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청량한 소나기를 기다리며
폭염 속 청량한 소나기를 기다리며
  • 편집부
  • 승인 2018.08.09 08:23
  • 호수 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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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황균(내북면 법주리)

111년만의 폭염이란다. 우리나라에서 1907년 기상관측이 처음 시작된 이래 올해가 가장 덥단다. 강원도 홍천은 41도까지 기록했다니 놀랍기만 하다. 아!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한 이십여 년 전에 이렇게 더운 해가 있었다. 1994년이다. 그 때 청주 시내에 살고 있었는데, 여러 날 계속되는 폭염에 어찌나 더웠던지 에어컨도 없이 밤에 열대야로 한 숨도 못잔 기억이 난다. 지금 더위는 그 때를 능가한다고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지금까지 십여 년간은 아침 다섯 시에 밭에 나가면 열 시까지는 일을 하고 오전 일과를 마칠 수 있었고 오후에는 느지막하게 너 댓 시경에 또 들에 나가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올 해는 완전 딴 판이다. 아침 여덟 시면 기온이 삼십 도를 훌쩍 넘는다. 더운 기운에 숨이 턱턱 막히고 이마가 따가워서 더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오후에는 여섯 시가 돼도 염천에다가 날이 뜨거워서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하지만 폭염이 기승을 부려도 어찌됐든 들에 나가 일을 해야 먹고 사는 게 농촌의 삶이다. 죽어라 농사를 짓는대도 그저 남는 것 없이 농협 빚만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지만 어찌하랴. 배운 게 농사짓는 일 밖에 없으니 죽으나 사나 들에 나가 일을 해야만 한다. 농민은 그것이 삶이요 운명이며 어찌 보면 낙이 아니던가.

그렇다. 정녕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자 누구인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던 자는 누구이던가. 명문대를 나오고 높은 자리에 앉아서 호령이나 하는 분들이신가. 결코 아니라고 본다. 누가 뭐라고 하든 죽자 사자 아침 일찍 밭에 나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땀을 비 오듯 쏟아가며 일을 하는 농민의 노고가 있어 이 나라는 오늘도 망하지 않고 오천 년의 맥을 잇고 살아가는 것 아닌가. 공산품 팔아먹자고 틈만 있으면 에프튀김인지(FTA) 뭔지 조약 맺어서 쌀금, 과일금, 고추금 모다 똥금 만들고 농약값, 비료값, 씨앗값, 농기계값 다락같이 올려놓는 농업 정책의 희생자가 농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은 가지만, 그저 그러려니 하는 것이 농민의 순하디, 순한 마음이다. 다 나라 잘 되자고 하는 일이겠지......, 널리 이해를 하고 믿어야지....., 하는 것이 농민의 너그러움이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전에는 잘 몰랐던 사실들이 하나 씩 둘 씩 귀에 들어온다. 아마 매일 보는 텔레비젼 덕이 아닌가 한다. 날은 더운데 슬슬 짜증 올라오는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국산 헬기 만든다고 몇 천억을 쑤셔 박더니, 급기야 그 헬기의 프로펠러가 떨어져 나가 추락하는 사고로 애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고 나서야 수 십대의 헬기 운행을 중지 시켰단다.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그건 이도 안 났다. 4대강 사업이다 뭐 살리기다하면서 교수요 박사들이 텔레비젼에 나와서 떠들어 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이 나라의 젖줄인 4대강이 완전 발암물질인 녹조 세상으로 변했다. 30조 가까운 돈을 들여서 강바닥을 긁어내고 보를 막아 놓으니 강이 완전히 죽을 수밖에. 그러고도 책임을 지는 놈이 하나도 없는 현실은 절망적이다.

그럼 우리의 삶의 터전인 보은은 어떠한가. 신문을 보니 지난 몇 년간 스포츠파크와 관련돼 '300억 가까운 예산으로 축구장, 야구장, 그라운드골프장, 체육회관을 조성하고 이후 추가로 야구장 조명 18억 원, 방송시설 3억5천만 원 등 시설투자에만 총 338억'이 들어갔단다. 또 대회유치를 위해 5년간 군비 100억 원이 들어갔지만 외부 선수들이 시설사용료로 지불한 돈은 연 740만원에 불과하다고 군 의원들이 지적하고 있다. 또 올해부터 시작되는 스포츠파크 내에 다목적 실내체육관 건립에 60억이 투자된단다. 지금까지 시설투자에만 400억 원이 넘고, 전국대회와 전지훈련팀 유치에 120억 원 등 500억 원을 훌쩍 넘겼다는데, 물론 시설유지와 관리비용을 제외한 금액이란다. 군 의원들이 '순수군비 300억 원 중 스포츠예산이 30%인 92억을 차지하는 기형적 예산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단다. 정말 믿기 어려운 놀라운 사실이다. 몇 년 전 여자프로축구 개막전한다고 동네마다 이장 시켜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농민들 동원하더니 이제 실내체육관까지 지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농업이 주된 산업인 보은군답게 공청회라도 제대로 열어서 보은 군민이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 뿐만이 아니다. 59억의 예산으로 600m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죽전-수정간 확·포장 공사는 오락가락 행정 끝에 아직도 공사기간이 모호한 가운데, 지역 주민들은 "당초 사업이 시작될 때 그 지역사정을 잘 알고 있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로를 개설함으로써 교통흐름과 주변 상권과의 연계 등 오랫동안 그 지역을 지키며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예산낭비에 그치기 쉽다"고 지적했다는 기사도 보인다.

선거 때만 뽑아 달라고 애걸하고 막상 선거 끝나면 군민은 안중에도 없고 군민 위에 군림하려고만 든다면 군민은 주인이 아니고 졸에 불과하단 말인가. 수 십 년만의 무더위에 청정 지역 보은군에서만이라도 군민 존중의 한 줄기 소나기같이 청량하고 시원한 소식을 기대해본다.

오황균(내북면 법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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