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
  • 편집부
  • 승인 2018.02.01 12:11
  • 호수 4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이 오는 소리

류 영 철(아동문학가)

아내는 저녁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나를 부른다. "여보, 여보, 큰일 났어요. 오늘 밤부터 추워지기 시작하는데 내일 아침 청주 기온이 영하 15도라고 하네요. 그리고 하루 종일 영하의 날씨래요. 눈까지 와서 길도 미끄러운데 아무래도 내일은 집에 있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좋겠어요."라고 한다.

아내는 남달리 추위를 많이 탄다. 한약도 먹어보고, 좋다는 민간요법도 여러 가지 시도해 보았지만 조금도 차도가 없다. 그래서일까? 아내의 겨울은 길기만 하다. 보통 단풍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11월부터 어린이날까지로 보면 된다. 그러니 족히 6-7 개월이 된다.

내가 겪은 추위 중 잊을 수 없는 추위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러시아에서 맞은 추위인데 '뼛속을 스며드는 추위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경험했다. 모스크바에 도착하던 날도 눈이 내리더니 1주일 후 귀국할 때까지 한 시간도 쉬지 않고 눈이 내렸다. 그뿐이 아니다. 추위는 얼마나 추운지 국내에서는 오리털 잠바로 충분히 겨울을 이겼는데 모스크바에서는 그 정도의 오리털 잠바로는 불가능했다.

이래서 러시아 사람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보드카라는 도수가 높은 술을 먹고 종일 벌게진 얼굴로 다니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국내에서 겪은 추위는 단연 보은에서의 추위이다. 기상특보를 듣고 밤새도록 수돗물을 틀어 놓았다가 깜박하고 1분 정도 잠근 것이 화근이 되어 모두가 얼어붙었다. 식사는 물론 화장실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소식을 듣고 직원들이 달려와 드라이기로, 뜨거운 물로 녹이려 노력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결국, 수리기사를 불러 그것을 녹이는데 거의 온종일을 씨름했으니 어찌 인상에 남지 않겠는가. 그 때의 추위가 영하 20도를 넘었을 때이니 국내에서 겪은 추위로는 최고였던 것 같다.

그해 아내는 빙판길에서 넘어져 발목을 다쳐 오랫동안 고생했다. 그때 치료가 완벽하게 되지 않았는지 지금도 가끔 발목이 시큰거린다고 하며 눈만 내리면 꼼짝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이러니 아내가 겨울을 좋아할 리가 없다. "여보, 이제 대한이 지났고 조금 있으면 입춘이니 올겨울도 다 끝난 거죠?"한다. 나는 이런 경우 무조건 아내의 말에 동조해 준다. "그럼, 그럼, 올 겨우내 고생했소. 아마 며칠 후면 양지바른 산골짝에서는 분명 봄소식이 날라올 것이오. 동장군이 아무리 설쳐봐야 며칠을 가겠소. 자 우리도 봄 맞을 준비를 합시다. 우선 화분의 때도 벗기고."라고 하며 부산을 떨면 아내도 마치 내일 봄을 맞을 것처럼 바빠진다.

나는 아내처럼 겨울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체중 감량 후 전보다는 추위를 느끼지만, 겨울의 찬바람이 좋고, 눈 내리는 풍경도 좋아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앞 눈을 쓸 때면 묵묵히 앞서서 비질하시는 아버지를 만나고, 꽁꽁 얼린 김치를 먹을 때면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서 좋다. 지금도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연과 얼레가 있다면 뒷동산에 올라 연도 날리고 싶고, 미나리꽝에 가서 썰매도 타고 싶다. 그리고 빨개진 얼굴로 집으로 돌아오면 군불 때다 마시고 내 두 볼을 어머니 볼로 녹여 주시던 그때의 어머니 모습과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얘야, 겨울은 겨울다워야 다음 해 풍년이 든단다. 겨울이 너무 따뜻하면 사람도 약해지고 병충해가 많아서 흉년이 든단다. 반대로 여름은 여름다워야 하지. 날도 덥고 비가 많이 내려야 풍년이 들지 여름이 선선하면 곡식이 익겠냐? 사람도 자연의 이치와 똑같단다. 살다 보면 추운 날도 있고, 더운 날도 있지 어찌 봄날만 있겠느냐?"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두꺼운 얼음 속에서 들리는 것을 보면 봄이 어디선가 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