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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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부
  • 승인 2017.10.12 10:08
  • 호수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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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철

일주일이면 서너 번은 마주친다. 처음에는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이른 아침마다 폐지 줍는 할머니와 나는 나란히 손수레를 끌며 고갯길을 오른다. 교회 앞 언덕길은 주위에 아파트가 많고 교차로가 있어 교통량이 많은 편이다. 그런 곳을 몸도 성치 않은 할머니 혼자서 손수레를 끈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커다란 폐지를 잔뜩 싣고 무작정 앞으로만 밀고 나가는 할머니 손수레는 도로의 무법자다. 할머니 손수레는 도로의 중앙은 물론 역주행도 마음대로 하니 짜증 난 운전자들은 손수레만 보면 멀리서도 커다란 경적을 울린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는지 집을 나오니 도로 곳곳에 물이 고여 있고, 하수도 물 내려가는 소리가 제법 컸다. 기도를 마치고 교회를 나오니 할머니는 언덕길 중간쯤에서 손수레와 씨름을 하고 있다. 비에 젖은 폐지의 무게와 커다란 비닐우비가 조그마한 할머니 몸을 척척 감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도로 중앙에 버티고 서 있다. 시내버스 정류장에 학생들과 어른 몇몇이 서있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누구 하나 도와 줄 기미가 없다.

  나는 차가 뜸한 틈을 타서 얼른 도로 중앙에 있는 할머니 손수레로 달려갔다. "할머니! 비가 올 때는 그만두시지. 위험하잖아요." "아이고 비가 온다고 안 먹고 사남. 오늘따라 내가 힘이 없는지, 아니면 이놈의 손수레가 문제가 있는지 꼼짝을 안하네."하며 온 힘을 다하여 손수레를 밀고 있다. 그때다 옆으로 지나가던 승용차 운전자가 창문을 열더니 큰소리로 외친다. "아니, 아침부터 죽으려고 환장들 했나. 도로 한가운데서 왜 떠들고 난리여."

언젠가 할머니 손수레를 함께 끌면서 궁금했던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딴청을 부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고물상에 도착하여 손수레를 할머니가 원하는 곳에 놓아 주자 그때야 지나가는 말로 몇 마디 한다. "아이고 이놈의 목숨 길기도 하지, 내일이면 구십인데. 옛날 같으면 벌써 죽어서 흙이 되어도 몇 번 되었지.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녀."하며 도로 옆 가로수 아래 털썩 주저앉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에 3가지 악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늙어서 가난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악착같이 돈을 버는지도 모른다. 이상한 일은 우리나라가 잘 살수록 쪽 방촌 사람과 폐지를 줍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길을 가다가 보면 폐지를 줍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가끔은 트럭을 이용하여 젊은 사람들까지 폐지며, 고물을 닥치는 대로 줍는 모습도 본다. 국가에서는 복지예산을 천문학적으로 늘린 것 같은데 어려운 사람들은 자꾸 늘어나니 참 이율배반적이다.

오늘도 할머니는 손수레를 끌고 언덕을 올라오고 있다. 어제보다 실린 짐이 적다. 그래도 할머니는 손수레에 의지하여 한 걸음씩 힘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할머니는 오늘도 분명 혼자 말했을 것이다. "폐지고 고물이고 돈이 된다고 보는 사람들은 서로 가지고 가는데. 이 늙은 고물은 왜 안 가지고 가는지.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데. 하나님이고 조상님이고 제발 나를 보는 대로 빨리 데리고 가시오."

나는 자동차가 잠시 주춤할 때를 틈타 얼른 할머니 손수레로 달려간다. 옆에서 슬쩍 밀자 그제야 할머니는 나를 본다. "어째 오늘은 안 보이나 했더니만, 고맙소. 그래도 예수쟁이들이 착하오. 잠시만 기다려 봐요. 돈이 지천이네."하며 길가에 떨어진 빈 캔을 보더니 얼른 주어서는 발로 꾹꾹 눌러 납작하게 되자 손수레에 싣는다. 오늘도 할머니와 나는 어제와 다른 새날을 기대하며 나란히 손수레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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