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침묵
  • 편집부
  • 승인 2018.03.08 15:21
  • 호수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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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사용하면 할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많다. 며칠 전에는 지인이 새들이 즐겁게 홍시를 먹는 동영상을 보냈다. 눈이 많이 오자 참새가 굶을 것을 염려한 어느 분이 감을 창틀에 올려놓은 것이다. 여러 마리의 새가 "짹짹"거리며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동영상을 보고 있는 나까지 배가 불러오는 것을 느꼈다. "요놈들아, 좀 조용히 하고 먹어라. 우리 아버지가 계셨다면 벌써 혼이 났을걸."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늦둥이인 나를 무척 사랑하셨다. 그렇다고 지금의 아버지들처럼 사랑의 표시를 자주 하거나 분명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업어 주는 것이 다였다. 아버지는 형님과 누님에게는 무척 엄하게 하셨지만, 나는 늘 예외로 두셨다. 하기야 다른 형제들과의 나이 차이가 20살 내외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손자 같은 막둥이가 꽤 귀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께서도 가끔 나를 혼내시곤 하셨는데 그것은 말을 많이 할 때다. 특히 식사 중에는 말을 두 마디 이상 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으흠, 남자 놈이 식사 중에 웬 말이 그리 많으냐? 복 달아난다."라고 하기도 하고 "남자가 말이 많으면 큰일을 할 수가 없다."라고 엄중하게 경고를 했다. 그러니 아버지만 집에 들어오면 우리 집은 절간으로 변했다. 염불 소리조차 없는 절간으로.

그런데 아버지의 행동 중에는 이율배반적인 것이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 셋 중 하나는 말을 많이 하는 판사나 검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둘째 형님을 사립대학 법학과를 보내셨던 것 같다. 그러나 형님께서는 아버지의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막둥이에게 마지막 희망을 거셨다. 나는 아버지의 소원에 부응하듯이 학교만 가면 상을 수시로 가져왔고 그때마다 활짝 웃으시며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요사이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투(me too)운동"으로 오랜 기간 숨기고 숨겨왔던 많은 일이 밝혀지고 있다. 침묵을 미덕으로 삼았던 우리의 고정관념이 이제야 하나 둘씩 깨지는 것 같아 기쁘다. 아니 그 동안 권력과 권위로 또 돈으로 모든 사람들의 입을 봉해왔던 무서운 일들이 번데기가 나비로 탈바꿈하듯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어느 분이 말했다 "나만 조용히 침묵하고 있으면 세상이 또 우리 가족이 평안해 질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앞으로 우리의 딸, 아들이 똑같은 일을 당할 때도 침묵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말하게 되었어요." 오랜 침묵 속에 있던 그들의 절규가 세상을 향하여 계속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 그 동안 사회의 지도자로서, 인격자로서, 또 예술가로서 가면을 쓰고 자행했던 부끄러운 일들이 모두 폭로되었으면 한다. 혼자서 마음 아파하며 긴 세월을 보냈던 그분들에게 혹시 나도 그동안 공범자로서 생활한 것은 나일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이보게. 나는 신이 아닐세. 자내가 말을 안 하고 있는데 자네의 개인적인 사정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프면 아프다고,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말해야 내가 알아서 인사에 반영할 것이 아닌가." 필자가 직장에서 인사과장 시절 어느 직원이 인사상담을 하러 왔을 때 한 말이다. 그렇다. 침묵이 금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자기의 양심에 따라 본인의 생각과 의사를 분명이 말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도 춥던 겨울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이 오듯이 우리의 가슴도 따스함으로 가득 찬 새봄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류영철(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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