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내리는 날, 낯선 땅 걷다 길을 잃다
장맛비 내리는 날, 낯선 땅 걷다 길을 잃다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0.07.15 09:37
  • 호수 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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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길따라 … 둘레산행6구간(회남 은운리(지경말)~옥천 용촌리(용수말)~수한 노성고개~장선~질신(질고지)~거멍산~문티, 도상 17㎞)

'산 따라 길 따라 - 보은군 둘레산행' 6구간 등정은 주룩주룩 퍼붓는 장맛비와 함께 했다.
지난 11일 일요일 아침 눈을 뜨니 빗소리가 새 차다. 비가 오니까 산행을 접겠지 내심 기대를 하고 산행을 인솔하는 속리산악회(회장 조 진) 관계자들의 아침잠을 깨우는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건다.

일단 집결지에서 참가한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해 결정을 하겠다는 산악회 조진 회장님의 전화기 넘어서 전해오는 말씀을 듣고 "나는 우비도 없는데…."하자 우비는 준비를 시키겠단다.

서둘러 보청천 하상주차장 집결지에 다다르니 그동안 20여명에 다다랐던 참가자들은 다 어디를 갔는지 7명이 고작이다. 그래도 이들은 산행을 강행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참 대단한 분들이다.

그런데 정말 가기 싫은 이 몸은 어떻게 하냐고요. 동행취재를 해서 신문에 '대서특필'을 해야 하는데 갈 수밖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뭐. 마음을 다잡고 빗길 산행의 서막을 올렸다.

산행 참가자 7명이 종가집 순대 김인선 대표가 운행하는 미니버스에 올라 6구간 출발지인 회남면 은운리 지경말까지 갔다.

지경말 마을회관에서 소주 한 병을 동냥해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회남면 은운리(지경말)~옥천 용천리(용수말)~수한 노성고개~장선~질신(질고지)~거멍산~상문티로 하산하는 둘레산행 길을 떠났다.
우리지역의 이 구간과 경계를 이루는 옥천군은 안내면 용촌리 용수말~새터말~월외리~방하목리이다.

 

◆무더위 보다 빗속 산행이 좋다
회남 은운 지경말에서 옥천군 안내면 용촌리 용수말까지 4~5㎞에 이르는 도마티재 콘크리트 포장길에서 다시 수한면 노성리로 닿는 군도의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것이었다. 시작부터 난코스였던 셈이다.

경사가 아주 급하거나 칼바위 구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빗물까지 먹은 쿠션하나 없는 시멘트 콘크리트 포장길을 터벅터벅 걷는 것이 지옥 길이었다.

오늘 안 걸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지는지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를 맞으면서 하염없이 걷고 있는 참가자들을 보고 김동율씨는 "미치지 않고서야 이 우중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빗길에 떠나겠나"했는데 그 말이 딱 맞았다. 전부 산에 미친 사람들이었다.

비장한 각오로 둘레산행에 나선 산꾼들은 노성리 효도원 입구 표시판 인근에서 개울 길을 따라 걷다 노성고개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입산하면서 본격 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초입에 나무가 우거져 도대체 들어갈 수나 있을지 의심했지만 나무를 헤집고 발을 들여놓으니 이미 이 구간을 거쳐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긴 흔적으로 이미 길이 만들어져있다. 동네사람들도 버섯을 따기 위해 걸었을 능선 길을 따라 걸으니 낙엽이 만들어 놓은 쿠션에다 비가 와서 먼지 없이 빛 한줌 들지 않는 울창함 속에서 풀냄새, 나무냄새, 흙냄새 뒤섞인 숲 냄새가 싱그러워 그야말로 트레킹에는 제격이었다.

등산화는 이미 다 젖어 양말까지 물이 배어 질퍽질퍽하고 바지 아랫부분이 젖어 무겁기는 했지만, 땀은 물론 소금기가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있고 거친 숨이 턱에까지 치달아 피곤이 엄습해오는 무더위 속 산행 보다 훨씬 좋았다.

초반 포장길을 걸으며 힘을 뺀 산행은 산에 들어오면서 비로소 속도가 났다. 선발대인 속리산악회 김기식 부 등반대장과 김영환 회원은 날다람쥐 같이 속도를 냈다. 멀찌감치 내달린 선발대를 뒤쫓느라 후발대도 애를 먹었다. 산림이 우거진데다 비까지 내려 산속은 컴컴하기 까지 했다.

휴식시간 없이 속도까지 내며 하산하듯 산에서 내려오니 장선리에서 옥천군으로 연결되는 575번 지방도가 나왔다. 12시가 채 안된 시간, 지방도를 지나 질신리 쪽으로 방향을 잡아 식사할 장소를 찾았다. 비를 피하고 여유롭게 점심식사를 할 명당을 찾았지만 우중에 그런 마땅한 곳이 어디 있으랴. 마침 김해김씨 어느 분의 묘소가 있었고 번듯한 상석까지 놓여있으니 밥상이 따로 없었다.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고 고수레를 한 후 빗물에 젖은 반찬과 밥을 먹었다. 꿀맛이었다.

 

◆귀신에게 홀려 산속을 헤맸다
비에 젖은 산길 속을 헤매느라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기력이 없었던 산꾼들은 손바닥 크기의 도시락에 담긴 밥 양이 얼마나 된다고 도시락을 다 비우더니 원기를 회복됐는지 쉴 사이 없이 길을 재촉했다.

능선을 계속 타면서 얼마쯤 갔을까 완전 벌목작업을 해서 앞이 훤했고 멀리 동네도 보였다. 질신2리(새터)였던 것 같다. 3갈래였는데 그곳에서 길을 헤매 선발대가 이 곳 저곳 을 누빈 끝에 산행한 사람들이 매달아 놓은 띠를 찾았고 어림짐작으로 갈 방향을 잡아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산 정상으로부터 7, 8부 능선 즈음 오르니 골짜기에 민가가 하나 있고 개가 낯선 사람들의 움직임 소리를 감지하고 거칠게 짖어댔다. 너른 고추밭도 있고 트럭도 보였다. 그 높은 산중에 사람이 거주하는 듯싶다. 경사도 60도 이상 되는 고바위를 치며 능선을 한 참 타고 있는데 선발대가 다시 주변을 살피더니 능선을 잘못 타 옥천 월외 쪽인 것 같다며 3갈래로 다시 돌아가야 한단다. 되돌아가는데 왕복2, 3㎞는 더 걸었을 것이다. 이 구간에서 정말 그동안 남겨뒀던 힘이 다 빠져버렸다.

이진덕씨는 묘지에서 밥을 먹는 게 아니었다며 귀신에 홀린 것 같다고 할 정도로 혼이 빠져 있었다. 주변을 볼 수 있는 도로를 걷는 것과 산속을 걷는 것의 차이일까 금방 질신리에 닿을 듯 했지만 2시간 남짓 갈지 자 산행 후 겨우 질신리에 닿았다. 점심을 먹기 전 지났던 장선리에서 이웃동네 질신2리까지 2시간 이상 걸렸던 것이다.

몸통과 다리가 따로 노는 것 같이 아픈 다리를 이끌고 일행 뒤를 쫓아 질신1리 입구에 닿았다. 마침 일행들이 물도 마시고 간식을 먹는 여유와 함께 피로를 삭히고 있는 중이다. 천우신조다. 그냥 그대로 주저앉아 다리를 폈다. 얼마나 뻐근한지 다음날의 활동할 일이 걱정이 될 정도였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일행이 거멍산 정상을 향해 걷는다. 거멍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질고지 동네를 종단하며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와 보은군 수한면 질신1리 질고지로 행정구역이 나뉘었다.

질고지 방하목리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옛날에는 스무 가구 남짓 했지만 지금은 9집 밖에 안된다며 옛날부터 이곳도 질고지인데 이제는 마을이 나뉘어 질고지 경로당에도 안가려고 방하목 마을 안에 사랑방을 하나 만들었다고 말했다.

개울로 인해 한 마을을 두 개 마을로 나누자 주민들 마음마저 나눠져 버린 것 같았다. 산 능선을 행정구역 경계로 삼아야 하는데 개울을 경계로 해서 생긴 폐단이다. 마로면 임곡리와 경북 임곡리도 마찬가지다.

거멍산 입구를 찾는 일과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귀신에 홀린 산행은 끝까지 계속됐다. 더욱이 이번 6구간에는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산행하는 사람들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는 띠도 거의 없었다. 선천적인 안목과 지형지물을 읽는 눈으로 알아서 가시오 하는 형국이다.

노성리를 거쳐 질신리에 닿는 동안 길을 찾느라 헤맸던 여정같이 이 곳 역시 길이 없어 대충 방향을 보고 이쪽으로 가면 정상일 것이다 고 생각할 뿐이다.

선발대가 없는 길을 만들어 잘 이끌어준 탓에 다행히 494.1m고지의 거멍산 정상에 닿았다. 정상에는 KT에서 세운 안테나와 아마추어 무선에서 세운 안테나가 서 있었다.

이제는 정말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이곳에서 11시 방향으로 하산하다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문티재 동진 휴게소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처음에는 11시 방향을 보며 잘 내려왔다. 하지만 웬걸 골프연습장 시설을 본 선발대가 방향을 잘못 잡았다며 다시 정상으로 후퇴할 것을 명한다. 죽어라고 내려간 길을 다시 기어 올라가 정상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번에는 SK텔레콤이 설치한 안테나가 나왔다. 그 안테나를 끼고 우측으로 방향을 잡는 하산 길을 택했다.

산행 종점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려오길 거의 1시간여 걸린 끝에 도로에 닿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귀신이 장난을 했는지 일행이 닿은 곳은 이날 산행의 종점인 보은군 수한면 거현리 문티가 아닌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였다.

길은 잘못 들었지만 수만 평의 옥천군 땅을 뺏어 왔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능선 하나를 잘못타면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산행이었다. 독도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며 그야말로 지그재그 갈지 자 산행을 일삼은 뒤 쏟아낸 일행의 허허로운 웃음소리가 한적한 산골마을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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