 비슷하니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회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래서일까? 문학모임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즐겁다.

어느 날인가 수필을 쓰시는 임 선생이 나를 잠시 보자고 한다. 그분은 늘 과묵하고 행동도 올곧은 분이었다. 커피 향이 막 내 코앞을 스칠 때 그분의 말도 내 귀를 스쳤다. “류 선생, 긴한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회장을 맡은 한국00문학가협회 총무를 맡아 주십시오. 전국 모임이라 적격자를 물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가까이 있는 류 선생을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 임 선생의 설득에 지고 말았다. 우선 회장과 함께 여름 세미나 준비를 바로 시작했다. 전국에 있는 회원들이 참석하기 좋은 지역을 물색하여 숙박시설을 계약하였고, 세미나 개최 공문을 보내고 나니 보름이 후딱 지나갔다. 오랜만에 일다운 일을 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몇 년간 세미나를 하지 못해 참석회원이 적을 줄 알았는데 준비된 의자가 부족할 정도였다. 문제는 참석하시는 분들의 대부분이 노인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문학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회원들 대부분이 협력이나 봉사보다는 대접을 받으려고만 했다. 전에는 내가 사회적으로 이런 사람이었고 지금은 국가가 인정하는 노인이니 나를 잘 대접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회원들의 요구사항이 참 많았다. 둘째는 마이크를 잡으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마이크를 독점하려고 했다. 다른 분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셋째는 웬 고집이 그리도 센지 도통 임원진의 지시나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대로 특강이며, 시낭송회는 잘 진행되었는데 다음 날 점심시간에 사달이 나고 말았다. 처음부터 점심 식당은 그곳에 사는 원로 분께서 안내하기로 했다. 문제는 원로께서 약속한 시각에 나타나질 않았다. 나 역시 약속을 믿고 있었기에 미리 식당 이름과 장소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는 것이 또한 불찰이었다. 주변 관광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안내하시는 분은 나타나질 않으니 회장이나 나는 몸이 달았다.

간신히 연락되어 식당을 찾아갔지만 이로 인한 불만은 결국 회원 한분의 심기를 건드렸다. 점심시간 내내 큰 소리로 불만을 이야기하는 통에 점심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회장이 정중히 사과도 하고 원로 몇 분이 달래도 보았지만 막무가내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폐회를 선언하고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였지만 내 뒤는 왠지 개운치가 않다. 그동안 많이 들어 왔던 노인이 되면 지켜야 할 10가지 교훈이 내 주위를 계속해서 맴돈다. “맞아, 오늘 소란을 피우신 분의 모습이 앞으로 10년 후 내 모습일지도 모르지. 좋은 경험을 한 거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야. 세상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은 많지만 노인다운 노인이 적은 이유가 다 이런 이유가 아니겠어."

류영철(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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