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서 내북면 화전1리 이장
이윤서 내북면 화전1리 이장
  • 김선봉 기자
  • 승인 2017.11.09 10:55
  • 호수 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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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서 이장과 부인인 박정옥씨가 다정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굙

대부분의 시골마을이 그렇듯, 내북면 화전1리 마을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나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함이 낯선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먹을 만들어 먹골로 불린 화전리

"화전리는 먹을 만드는 동네였답니다" 이윤서 이장의 말이다.

때문에 먼 옛날, 화전리는 '먹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화전리 동네 한가운데에는 샘이 하나 있다. 극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먹골샘은 관계시설 없이도 동네 벼농사와 밭농사를 모두 짓는다.

"요즘 김장철에는 동네 주민 모두가 이 샘에서 배추를 씻죠"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한 먹골샘은 사시사철 동네주민의 빨래터이기도 하다.

동네 뒷동산에는 어른 두명이 양팔로 감싸도 모자라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동네를 바라보며 수백년의 역사를 함께 해오고 있다.

"나이도 모르고 워낙 커서 동네사람들이 신성시 하고 있어요"

화전1리 마을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마을앞 드넓은 광장이다.

그가 이장직을 맡으면서 주변 논밭을 사들여 마을광장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벼도 말리고 들깨와 참깨, 콩타작도 이뤄진다. 명절이면 동네 주민들 자손들의 주차장으로도 이용된다.

25세대, 50여 이웃주민들의 크고작은 잔치가 이곳 광장에서 펼쳐진다.

이처럼 자랑할거리도 많고 화합이 잘되는 화전1리에 커다란 근심이 생겼다.

"사람이 없어 전통을 잇지 못하고 있어요"

화전리는 내북면과 함께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를 크게 치러왔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그도 그만.

"젊은이는 없고 어르신들만 있는데, 음식만들기도 힘들고 커다란 장작을 준비하기도 이제는 벅차서 포기했어요"

이장직 10년을 맡아 오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이장은 동네머슴

이윤서·박정옥 부부는 1999년, 30년의 타향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귀향했다. 영지버섯농장을 운영하며 고향살이에 적응해나갈 무렵, 한화공장이 들어서는 문제와 관련해 주민입장에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렇게 동네일이 앞장서면서 신뢰가 쌓여 이장직을 맡게 됐다.

"모든 이장님들이 그렇죠. 동네머슴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글을 모르시는 할머님을 위해 관공서 업무도 대행해야 하고 수도가 고장나도, 집안에 문제가 생겨도 이장을 찾는다. 하다못해 한밤중에 자다가도 전기가 고장나면 출동을 해야 한다.

그는 작은방에서 서류철 묶음을 들고 나왔다. 해마다 기록된 대동회 회의록과 언론에 보도된 서류철, 농협대의원과 내북면장학회 관련 서류 등. 그의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장일을 보다보니 자꾸만 지역에서 이런저런 일들도 봐달라며 요구가 들어오는데, 이제는 나이도 있고 쉬엄쉬엄 하고 싶은데... 사람이 없다고 하니..."

청주 금융업계에서 최고관리자로 오랜 기간 일했던 그는 모든 일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습관이 배어있다. 그의 서류뭉치만 보도라도 화전리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듯 했다.

"우리 동네는 산으로 포근하게 감싸 햇볕이 잘 들고 아름다운 곳이죠. 이웃과 행복하게 어울리고 동네를 잘 지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겠죠"라며 달빛처럼 환한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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