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은 사람
머리 좋은 사람
  • 편집부
  • 승인 2017.11.09 10:46
  • 호수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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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철

외부강의를 마치고 귀가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히 초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1960년대 함께 학교를 다녔으니 헤어진 지 50년이 넘었는데 그는 나를 알아보았다. 그에 말에 의하면 아직도 내 얼굴에 어릴 적 모습이 많이 남아있단다. 사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가 먼저 아는 척을 안 했다면 나는 분명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백발의 머리에 잔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보고 어떻게 초등학생 때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친구는 헤어지면서 참 재미있는 말을 한다. "너는 머리가 좋았지. 그래서 선생님께 귀여움도 많이 받았고.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머리가 나빠서 고생이 많다네."하며 씽끗 웃는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 친구의 말을 생각하며 몇 번을 웃었다. 왜냐하면 그 친구가 생각하는 머리 좋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그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의 기억력은 대단했다.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소소한 일을 어찌 그리도 기억을 잘 해내는지 마치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과거에는 머리가 좋다는 것은 기억력이 좋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학생 때 시험을 보려면 책과 공책을 거의 암기해야 해야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많이 변했다. 단순한 기억력보다는 창의력과 응용력이 뛰어난 친구들이 인정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날마다 경험하는 일이지만 단순한 계산이나 정보처리 능력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인용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

우리가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시험이다. 환갑이 넘은 지금도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열심히 시험을 보러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 이러다가 죽어서 갈 '천당도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도 해 본다.

지난주에 대학에서도 중간고사가 있었다. 시험 출제방식을 보면 다시 과거의 암기식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주관식보다는 단답형이나 객관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이유는 시험에 객관성 때문이란다. 그러나 이런 답안으로는 대학생들의 논리력이나 창의력 등은 알아낼 수가 없다. 단지 암기능력의 우열을 가릴 뿐이다.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과목이 경제학이라 내 딴에는 경제지식은 물론 관련되는 사회학, 경영학, 문학 등도 함께 가르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경제학을 잘 배워 합리적인 삶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학점을 취득하기 위한 공부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일까? 경제학을 수강하는 학생 중에는 공무원시험이나 취업시험에 잘 출제되는 부문만을 강의했으면 하는 의견도 있다.

물론 대학교육이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학문적인 성과보다는 취업률에 따라 대학의 우열을 가리려 하고 있다. 즉, 대학교육의 핵심이 순수학문에서 취업 쪽으로 서서히 선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보면 머리가 좋다는 것은 다시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 암기를 잘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선 단답식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문제를 서로 연결하여 융합시킬 창의력 문제가 중요하다.

그래서 학생들과 진지하게 상의하여 다음부터는 시험문제 방식을 바꿀까 생각해 본다.

아마 암기식 문제에 숙달 된 학생들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나부터 조금씩 변화시켜 볼까 한다. 아마 그들이 졸업하여 사회에 나와 보면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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